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성현 Jul 02. 2021

낯선 손길: 스파 마사지

낯선 설렘: 필리핀

#필리핀 #마닐라 #마사지 #팁 #팁문화


아쉽(?)게도 사진 촬영이 불가한 곳이라, 

제대로 된 사진이 없지만.




“오빠, 스파 마사지받으러 갈 건데, 같이 갈래요?”

주말 저녁, 내 방 문을 배꼼이 연 테미가 천진난만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스파?

마사지?

그거 나쁜 거 아니야?


그렇다면.

해봐야지. 흐흐흐.


충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니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 허니가 있었다. 

따지자면 나를 부른 건 테미가 아니라 허니였다.


“오랜만이네. 테미랑은 원래 알았어?”

“어학원에서 자주 봐서 친해졌어요. 형이랑 마사지받으러 갈까 해서 찾아왔는데 자기도 간다고 하네요.”

우리는 택시를 타고 띠목에 위치한 웬샤 스파 센터로 향했다. 


생각과 달리(?)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시설 좋은 목욕탕 같은 분위기였다. 

당연히 테미는 여탕으로 향했고 허니와 나는 남탕으로 향했다.

 

이곳에는 한국인, 중국인 등 동양인이 많았고, 현지인은 거의 직원이었다.  

당연히 직원들은 유니폼을 갖춰 입고 있었고, (우리나라는 팬티만 입어주시는데....)

그런 그들 앞에서 나만 옷을 벗는 것 같아서 왠지 어색한 기분이었다. 


곁눈으로 허니를 보니 이곳에 자주 왔었는지 행동하는 게 제법 자연스러웠다. 

제 집처럼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먼저 간다며 탈의실을 빠져나갔고, 

난 어미 잃은 오리 새끼처럼 서둘러 옷을 벗고 허니를 쫓았다.


그런데 왜 나만 발가벗고 있는 기분이지? 

주위를 둘러보니, 탕 안의 모두가 수건으로 아랫도리에 두르고 있었다. 

언제 챙겼는지 허니도 수건을 두르고 있었다. 

샤워할 땐 둘렀던 수건을 풀고, 짧은 거리지만 샤워기에서부터 탕까지 가는 사이에도 수건을 둘렀다. 

탕에 들어가서는 또다시 풀고, 그걸 반복하고 있었다. 


뭘.... 그렇게 귀찮게. 

다 같은 남자끼리.... 


아무튼, 나만 홀딱 벗고 서있었다. 

그 때문에 목욕탕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신도림 역 한 복판에서 홀딱 벗고 서있는 듯 부끄러웠다.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라고 했는데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이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당당히 벗고 돌아다니기로 했다. 

어차피 남자들 뿐인데,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목욕탕 안에서 벌거벗고 돌아다니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문화의 차이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때를 밀려고 하는데, 아무도 때를 밀지 않았다. 

아예 때타월의 존재조차 모르는 듯했다. 

하는 수 없이 엄지 손가락으로 소심하게 때를 밀었다. 


아, 목욕탕에 오는 이유는, 

시원하게 때 미는 맛으로 오는 건데....


투덜투덜거리는데, 허니가 등 뒤에서 나를 불렀다.

“이제 마사지받으러 가요.”

씻다 만 듯 찝찝한 기분이었지만 허니를 쫓아 탈의실로 나왔다. 


탈의실엔 수건을 정리하고 바닥에 물기도 제거하는 직원들이 있는데, 

내가 몸에 묻은 물기를 닦자마자 그중 한 명이 면바지를 들고 와서는 다리를 넣기 좋게 잡아줬다. 

어린아이한테 바지를 입히는 엄마처럼 말이다. 


ㅡ..ㅡ 

뭐하냐 너?


당황스러웠다. 

내 앞에 반쯤 무릎 꿇고 있는 그의 눈높이가 아무래도 민망했다. 

직원은 어색해하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살짝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ㅡ..ㅡ;;;

이봐, 이봐. 

그게 더 이상하다고. 


마지못해 다리 하나를 쏙 넣는데, 

옆에서 허니는 또 다른 직원이 내미는 바지를 그냥 달라며 자기가 입고 있었다. 


ㅡ..ㅡ++++

아, 그러면 되는구나. 

젠장. 


직원들이 그렇게 과한 친절을 베푸는 이유는 팁 때문이었다. 

나중에 현지인에게 들은 바로는, 

따로 받는 월급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팁 없이는 생활이 힘들다고 했다. 

월급이 있더라도 팁까지 염두해서 책정된 금액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직원은 끝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친절을 다 했다.  

나 역시도 ‘친절함’에 보답하고자 팁 박스에 가지고 있던 동전을 모두 넣었다.


이제, 가운을 걸치고 마사지를 받으러 올라간 2층은, 잘 꾸며진 카페 같았다. 

간단한 음료수 한잔이 무료로 나왔고, 이때는 주문을 받는 직원은 정장 차림이었다. 


잠시 앉아 있으니 입구에서 헤어졌던 테미를 만날 수 있었다.

“오빠, 완전 새색시 같네. 얼굴이 빨개.”

