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설렘: 필리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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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렇지.
보라카이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줄곧 비가 내리더니 좀처럼 멈출 기색이 없었다.
하지만 모든 건 마음먹기 달렸다고,
오히려 작열하는 태양이 짙은 구름에 가려져 대낮에도 맘껏 수영을 할 수 있어 좋았다.
“장사 안 하나?”
수영을 끝내니 잊고 있던 허기가 밀려왔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식사를 하려 했는데 좀처럼 문을 연 식당이 없었다.
문을 열고 있는 곳은 숙소 앞 조그만 구멍가게가 전부였다.
"간단하게 과자랑 맥주랑 먹자."
미리 식사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지만,
비수기에 구멍가게라도 열고 있는 게 어디냐 싶었다.
"태풍이 오려나 봐."
먼 하늘을 바라보던 구멍가게 주인은 곧 태풍이 올 거라고 했다.
어쩐지 하늘이 심상치 않다 했더니 태풍이 오려고 그랬구나.
태풍이란 소리에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던 걸음을 멈추고 나란히 바닷가에 앉았다.
태풍이 보고 싶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태풍을 눈으로 직접 본 적이 없었다.
일기예보에서는 소용돌이치는 구름이 보이고,
영화에서는 하늘로 빨려 올라가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보이는데,
그걸 직접 눈으로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태풍을 보겠다고 우리는 나란히 바닷가에 앉았다.
하늘은 미쳐 있었다.
멈출 것 같지 않던 비가 일순간에 그치기도 하고,
바람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로 변하는가 하면,
다시 비를 동반한 세찬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에 해변에 심어져 있던 야자나무들은 좌우로 흔들리며 춤을 춰댔다.
그리고 저 멀리,
어두운 구름이 뭉쳐 있는 게 보였다.
그 구름은 서서히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태풍이다!
나는 소리쳤다.
하지만 엘리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닌 거 같은데?"
ㅡ..ㅡ
김 빠지긴 해도, 솔직히 나도 딱히 반박할 순 없었다.
직접 눈으로 태풍을 본 적 없는 도시 촌놈이었으니,
저것이 태풍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게다가 다시, 하늘은 잠잠해져 갔다.
태풍이란 거, 원래 이렇게 시시한 걸까?
<오즈의 마법사>에선 태풍에 도로시와 집이 날아가고,
<트위스터>에선 육중한 무게의 황소도 깃털처럼 날아다니는데 말이다.
“이제.... 끝난 거 같은데? 비가 멈춘 거 보니깐 태풍이 올 것 같지는 않아요.”
엘리사는 재미없어했다.
(나도 솔직히.... 그만 들어가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싶었다. 하지만....)
“뭘 모르는군. 원래 태풍이 오기 전엔 이렇게 고요해지는 거야.”
포기하지 않은 척, 내가 계속해서 수평선에 시선을 고정한 체 말했다.
하지만, 그 고요란 게 생각보다 훨씬 길어졌고,
결국,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엘리사의 재촉으로 숙소로 돌아가야만 했다.
기다렸던,
내가 생각하는 태풍은 끝내 오지 않았다.
오즈의 나라로 날아가보고 싶었는데.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