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게 만들지 마세요

관계 트라우마를 가진 나를 위해서 쓰는 에세이

by 감성현
대한민국_전주한옥마을_20190907_104525.jpg 대한민국, 전주


아이는 케이크 위에 올려놓은 빨간 젤리를 아껴 먹으려 했어요.

그런 마음을 모르는 아이의 아빠는 아이가 젤리를 먹기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대신 먹어주었고요.


잠깐 사이에 벌어진 이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던 아이는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이내 눈물을 글썽거리며 울먹입니다.


아껴 먹으려고 했단 말이야.

내가 얼마나 젤리를 좋아하는데.


미안해진 아빠는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내일 다시 케이크를 사 오겠다고 약속합니다.

하지만, 아이는 막무가내죠.


그 젤리를 먹지 못한 난 불쌍한 아이야.

그 젤리를 먹지 못해서 난 우울해졌어.


하지만, 아이는 아빠를 직접적으로 탓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자신이 알고 있는 온갖 어두운 말들을 내뱉으며, 아빠를 더욱더 미안하게 만들죠.


물론, 아이는 아이라서, 이런 말과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봐요.

아이니 까요.


하지만, 아이가 아닌 어른에게서도 이런 말과 생각을 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마치,

널 탓하지는 않지만, 너에게 미안한 마음을 들게 하겠어.

널 욕하지는 않지만, 넌 나에게 미안해해야 해.

작심이나 한 듯 말이에요.


직장에서든, 연애에서든.

상대방을 미안하게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지.

늘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괜찮아. 해결할 수 있어.

그렇게 나쁘지 않아. 그럴 수도 있지.


이렇게 말해도,

상대방은 미안한 마음이 들 텐데 말이에요.


왜 미안해하지 않냐고 따지지도 말고요.

이미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을 앞에 두고

더 미안하게 만드는 말을 계속해서 한다는 건,


사실,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일지도 모릅니다.

꼭, 주먹질, 발길질을 해야 폭력을 휘두르는 건 아니니까요.


상대방을 미안하게 만들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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