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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현 Jul 21. 2021

외국에서 영어 과외를 한다는 것은

낯선 설렘: 필리핀

#동남아 #아세안 #필리핀 #마닐라 #인터뷰 #감성현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흡수하고 싶어요.


피플 인 마닐라: 인터뷰#3


처음 만난 리사는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했다. 

해맑게 웃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똑 부러지게 말하는 리사를 보면서 머릿속엔 오직 한 단어만 떠올랐다. 

참 당찬 아이구나. 

자신감 넘치고, 자신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는 모습 때문이었다.


인터뷰를 위해 노트와 간단한 필기도구 그리고 녹음기를 꺼내는데, 

대뜸 리사가 내게 종교가 있냐고 물었다. 


기독교라고 하니, 

주일마다 함께 교회에 나가자며 반가워했다. 


반면, 난 황급히 말을 돌렸다. 

내가 기독교임은 분명 하나 교회에 가본 지 참 오래됐기 때문이다.


필리핀은 인구의 80% 이상이 천주교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 어느 나라 못지않게 종교적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성당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많은 쇼핑몰에서도 종교 관련 상품을 쉽게 볼 수 있다. 


지프니에도 예수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고, 

내가 타본 택시는 거의 모두 다 묵주, 성모 마리아상이 놓여 있다. 

심하다 싶을 정도로 종교는 일상과 아주 가깝게 있었다. 


자아, 

종교 이야기는 이쯤 해두고. 


리사는 평범한 또래 학생들처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대학에 진학하는 뻔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 

갈 수 있었지만 그전에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고 했다. 

 

대한민국에서 남들과 다르게 살아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조금만 벗어나면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아하다는 눈빛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외눈박이 세상에서 두눈박이를 만난 것처럼, 

그들의 관심은 호기심을 넘어서 질타로 변질되곤 한다. 

단지, 남들과 조금 다르게 살아간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Lisa

영어를 배우려는 이유는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독특한 아이템을 찾아서 사업을 하고 싶어서에요. 

그래서 대학보다는 영어공부를 먼저 택했죠. 

어느 나라를 가도 영어만 확실히 하면 의사소통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잖아요. 

대학 나온다고 제 꿈이 실현된다는 보장만 있다면 대학에 갔겠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길(대학을 가는 것)만이 맞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뭐, 나중에 외국에서 대학을 다녀도 될 것 같고.... 

이런저런 생각 끝에 내린 결정이에요.

 

GHam

영어 공부는 한국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나요? 

아직 어린 나인데, 이렇게 먼 곳까지 혼자 와서 힘들게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Lisa

어리다니요. 

여기에 초등학생들도 얼마나 많은데요. 

뭐, 마닐라에 오겠다고 결심한 건 일단 여기에 친척이 있기 때문에 안심했기 때문이기도 해요. 

그리고 한국에서 영어공부를 하면.... 뭐랄까? 한계가 있다고 할까요? 

무슨 말이냐 하면요, 영어는 계속해서 사용하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리거든요. 

여기선 대부분 사람들이 영어를 할 줄 알잖아요. 

물건을 사거나, 택시를 타거나, 음식점에 가거나 하는 저의 일상생활에서, 

꾸준히 영어를 사용하게 되는 것이 마음에 들어요.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제 것으로 흡수하고 싶었어요.


맞는 말이다. 

영어는 암기 과목이 아니다. 

몇십 년 간 영어 공부를 했다고 하면서도 외국인과 대화 한마디도 못하고 우물거리는 건 

단순히 점수를 위해 암기만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어는, 아니 언어는 습관이다. 

리사의 말처럼,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흡수하는 즐거운 습관.


우리나라의 교육은, 

우리나라의 영어교육은, 

우리나라의 대다수가 최소 6년 넘게 해 대는 영어교육은,

우리나라의 대다수가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인가?

아니면, 대학이라는 곳을 들어가기 위한 점수를 매기기 위함인가?


GHam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흡수되는 영어는, 어떤 건가요?


Lisa

특이한 건 없는데, 원래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런 성격 때문인지 여기에 머무는 동안 현지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어요. 

처음엔 투터 말고는 만날 기회가 전혀 없었죠. 

하지만 투터랑 나이 때도 비슷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고, 

자신의 친구들과 있는 자리에도 초대받고 그랬거든요.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더 알게 되고, 그러다 보니, 참 많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만난 친구들은 투터(전문적인 교수학을 배운 사람)가 아니라 정확한 영어를 구사하진 않지만, 

그래도 영어공부엔 많은 도움이 돼요.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로 대화를 하니깐요. 

그리고 다들 외국인(특히 한국인)에게 우호적이고 친절해요. 

성격도 착하고. 

하지만 뭐랄까? 확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진 않아요. 

사실 친구란 게 그렇잖아요. 

많은 부분 공통분모가 있어야 하고, 서로가 서로를 존중할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얘기 나누다 보면 실망스러운 모습을 많이 보거든요. 

다들 미래가 없어 보인다고 해야 하나? 

