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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현 Jul 16. 2021

거리의 여자

낯선 설렘: 필리핀

#동남아 #아세안 #필리핀 #마닐라 #보라카이 #거리의여자 #창녀




보라카이엔 해변을 따라 세워진 바가 아름답다. 

그곳의 바텐더가 직접 만들어 주는 칵테일과 탁 트인 바다는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고, 무척 낭만적이었다.


마닐라로 돌아가기 하루 전, 

우리는 그곳에 앉아서 밤새도록 바텐더가 만들어주는 칵테일을 마셨다. 

이미 수영도 질리도록 했고 그저 밤바다에 떠있는 별들을 바라보며 

달콤한 칵테일을 마시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어디 가?”

엘리사가 물었다.


“산책.”

내가 대답했다.


평소라면 같이 가자고 했을 텐데, 여럿이 여행을 와도 이렇게 혼자인 시간이 필요하다. 

늘 함께일 필요는 없다. 적어도 난, 혼자만 재충전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다. 


한참을 걸었다. 

저 멀리 바의 네온사인이 작은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하늘에도 별, 땅에도 별, 온 천지가 별이었다. 

아름다웠다.


“오빠!”

누군가 오빠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오빠!"

그 소리는 정확히 내 쪽을 향하고 있었다. 

돌아봤지만, 그 어디에도 내가 아는 얼굴은 없었다. 

잘못 들었나 싶어 가던 길을 가려고 하는데 다시 또 ‘오빠’라며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커다란 야자나무 그늘, 

어둠 속에서 낯선 여자가 손짓하고 있었다. 

필리핀 사람이었다. 

한국어는 어떻게 알았는지 ‘오빠’에 이어 ‘잠깐만요’라는 말까지 하고 있었다. 

거리의 여자였다. 


“나랑 놀자, 어디서 묵고 있어?”

여자는 다가오며 슬슬 흥정을 시작했다. 


손을 내저으며 저리 가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따라붙었다. 

피하는 게 상책이라 생각했지만 여자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걸음과 자연스럽게 맞추며 따라 걷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일행으로 보일만 했다. 

 

“그냥 가. 나 친구랑 같이 왔어. 그냥 가.”

“친구? 나 괜찮아. 친구도 같이 놀아.”

“여자야.”

“난, 여자도 상관없어.”

이건 또 무슨 하드코어냐. ㅡ..ㅡ


“신혼여행 온 거야.”

“그럼 더 좋네. 잊지 못할 멋진 밤으로 남게 해 줄게.”

어이가 없었다. 


이쯤 되니 불쾌함보다는 측은한 마음이 생겼다. 

가장 아름다운 나이에,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다뤄야 할 자신의 몸을 돈 몇 푼에 팔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게 보였다.


“아렘!”

저 멀리서 엘리사가 손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죄진 것도 없는데 괜히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가! 얼른 가!"

더욱 거세게 여자를 뿌리쳤다. 

그 와중에도 몇 번이 더 흥정을 멈추지 않던 여자는 결국엔 모든 걸 포기하고, 

다시금 커다란 야자나무 그늘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누구랑 같이 있었어?”


창녀.

너랑 같이도 가능하데. 

라고 말할 순 없겠지? 

ㅡ..ㅡ


가끔은 솔직함이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아마도 이렇게 말했다가는.


‘창녀? 창녀랑 무슨 말을 그렇게 하고 있었는데?’

‘그냥, 나에게 흥정하고 있었어’

‘아하, 그래서? 쫓아가려고 했구나?’

‘아니, 난 생각 없어

‘거짓말’

‘에이, 못 믿겠는데? 남자들 뻔하지 않나?’

'여기서 남자가 왜 나오는데?'


 뻔했다. 

안 봐도 뻔했다. 

솔직하게 말해봤자 좋을 것 하나 없었다. 


“누구? 없었는데? 내가 여기 아는 사람이 누가 있어.”

“아닌데, 누가 있었는데.”

엘리사는 주위를 두리번 살폈지만 헛수고였다.

이미, 거리의 여자는 거리의 어둠 속으로 꽁꽁 자취를 감춘 뒤였다.  


“근데, 어디 가는 길이었어?”

“산책. 나도 산책이 하고 싶어 져서.... 근데, 정말 혼자였어?”

엘리사는 계속해서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다며 알아내려 노력했지만 

솔직히 해 줄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같이 산책할까?

그래.


짧았던 여행이 끝나가고 있었다. 

‘떠남’에 이유가 없듯이 ‘돌아감’에도 이유는 없다.

 

끝났기 때문에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기 위해 떠나온 것이다.


우리는 그날,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밤새도록 별빛 속을 하염없이 거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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