부끄러워 서였을 것이다. 

가운 안에 아무것도 안 입고 있으니. 


테미 앞에서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었지만, 

여자 앞에서 왠지 벌거벗은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니까 참 희한하다. 

수영장에선 작고 꽉 끼는 삼각 수영복만 입고 있어도 당당(?)한데, 

여기선 가운을 전신에 걸치고 있는데도 어색하고 부끄럽기만 하니.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며 기운을 되찾고 있으려니, 

주문을 받았던 직원이 우리에게 다시 와서는 누구에게 마사지를 받겠냐고 묻는다. 

이곳이 처음인 나와 달리 허니는 ‘22번’이라고 말했다. 

아마도 이름은 쉽게 기억할 수 없으니 번호를 사용하는 것 같았다.

테미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알고 있는 번호를 말했다. 


“형은 처음이죠? 제가 잘하는 분 알고 있어요. 7번 부탁해요.”

허니가 나를 대신해서 자신이 알고 있는 또 하나의 번호를 말해줬고, 

직원은 이내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여자와 남자는 마사지받는 곳이 다른지, 

테미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이따 봐요.’라며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간 곳엔, 여러 개의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 방들은 크기가 다 달랐는데, 크기에 따라 침대가 2개인 곳도 있고 많게는 8개인 곳도 있었다. 

다 둘러본 게 아니라, 더 많은 침대가 있는 곳도 있지 않을까 싶다. 


침대마다 머리 쪽에 구멍이 뚫려 있는데,  

그 구멍에 얼굴을 넣고 잠시 누워 있자, 곧 두 명의 마사지사가 들어왔다.

둘 다 여자였다.  


그리고는 유창한(?) 타갈로그어로 내게 뭐라 물었다. 

“어떤 종류의 마사지를 원하는지 묻는 거예요. 기본적으로 오일로 하는 마사지가 있고요, 파스를 바른 듯한 기분이 드는 멘솔 마사지도 있어요. 몸에 뭘 바르는 게 싫다면 그냥 드라이 마사지라고 말해요.”

어리둥절해하는 나를 위해 허니가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하나부터 끝까지 알아서 해주는 게 아니라 내게 다 선택할 것을 물어보는 구나. 

경험해 보면 간단한 것인데, 

만약 처음에 혼자서 왔다면 말도 잘 통하지 않아서 뭘 어떻게 하는지 몰라 쩔쩔맸을 것이다.


암튼, 기껏 씻고 왔는데, 뭔가를 다시 바른다는 게 아무래도 찜찜해서 드라이를 선택했다. 

마사지사는 알겠다며 다리부터 지긋이 주무르기 시작했다. 


"아프면 말해요."

옆에서 허니가 날 다시 챙겨줬다. 

아프긴. 간지러워 죽겠다. 

마사지를 받으면 시원해야 하는데, 간지러움을 참느라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제야 내 반응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마사지사는 내게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었다. 


간지럽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간지럽다’가 영어로 뭔지 몰랐다. 

비슷한 뜻을 갖고 있는 단어로 대신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고민하다가 

‘Shy(수줍다)’라고 말해 버렸다.


“수줍다고요?”

“네. 간지러워요. (수줍어요)”

잠시 말을 잊은 마사지사는, 그러면 남자 마사지사로 교체하길 원하냐고 물었다. 


이건 또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란 말인가. 

간지러워 죽는 한이 있어도, 남자의 손에 날 맡기고 싶진 않았다.

 

결국, 내가 택한 방법은 최대한 세게 마사지를 받는 거였다. 

간지러움 보다, 아픔을 느끼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여자. 

도무지 융통성이 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온 힘을 다해 주무르기 시작하는데, 아파도 너무 아팠다. 

살살하라고 얘기할까 했지만, 

온몸이 땀에 젖도록 온 힘을 다하는 마사지사의 진지함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몰랐다. 

그랬다. 


나에겐 몇 시간의 재미있는 경험으로 끝날지 모르지만, 

이 분에게는 어떻게든 최고의 마사지를 제공하고 한 명이라도 더 고객으로 만들어야 했다. 


'22번이요.'

'7번이요.'

이렇게 지명받지 못한다면 그만큼 돈도 벌 수 없을 것이다. 

당연히 팁도 줄어들 것이다. 


물론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프로의 정신도 있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간지러움도, 아픔도 사라졌다. 

연신 내 눈치를 보며 괜찮은지 묻는 여자에게 말없이 엄지를 치켜세우고 보여줄 뿐이었다.




ㅡ..ㅡ b

당신 하고 싶은 거 다해.

내 몸뚱이를 당신에게 맡길게. 




잠깐만, 잠깐만! 얘 뭐 하는 거야? 바지는 왜 내려?

괜찮아요. 그냥 엉덩이 윗부분 마사지 해주는 거예요.

그래도, 이건 좀.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누가 이상하게 생각한대!

에이, 표정을 보니까 그런데 뭘.

아니, 그냥 좀… 당, 당황했을 뿐이야





매거진의 이전글 환장의 민폐 커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