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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현 Jul 20. 2021

외국에서 대학을 다닌다는 것은

낯선 설렘: 필리핀

#아세안 #동남아 #필리핀 #마닐라 #한국인 #대학 #외국대학 #응답하라1988 #r감성현 #인터뷰




한국인의 가치를 스스로가 지켰으면 좋겠어요.



피플 인 마닐라: 인터뷰#3


제이브이는 마닐라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그는 이미 고등학생일 때, 영어 사전 한 권을 통째로 외우고 있었고, 

아주 어려서부터 영어 공부를 해왔기 때문에 영어에 있어서는 따로 공부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일상생활에서 영어와, 

대학에서 배우게 되는 영어는 다르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한국의 대학과 비교했을 때, 

무엇이 가장 다르게 느껴지는 지도 궁금했다.


JV 

군대 가기 전, 마닐라에 처음 왔을 땐, 그냥 놀러 왔었죠. 

큰 아버지께서 여기서 하숙집을 운영하고 계시거든요. 

그때, 한 6개월 원 없이 놀았죠. 

그 6개월 동안 마닐라에서 지내면서, 내심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마닐라에 와서 살고 싶었죠. 

여기 사람들은 여유롭고, 편하고, 즐겁고 그러거든요. 

무엇보다 그 점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죠. 

그래서 잘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마닐라에서 다시 대학에 들어갔죠. 

전 어려서부터 정말 영어는 자신 있었거든요. 

외국인과 대화하는데도 아무런 지장이 없었고요. 

그런데, 본격적으로 외국대학에 입학하니깐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데요, 

첫 학기 동안은 수업이고 뭐고 머릿속이 멍 하더라고요. 

진짜 많이 헤맸어요. 

그렇게 잘 들리던 영어가 하나도 안 들리고, 

발표를 할 때도,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몰랐고요. 

그렇게 한 학기를 절망 속에서 보냈어요. 

그만큼 외국대학에서의 영어는 어려워요. 

혹시, 외국대학을 입학할 생각을 갖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꼭 이 말을 해주고 싶어요.

자신이 생각할 때, 정말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좀 천천히 미뤄두라고요.


GHam

입학하는데 영어실력이 그만큼 중요한가요?


 JV 

음, 그런 의미는 아니에요. 

그만큼 힘드니깐 각오를 단단히 하는 게 좋다는 얘기고요. 

입학하는 과정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아요. 

입학시험도 한국처럼 수능이나, 내신을 보는 건 아니고요. 

여기 대학은 학생이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기보다는, 

그 학생이 대학에서 수업을 할 수 있는 머리가 있는가를 봐요. 

그 시험은 아주 간단해서, 영어를 잘 못해도 얼마든지 통과할 수 있어요. 

그래서 입학시험을 위해 따로 영어공부를 하진 않아도 될 것 같고요. 

입학시험 때 수학이나 물리를 보면, 

한국에서 고등학교만 다녀도 충분히 풀 수 있는 기초 수준이고요. 

문제를 읽지 못해도, 그래프나 그림만 봐도 대충 뭘 묻는지 알 수 있을 정도죠. 

물론, 이렇게 얘기한다고 아무 준비도 안 하고 그 시험에 통과할 수 있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 시험을 위해 한국에서처럼 피 터지게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죠.

 

GHam

그 시험은 한국처럼 일 년에 한 번 보나요?


 JV 

그건 아니에요. 

그 시험은 수시로 볼 수 있어요. 

일단 시험에 통과가 되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거죠. 

대학마다 다르긴 한데요, 대부분의 대학은 6월에 학기가 시작하거든요. 

기다리고 있다가 그때가 되면 들어갈 수 있죠. 


GHam

수업은 어때요?


JV 

영어를 쓴다는 걸 제외하면, 수업 수준은 높지 않아요. 

하지만, 꾸준히 공부하지 않으면 졸업을 할 수 없죠. 

한국 대학에선 F를 받아도 다음 학년에서 만회를 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여기는 F를 받으면 관계된 과목만큼은 다음 학년으로 올라갈 수 없어요. 

어떻게든 다시 해야 된다는 거고, 결국 졸업은 그만큼 늦춰진다는 거죠. 

그래서 대충 할 수 없어요. 

한국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정말 처절하게 준비하지만, 대학에 들어가는 순간부턴 신나게 놀잖아요. 

적당히 학점 관리하면서. 물론 열심히 하는 학생도 많이 있겠죠. 

아무튼, 여기 대학은 들어가긴 쉬워도 졸업하긴 정말 어려워요. 

오죽하면 여기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한국인 친구들을 봐도, 졸업을 하겠다는 생각은 아예 없어요. 

대부분 여기서 2학년까지 다니고 한국 대학으로 편입을 생각하죠. 

그만큼 여기서 졸업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많지 않아요. 

하지만 전 졸업하려고요. 

지금 제 꿈이 있다면 졸업이라고 할 수 있겠죠. 

우리 학교에 4년 전, 졸업한 한국인이 있거든요. 

그때 인터뷰 한 기사가 아직도 오피스에 걸려 있어요. 

