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성현 Jul 05. 2021

버거 머신

낯선 설렘: 필리핀

#필리핀 #마닐라 #페스트푸드 #체인점 #노숙자 #거지




입맛이 없어서 저녁을 건너뛰었더니 참을 수 없는 허기가 몰려와 좀처럼 잠을 잘 수 없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 세시였다. 

혹시 뭐라도 있지 않을까 싶어 냉장고까지 기어갔지만 먹을 만한 게 없었다. 

하숙집이 이렇다. 

세끼는 꼭 챙겨주지만, 그 외 간식으로 먹을 건 각자가 챙겨야 했다.


"뭐해요?"

테미였다. 의외로 그 시간에 테미가 깨어 있었다. 

“안 잤어?”

“네. 오빠는요?”

“배가 고파서 잠이 와야지.”

“나도 그런데.... 그럼 우리 우리 버거 머신 갈래요?”

‘버거 머신’은 일종의 노점상으로 자투리 공간에 개조한 컨테이너를 세운 점포다. 

보통의 노점상과 다른 점은 당당하게 버거 머신이라는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체인점이라는 것. 

우리나라로 따지면 이삭토스트 정도 되겠다. 


마닐라에선 드물게 24시간 운영하기 때문에 

지금처럼 새벽녘, 배고픔에 잠 못 이룬다면 찾아갈만한 곳은 버거 머신뿐이었다.


하숙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버거 머신은 옆 빌리지 입구에 있었다. 

어정쩡한 거리였는데, 우리는 천천히 걸어가기로 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빌리지를 벗어나 본 것은 처음이었다.


빌리지 입구는 가드가 지키고 있어서, 

빌리지 안은 나름 안전지역이었지만, 

빌리지 밖은 가드의 보호가 없기 때문에 무법천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위험한 건 사실이다.

그래도 성인 2명이고, 한국인들이 많은 지역이라 크게 걱정은 하지 않고 빌리지를 벗어났다. 


차도를 건너기 위해 육교로 향하는데, 테미는 그냥 무단횡단을 하자고 했다. 

아무리 차가 없는 시간이라곤 하지만, 8차선이나 되는 그 넓은 차도를 무단횡단으로 건널 순 없었다. 

법을 지키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만에 하나 사고라도 난다면 정말 큰 일이기 때문이다. 


“육교로 가.”

“육교 싫단 말이에요.”

“그거 좀 올라갔다 내려오는 게 그렇게 싫어?”

“.... 그런 거 아니란 말이에요. 육교에는....”

육교엔 노숙자가 있다고 했다. 

몽롱해 보이는 눈빛이 특히 무섭다고 했다. 

맞다. 

기억났다. 

낮시간에도 있던 그 자리에 이 새벽 시간까지도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밤이 된다고 어디 갈 곳이라도 있는 사람이 구걸을 하고 있을까 싶었다. 

그렇다면 24시간 내내 그 자리에 있다는 건데, 그곳이 집인 셈이었다. 


육교엔 노숙자가 여럿 있었는데 다들 삶에 찌든 모습으로 아무렇게나 쓰러져 잠들어 있었다. 

유일하게 깨어있는 건 힘없는 엄마 곁에 찰싹 붙어있던, 뼈만 앙상하게 남은 꼬마뿐이었다. 

우리를 본 꼬마는 무서운 듯 제 엄마의 품으로 고개를 파묻고 있었다.

 

저 어린 꼬마는 무슨 죄일까?


육교를 건너자 저 멀리 버거 머신의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버거 머신 햄버거의 몰골은, 유명 브랜드의 햄버거와 비교하면 한 없이 엉성하다. 

하지만 그릴 위에서 살짝 구운 빵과 두툼한 패티, 그리고 특제소스는 정말 맛있었다. 

게다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옵션. 

계란 프라이, 치즈, 샐러드 등을 내 마음대로 추가할 수 있는데, 

물론, 어떤 걸 첨가하느냐 에 따라 가격은 달라진다. 

그렇다고 비싼 건 아니다. 풀옵션을 한다고 해도 무척이나 착한 가격이다.


난, 계란 프라이와 치즈를 추가했다. 

한 입 베어 무니, 그 맛이 환상이었다. 

물론 배고픈 상태에서 먹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말 맛있었다. 

그 자리에서 그 큰 햄버거를 두 개나 해치울 정도로 말이다.


“두 개, 싸주세요.”

"에? 그렇게 먹고 또요?"

테미가 놀란다. 

포장까지 하면 총 네 개다. 

보물이라도 되는 양 햄버거를 가슴에 고이 안고 하숙집으로 돌아가는 길. 

테미는 여전히 육교가 싫다며 무단횡단을 하자고 했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다. 

 

돌아가는 길에서도 육교 위 꼬마는 인기척이 들리자 엄마의 품으로 고개를 묻고 있었다.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그 꼬마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어두운 밤, 공허한 육교 위에서 꼬마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무슨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

이 세상이 어떻게 비칠까?

 

“절대로 거지들을 도와주지 말아요.”

마닐라에 오자마자 들었던 얘기다. 

한국인은 정이 많은 탓에 불쌍한 사람만 보면 도와주는데 끝도 없을뿐더러, 

점점 그들이 도움을 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해서 도와주지 않으면, 

왜 도움을 주지 않느냐며 적반하장의 경우가 생기기도 하고, 

심한 경우엔 해코지를 한다고 하기도 했다. 


그래. 

한 번뿐이야.


꼬마에게 다가가 봉지에서 꺼낸 햄버거 하나를 내밀었다. 

하지만, 꼬마는 더욱더 엄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잠이 깬 엄마는 그런 꼬마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엄마의 얼굴엔 슬픔도 아픔도 없어 보였다. 

미래도 희망도 없는, 멍청한 모습이었다.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도대체가 뭐가 얼마나 어떻게 잘못됐길래 자식을 옆에 두고도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단 말인가!

말없이 햄버거 하나를 꼬마의 작은 발아래 내려놓고 발걸음을 돌렸다. 

육교를 내려가기 전 꼬마를 돌아보니 다행히도 내가 준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물고 있었다. 

자기 머리 만한 햄버거를 오물거리며 힘겹게 먹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차라리 보지 말걸 그랬다. 

그냥 먹었겠지 생각할걸 그랬다.


“나머지 하나는 왜 안 주고 다시 가져온 거예요?”

육교를 지나 우리 빌리지 입구를 지나갈 때, 테미가 물었다.

 

그제야 햄버거 두 개 중 하나는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꼬마 하나, 엄마 하나였는데. 

욱하는 마음에 엄마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꼬마가 먹는 햄버거를 바라볼까?

아니, 어떤 마음으로 꼬마를 바라볼까?

그 멍청한 눈에도 눈물이라는 게 흐를까....


하숙집으로 돌아온 나는, 

가지고 돌아온 햄버거를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려 버렸다. 


먹을 수 없었다. 

자꾸만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죄책감이 밀려와 견딜 수가 없었다. 

왜 나와 전혀 상관도 없는 사람들의 아픔 때문에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가!

 

알 수 없었다. 

그때는, 정말 알 수 없었다.




미안해. 더 많이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 널 불쌍하다고 여겨서.

미안해. 네 곁에 있는 엄마를 무책임하다고 욕해서.

미안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주지 못해서.





매거진의 이전글 낯선 손길: 스파 마사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