뭔가 일 할 생각을 한다기보다는 그냥 오늘 하루 즐기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해요. 

자신의 삶을 허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데요, 

그냥 매일 저녁 모여서 술 마시고, 뭐 재미있는 일 없나 빈둥대고 그러거든요. 

그래도 그런 모습 속에서도 부러운 점도 있어요. 

뭐랄까? 여유롭게 산다고 해야 할까? 

한국에 있을 땐 하루 24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휙휙 가버리고, 

내가 지금 뭘 하는 건지 멍해질 때도 많았거든요. 

하지만 여기선 그렇지 않으니깐요. 

똑같은 시간을 살고 있는데, 두 곳의 시계가 전혀 다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리사에게서 자신의 미래를 위해 무언가 열심히 하려는 생각과

그 나이에 공부보다는 놀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 아이는 아이다. 


 GHam

필리핀 하숙집에 머물고 있나요?


하숙집은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국 하숙집. 

그리고 필리피노가 운영하는 필리핀 하숙집. 

크게 다른 점을 꼽자면, 음식과 가격이다. 

한국 하숙집은 당연히 한국식으로 식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필리핀 하숙집에 비해서 가격이 조금 비싸다. 

그래도 단순히 가격의 차이를 비교할 수 없는 건, 

무엇보다 한국 하숙집이 한국인에겐 여러모로 생활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그건 가격으로 비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일부러 필리핀 하숙집을 선호하는 한국인이 있는데, 가격보다는 다른 점에서 의미를 둔다. 

외국에 나와 있기 때문에 외국 생활을 그대로 접해보고 싶은 마음에서 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한국 하숙집에선 하숙생들이 거의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어를 사용하게 된다. 

보다 빠르게 영어 실력을 늘리고 싶은 마음에서 일부러 필리핀 하숙집을 이용하는 것이다. 

리사에게 필리핀 하숙집에 머물고 있는지를 물은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한국 하숙집에 비해 필리핀 하숙집이 

리사의 바람대로 영어를 자연스럽게 흡수하기엔 더 좋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Lisa

음, 그런 이유라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물론, 필리핀 하숙집에서 늘 영어로 대화하고 저랑도 영어로 대화한다면 당연히 필리핀 하숙집이 좋겠죠. 

하지만 대부분 타갈로그어를 사용해요.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면 하숙집에 돌아오면 다른 사람과 대화할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거든요. 

그러니깐 영어를 사용해보고 싶어서 필리핀 하숙집을 선택하는 건 아닌 것 같고요. 

그렇다면, 다른 이유에서 본다면 아무래도 한국 하숙집이 더 좋겠죠? 

무엇보다 한국식으로 식사를 할 수 있으니깐 먹는 것도 잘 먹게 되고요. 

한국 하숙집에 있으면 외국에 나와있어도 심적으로 안정도 되고, 

타지에서 지내다가 생기는 문제에도 충분히 상의할 수 있고요. 

그렇게 별 탈 없이 지내는 게 가장 좋잖아요.


잊고 있었다. 

리사는 아직 어린 친구였다. 

한국이라고 해도 혼자 생활하는 것이 조금은 두려운 나이다. 

그런데 여긴 한국도 아니지 않은가? 

아무리 영어공부가 중요하다고 해도 기본적인 생활이 안정되지 않는다면 무엇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GHam

투터를 한다고 했지요? 수업은 어때요?


 Lisa

수업은 1대 1 방식이라 철저하게 제 위주로 할 수 있어요. 

제가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싶은 부분을 공부할 수 있죠. 

교제 선택도 누가 정해주는 게 아니고, 제가 정하면 돼요. 

문법 위주로 공부하고 싶으면 문법이 잘 나와 있는 교제를 선택하면 되고. 

그런 게 부담스럽다면 영화 대본을 가지고 해도 돼요. 

제가 원하는 대로 투터가 맞춰 주거든요.

 

GHam

좀 위험하진 않을까요? 

달리 말하면 편식을 한다는 의미기도 하니깐요. 


Lisa

그건 맞아요. 

스스로가 강한 의지가 없다면 금방 나태해져요. 

공부란 게 재미있는 건 아니니깐요. 

수업하다가 지루해지거나 어려워지면 좀 쉬고 싶기도 하고, 

날씨가 좋으면 수업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놀러 나가고 싶어지기도 하거든요. 

이럴 땐 투터가 좀 엄하게 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얘도 저랑 비슷한 나이다 보니까, 같이 쉬고, 같이 놀고, 같이 땡땡이쳐요.

그래서, 제가 정신을 바싹 차려야 해요. 


여기에서 학생과 선생은, 

우리나라에서의 학생과 선생의 개념과는 다르거든요.

그냥 제가 고용하는 개념이 더 커요. 

  

GHam

투터도 있고, 티처도 있고. 차이가 있나요?


Lisa

아! 투터는 개인교사예요. 과외선생님으로 이해하시면 되고요, 

티처는 어학원에 있는 학원 선생님을 의미해요. 

물론, 학원 선생님이 투잡으로 과외선생님을 하는 경우도 많아서요, 구분이 무의미하긴 해요. 

