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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뀨우 Jan 26. 2021

다들 비 오는 날 온천이 좋은 건 알아가지고.

2021년 1월 스무셋째날의 단어들

엊저녁부터 하늘이 흐리더니 바깥에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침 해가 쨍쨍한 날이면 남쪽으로 난 장지문이 은은한 빛을 발하지만, 오늘처럼 우중충한 날은 장지문마저 그늘져 방 안에서는 시간을 가늠하기 힘들다. 이런 날은 한 번 알람을 놓치면 다시 일어나기 힘들기 때문에 세 번째 알람만에 겨우 눈을 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면서 머리를 가동시켰다. 세 번째 알람이라고 하더라도 내 첫 번째, 두 번째 알람은 반드시 일어나겠다는 의지가 전혀 담기지 않은 페이크 알람이기 때문에 꽤 일찍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오늘의 목표는 입던 옷 팔기, 스탬프 모으기 두 가지다. 한국에 돌아갈 짐을 싸면서 작아진 옷, 입지 않을 옷을 따로 모았다. 정리해보니 양이 꽤 됐다. 이런 옷들은 대게 지금 이 시점에서만이 아니라 이미 꽤 예전부터 입지 않았기 때문에, 그동안 괜히 서랍이며 옷걸이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는데 차마 버리지는 못했던 것들이다. 중고가게에서는 내 옷들이 다시 팔 만한 가치가 있는지 감정하는데 약 20분이 걸린다고 했다. 그동안 나는 가게 안을 둘러봤다. 알던 사람이 쓰던 것이 아니고서야 남이 쓰던 물건은 께름칙한 것이 있어 그다지 눈길 가는 곳이 없었다. 얼마 뒤 내 번호가 불려 카운터에 가니 내 옷 중에서는 14벌, M이 내 옷과 같이 맡긴 옷 중에서 2벌이 팔려 460엔을 벌었다. 안 팔린 옷은 되돌려 받았는데 14벌보다 많은 것 같다. 팔지 못한 옷을 다시 챙겨 다른 중고가게에 갔다. 옷을 접수하는데 라인친구를 등록하면 판매 가격을 10퍼센트 더 쳐준다고 해서 바로 등록했다. 감정 결과, 한 벌도 더 팔지 못했다. 아마도 중고가게 공통의 기준이 있나 보다 하고 가게를 나섰다.


스탬프를 받기 위해 도로 휴게소에서 500엔 이상 장을 봐야 했다. 양파 한 봉지, 고구마 한 봉지를 골랐는데도 500엔이 되기엔 부족했다. 도로 휴게소는 가격이 싸서 좋은데 이렇게 액수를 채워야 할 때면 무얼 살지 고민하게 된다. 결국 가게 안을 몇 바퀴 더 돌고서야 과자가 눈에 들어와 포키 한 상자와 초코파이를 낱개로 하나 골랐다. 각자 장 본 것을 자기 가방에 쑤셔 넣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내가 고치에 와서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라면집이 없다는 점이었는데, 아쉬운 대로 '나베야키라멘'이란 것이 있다. 예전에 돌솥라면이라고 번역을 했던 것 같다. 이 돌솥라면으로 유명한 가게에서 우리 네 명은 스탬프를 받기 위해 똑같이 돌솥라면을 주문했다. 예전에 고치에 놀러 왔던 CR, YM, MH는 혹평을 했는데, 이번에도 먹으러 왔다고 하니 진짜 맛있어서 먹는 것이 맞냐고 물어본다. 가게는 복고풍이 물씬 풍긴다. 가게 이름부터가 '스사키 역전식당'이며 안에 들어서면 옛날 포스터가 벽면에 가득하다. 그중에는 군국주의를 고양시키는 포스터도 있는데, 오늘은 공교롭게 그 앞자리에 앉게 됐다. 포스터를 유심히 보니 '함흥부'라는 한자가 눈에 들어온다. 시골 라면집에서 이렇게 한국을 만날 줄을 생각도 못했다. 라면은 밥까지 말아서 맛있게 한 그릇 비웠다.


다른 도로 휴게소에서 YM에게 줄 선물을 500엔어치 사고 소다야마 온천에 갔다. 그동안 친구들이 고치에 놀러 오면 데려가던 온천이 있었는데, 한 번은 그 온천이 정기휴일이라 우연히 가게 된 곳이다. 그 뒤로 온천의 운치며 적당한 물 온도가 마음에 들어 기회가 되면 종종 가곤 했다. 부디 사람이 적길 바라며 언덕을 올라갔는데 이미 제1주차장은 가득해서 제2주차장으로 내려가 주차를 했다. 다들 비 오는 날 온천이 좋은 건 알아가지고. 한 시간 뒤에 보기로 하고 온천에 들어갔다. 혼자 들어가는 온천은 재미가 없어서 적당히 있다가 나오기도 하는데, 오늘은 생각이 많아서 오래 앉아 있었다. 탕에서 나오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있어 서둘러 준비를 해서 나갔다. 다행히 K, M, R도 방금 나온 모양이다. 온천으로 따뜻하게 덥힌 몸에 시원한 바람이 닿아 기분이 산뜻했다.


돌솥라면(鍋焼きラーメン), 입천장 조심해야 한다


いじる:만지작거리다
古着(ふるぎ):입던 옷, 헌 옷
定休日(ていきゅうび):정기휴일


스사키 역전식당
https://sta2020.com/susaki_info/gourmet/nabeyaki_ra-men/1047/
소다야마 온천
http://sondayama.com/pag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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