한 해에 평균 8명 정도의 한국인 학생이 입학을 하는데요, 

졸업까지 한 한국인 학생은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만큼 졸업이 어려워요. 


얘기를 들어보니, 

정말 공부하겠다는 뜻이 있는 사람만 대학을 가고, 

그렇게 간 대학인 이상,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는 모습일 뿐인데, 

지극히 당연한 이 모습이 왜 이렇게도 낯설게 다가오는 걸까? 


JV 

여기 대학생들은 정말 성실해요. 

자기가 대학에 다닌다는 건 가족의 절대적 뒷받침이 있어야 하거든요. 

형이나 누나, 혹은 동생이 일해서 등록금을 내주는 경우가 많으니깐요. 

대학에 다니는 것에 대해 수혜자라는 걸 다들 알기에 정말 열심히 해요. 

여기선(필리핀) 집에 무슨 일이 있으면 일까지도 곧잘 쉬는데요, 

대학생들만큼은 절대로 수업에 빠지지 않아요. 

그만큼 열심히 하죠. 

그리고 수업은 아침 7시에 시작하거든요. 

대학교인데도 말이에요. 

제 경우엔 학교가 코앞이고, 직접 운전을 하고 다녀서 별 어려움 없는데, 

여기 애들은 새벽에 지프니 타고 평균 두 시간씩 걸려서 오죠. 

그런데도 절대 수업에 빠지지 않아요.

 

얘기를 듣다 보니, 마치 한국의 6,70년대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한국에선 (실력이 있는) 대부분 모두 대학에 가지만, 

우리 윗 세대만 해도 가족 중 한 명 정도만 대학에 갈 수 있었고, 

나머지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사회로 뛰어들어야 했다. 

그렇게 나머지 가족들은 돈을 벌고, 선택받은(?) 한 명을 위해 뒷바라지를 했다. 

가끔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신도 대학에 가고 싶은데 

집안 사정상 갈 수 없어 남몰래 소리 죽여 통곡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은가. 

같은 모습이었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도 아니다. 


덕선(혜리)이가 나오는 <응답하라 1988>에도 기울어진 집안을 위해 

대학을 포기하고 일하러 다니는 맏딸 보라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기당한 돈을 되찾은 아버지(선동일)가 어머니(이일화)와 함께 보라를 앉혀놓고 했던 말이 있다. 

이제, 뒷바라지는 우리가 할 테니, 넌 대학가라고.


GHam

필리핀에서 대학을 나온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JV 

여기서 대학을 나와도 한국의 대학을 나온 것처럼 인정을 받진 못 할 거예요. 

인정받을 수 있는 건 영어 정도? 

최소한 어정쩡하게 영어를 해서 졸업을 할 수 없으니까, 영어만큼은 수준급이 되겠죠.

그 점만 높게 평가받겠죠. 

하지만 이런 점은 좋아요. 

전 한국에서도 대학을 다녔잖아요. 

그땐 졸업하고, 미국으로 대학원을 갈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군대 제대할 무렵, 생각이 달라지더라고요. 

일단 졸업하고 미국을 가도,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생겼죠.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적인 부분도 무시 못했고요. 

처음부터 미국으로 가면, 한 학기에 몇 천 만원씩 돈이 들어갈 텐데, 

그 비용만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까 고민스러웠어요. 

결과만 보면, 그렇게 안 하길 잘한 거 같아요. 

미국으로 바로 갔다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은 돈대로 날리고, 

어쩌면 이건 아니다 싶어서 포기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여기는 일단 물가가 싸고, 학비도 싸니깐, 실패(?)를 해도 큰 타격은 입지 않죠. 

여기선 한 학기에 수업을 꽉 채워 들어도 학비가 40만 원 정도밖에 안 해요. 부담이 없죠. 

어떻게 보면, 여기서 어학원에 다니는 것보다, 저렴하다고 볼 수 있죠. 

그래서 전 필리핀으로 영어 공부하러 오시는 분들에게 

가능하다면 어학원보다는, 차라리 학교에 입학하라고 권하고 싶어요. 

제가 다니는 학교는 IT와 비즈니스 쪽만 있어서 좀 그렇지만, 

영문과가 있는 다른 대학에 입학하면 여러모로 좋을 테니깐요. 

영어도 영어고, 대학도 대학이지만, 

외국에서 대학을 다닌다는 건 여러모로 자신에게 기회도 많이 생긴다는 의미고, 

어학원과 차원이 다른 다양한 경험도 하게 되거든요.

* 인터뷰 중 나오는 필리핀 대학의 학비(금액)에 대한 내용은 대학마다, 그리고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GHam

아까,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면 미국으로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이었다고 했잖아요. 

그럼 이젠 그 꿈은 포기한 건가요? 


JV 

아니요. 지금도 미국의 대학원을 갈 생각이에요. 

미국 대학원에 입학하는 것도, 한국보다는 여기에서 대학을 나오면 더 쉬워요. 

여기 대학의 커리큘럼은 미국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어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의 대학원을 가면 수업이 끊어지는데, 

여기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의 대학원을 가면 선행수업을 이수한 것으로 인정되고, 

수업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거죠. 