게다가 여기에서는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부르니까요. 

아무튼, 영어에서 투터나 티처는 큰 차이가 없다고도 하는데요, 

아무튼 여기선(필리핀 유학생들 사이에선) 그런 의미로 구분해서 사용해요. 

처음엔 저도 어학원에 다녔는데 오가는 시간이 아깝고, 

아무래도 밖으로 나가는 거니깐 씻고 준비하고 이래저래 빠져나가는 시간이 많아서요, 

지금은 투터 중심으로 하고 있어요. 

그런데 처음에 하시는 분들은 어학원에서 시작하는 게 좋아요. 

아무래도 어학원에 가면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으니깐 정보도 서로 교환하고 쉽게 적응할 수 있거든요.

 

리사의 말대로 투터는 내게 오기 때문에 편하다. 

비용에도 큰 차이가 없다. 내가 내는 돈은 동일하다. 

단, 티처는 어학원에서 주급(필리핀에선 월급보다 주급이 더 발달되어 있다)을 받기 때문에 

투터 보단 더 적게 받는다고 할 수 있겠다. (학원이랑 나눠가져야 하니까)

그래서 언젠가 내 티처에게 왜 투터를 하지 않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이유는 간단했다. 투터를 하면 학생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일이 주변에서 소개를 받아야 하니깐 결코 쉽진 않을 것이다. 

반면 티처는 어학원으로 학생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늘 학생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투터가 분명 돈을 더 벌 순 있지만, 골치 아파하고 싶지 않다는 대답이었다.


GHam

지금의 투터는 어떻게 만나게 돼요?


Lisa

투터를 구하는 방법은 100% 인맥인 것 같아요. 

따로 투터가 광고를 하진 않거든요. 

대부분 하숙집에서 소개해 주거나, 한국인 선배들에게서 소개를 받죠. 

그렇게 만난 투터가 다른 투터를 소개해 주기도 하고요. 


GHam

마닐라에서의 생활은 어때요?


 Lisa

처음 올 땐, 아무것도 몰랐어요. 

그냥 더운 나라니깐 여름옷만 가져가면 된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몰랐거든요. 

전자 제품을 가져가려고 하는데 몇 볼트를 써야 하는지, 

비누나 샴푸, 이런 것도 다 준비해 가야 하는지, 

저는 필리핀엔 고추장이 없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김치를 내가 담가 먹어야 하나 고민까지 했다니까요. 전 김치 없으면 안 되거든요. 

근데 한국 하숙집에선 기본으로 나오는 반찬이 바로 김치잖아요. 

아무튼, 이렇게 소소한 것부터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그랬어요. 

그러다 보니, 내가 궁금하지 않던 것들이 아니더라도 더 많은 부분을 알 수 있었는데요,

예를 들어 바가지가 많다, 길거리를 걷다 보면 바퀴벌레가 자주 만나게 된다, 

거지들도 많고, 특히 매연이 심하다, 남자들은 아무데서나 노상방뇨를 잘한다. 

뭐 이런 소소한 것들도 알게 되었죠.


GHam

오기 전 인터넷에서 봤던 내용이 그랬어요? 

실제로 오니깐 어떻던가요? 

맞나요? 아님 좀 다르던가요?


Lisa

다 맞는 것 같던데요? 

물론 사람마다 느끼는 크기가 다르니, 조금 과장됐다고 느끼는 부분도 있긴 해요. 

하지만, 틀린 부분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하긴, 뭐하러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겠는가?  

영리를 목적으로 그 많은 정보를 공유하는 게 아닌데, 

포장할 필요도 없고, 일부러 깎아내릴 필요도 없지 않은가? 

그저 개인적으로 느꼈던 것. 경험했던 것. 알게 되었던 것을 공유할 뿐인데. 

그렇다면 리사는 마닐라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고, 어떻게 공유할까? 


Lisa

난 여기에 머무는 동안, 한국 같은 느낌이었어요. 

이질감도 없고, 자연스럽게 스며든다고 할까요? 

음.... 생김새가 좀 다른데 자주 보다 보면 익숙해지니깐 나중엔 우리가 다르다는 것도 느끼지 못해요.

다 같은 사람이고,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죠 뭐. 


마닐라는 한국 같다. 

사람 사는 곳이 어딜 가도 다 똑같다.


유독 마닐라와 한국이 같은 느낌이라는 리사의 말에 공감을 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필리핀 사람의 성향 때문은 아닐까 싶다. 


한국인에게만 있다는 정이 그들에게도 분명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더 친근하게 느껴지고 이국적인 느낌이 강하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이후, 리사는 나와 함께 교회를 가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개인적인 일로 급히 한국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다시 필리핀에 오고 싶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며, 이미 마닐라의 매력에 푹 빠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리사가 필리핀에 다시 올지, 

아니면 다른 나라에서 자신의 꿈을 위해 열심히 달려 나갈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리사의 삶 한 구석에는 분명, 

잊을 수 없는 마닐라의 추억이 고이 담겨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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