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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현 Jul 06. 2021

섬뜩한 미소

낯선 설렘: 필리핀

#필리핀 #마닐라




마닐라엔 거지가 참 많은 듯했다.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광경은, 꼬마 둘이서 손을 잡고 돌아다니며 구걸을 하는 모습이다. 

거지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철없는 아이들의 구걸 놀이라고 해야 할까?

부모가 일부러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아이들(자식들)을 밖으로 내보낸다는 말도 있긴 하다. 


아무튼, 이 2인조 아이들은 십중팔구 둘 중에 더 어려 보이는, 

그러니까 동생은 팬티 한 장만 달랑 입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옷이라도 제대로 갖춰 입히지.... 하는 마음이 당연히 드는데, 이것도 노림수라는 말이 있긴 하다. 


이 가련한 꼬마 거지들은 거리를 걷고 있으면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슬며시 다가와 손을 잡는다. 

처음엔 무척이나 깜짝 놀라곤 했는데, 돌아보면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하고는 손을 내민다.


다음으로 많이 볼 수 있는 광경은 가족 단위로 구걸하는 거지들이다. 

이 거지들은 돌아다니지 않고, 한 장소를 지키고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한다. 


마지막으로 늙은 거지들이 있다. 

아무도 이젠 자신을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은지 

언제나 외진 곳에서 혼자 쓸쓸히 구걸을 한다.


거지 근성. 

사실 내가 가장 경멸하는 모습이다. 


꿈도 없다. 

희망도 없다. 

자신의 인생을 남에게 맡겨 버리는 이러한 나태함이 싫다. 


가끔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그런 거지 근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찾아볼 수 있는데, 

난 그들과 말도 섞기 싫어 무시해 버린다.

 

하지만 그런 나도, 

마닐라에 와서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반복해서 거지들을 봐서 그런지 

분노보다는 점차 마음이 약해져 거지들을 만나면 주머니에 있는 잔돈을 꺼내 주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황당한 일을 당했다. 


늦은 시간 택시를 기다리는데, 누군가 내 손을 잡는 게 느껴졌다. 

화들짝 놀라 돌아보는데, 아, 역시나 이번에도 꼬마 거지 한 명이 불쌍한 눈으로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 많은 거지들이 다 어디 있다가 튀어나오는지 모르겠다.)


내 손을 잡는 그 조그만 손이, 보기와 다르게 무척 거칠다는 걸 느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고사리 같아야 할 어린아이의 손이 여기저기 터지고 헐어서 성한 곳이 없다. 


안타까웠다. 

주머니에 동전이 있을 것이다. 

돈을 꺼내려 주머니에 손을 넣는데, 

순간이었지만, 꼬마 거지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어린 게 보였다. 


뭐지?

왠지 섬뜩했다.


지금까지의 불쌍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소름 끼치는 미소를 본 순간, 

동정심은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뭐야?

연기였어?


꼬마 거지는 내가 돈을 주려다 말자 마치 맡겨 놓은 돈을 내놓으라는 듯 바지를 잡기 흔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어이가 없고 짜증이 났지만 하도 졸라대는 통에 

먹고 떨어지라는 생각으로 알았다며 주머니에 있는 동전을 모두 꺼냈다. 


25센타보 동전 여섯 개가 나왔다. 

25센타보는 0.25페소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였다. 

우리나라.... 10원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이 25센터보 동전도 여섯 개를 모으면, 

빵 하나는 충분히 살 수 있는 돈이기도 했다. 


이윽고 꼬마 거지에게 건네진 여섯 개의 동전들. 

한참을 자신의 손바닥 위에 놓인 동전들을 쳐다보던 꼬마 거지는 

날 한번 올려보더니 내 발아래로 그 동전들을 냅다 집어던졌다. 

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타갈로그어를 앙칼지게 내뱉기 시작했다. 

분명, 욕 같았다. 


한참을 시끄럽게 떠들더니 마지막엔 내 바지에 침까지 뱉고선 그대로 달아나 버렸다.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화도 안 났다. 

어이가 없었다. 


거지에게 돈을 주었는데 ‘내가 거진 줄 알아!’하며 

그 돈을 도로 내게 던지며 욕을 퍼붓고 침까지 뱉은 것이다. 


그 후로 난 어떤 거지를 만나더라도 그냥 지나친다. 

아무리 <슈렉>의 장화 신은 고양이 같은 눈을 하고 있어도 말이다.




1.

다 같은 고양이라도 알고 보면 

갖고 있는 성격이 제각기 다 달라.

가끔 사람들은 고양이가 강아지처럼 붙임성이 없다며 꺼려하기도 하는데

강아지 못지않게 애교가 철철 넘치는 고양이도 많거든. 

꼬마 거지도 마찬가지일 거야. 

부디, 마닐라의 모든 아이들이

그 꼬마 거지 같다는 편견을 갖지 않길 바라.


2.

근데, 왜 바라를 표준어로 정한 거지?

누가 바라라고 해? 바래라고 하지. ㅡ..ㅡ

그냥 그렇다고. 



* 사진은 내용과 직접적인 연결성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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