마치 중, 고등학교 때 다른 학교로 전학 가도 수업 진도를 따라잡는 데 큰 어려움이 없잖아요. 

비유가 적당한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점에서는 참고할 만해요.  

처음부터 미국에 있는 대학원이 학업의 최종 목표라면, 

전 한국 대학보다는 여기서 대학을 나오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이력서에도 최종 학력이 중요하잖아요.  


GHam

학교에 직접 운전해서 간다고 했잖아요. 

운전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은데요.


JV 

일단 면허증은 한국에서 면허증이 있다면, 

필리핀 면허는 하루 정도만 기다리면 얻을 수 있어요. 

차 값은 중고차일 경우 한국보다 훨씬 비싸요. 중고차 수요가 새 차보다 높으니까요. 

하지만, 나중에 그 가격에 다시 팔 수 있어요. 아무래도 중고차 시장이 활발하니깐요. 

그런데, 여기서 운전하는 건 정말 힘들어요. 

뭐랄까, 위험하다고 할까요? 

교통 법규가 존재는 하나 싶을 정도예요. 

예를 들면, 한국에선 앞에 달리던 차가 차선을 바꾸다 저와 부닥쳤다면, 

잘못이 서로에게 조금씩 돌아가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그렇지 않아요, 뒤차가 잘못한 거예요. 

다시 말해서, 사고 당시 한 바퀴라도 뒤에 있다면 그 차가 잘못한 거예요. 

그래서 여기서 운전을 하다 보면 앞차가 뒤차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걸 알게 되죠. 

뒤차가 알아서 피하고 서야 해요. 

게다가 차선도 제대로 없고. 

지프니나 버스는 운전사 마음대로 아무데서나 서니깐, 

정말 잠깐 딴생각이라도 하면 바로 사고가 나죠. 

그리고 기름값도 비싸요. 

환율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만, 요즘엔 거의 한국과 비슷한 가격이거든요. 

여기 택시는 LPG가 아니라 승용차랑 마찬가지로 휘발유를 넣거든요. 

택시 요금은 싸고, 기름값은 비싸니, 택시운전사들이 바가지를 씌울 만도 하죠.


제이브이는 벌써 2학년이었다. 

다시 말해, 못해도 2년이란 긴 시간을 마닐라에서 보냈고, 

또 그의 큰 아버지가 하숙집을 운영하고 있으니 다양한 한국인을 만났을 것이다. 

제이브이에겐 그동안 많은 한국인을 만나면서 느꼈던 점이나, 당부하고 싶은 게 있을 것 같았다. 


JV 

어차피 일로일로 같은 사람이 별로 없는 시골의 어학원으로 가지 않고 마닐라에 왔다는 건,  

공부도 하고, 외국생활도 즐겨 보겠다는 생각으로 왔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한 번 제대로 즐기고 갔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자면 골프가 그래요. 

물론 한국에도 골프장은 있고, 코치도 훨씬 좋겠죠. 

하지만, 시간 내기도 힘들고 비용도 만만치 않잖아요. 

근데 여기는 골프장도 가깝고 차로 데려다주고 비용도 한국에 비하면 저렴하거든요. 

물론, 그 비용도 학생들에겐 크다고 생각하면 크죠. 하지만 제 생각은 좀 달라요. 

돈이란 얼마나 가치 있게 쓰는가가 중요하잖아요. 

여기로 공부하러 온 학생들이 저녁이랑 주말마다 자주 가는 KTV(필리핀 노래방, 가라오케) 가는 돈이면,

차라리 좀 더 모았다가 골프를 치는 게 더 낫다는 거죠. 

골프 외에도 테니스나, 승마, 스킨스쿠버 등 찾아보면 괜찮은 여가생활을 맘껏 즐길 수 있거든요. 

공부하는 스케줄을 짜서 왔다면, 아울러 이런 여가생활 스케줄도 함께 짜는 게 좋아요. 


그리고, 정말 당부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한국인의 가치를 스스로가 지켰으면 좋겠어요. 


마닐라로 영어 공부하러 온 학생들 중에 꽤 많은 학생들이 KTV에 자주 가고 거기서 현지인을 사귀고, 

그 이유를 물어보면 빠르게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라는 말도 안 되는 괴변을 늘어놓는데요.  

우리 하숙집에 머무는 형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유행처럼 그러고 있더라고요.

사실, 자신의 영어공부에도 도움이 되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대학교에만 와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자신의 가치를 그렇게 스스로가 깎아내리는지 모르겠어요. 


누구나 대학을 가려고 한다. 

그리고 누구나 좋은 직장에 들어가길 원한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꿈은 아닐 것이다.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꿈꾸지 않는가? 

음악을 하고 싶어 하거나, 

자신의 이름을 내건 가게를 차리고 싶어 하거나, 

아니면 작가나 배우가 되고 싶거나 하는. 


제이브이에겐 미국의 대학원이라는 최종 목표 외에 어떤 꿈이 있을까? 

조금 망설이던 제이브이는 조금은 민망한 듯한 웃으며, 

따로 생각하고 있는 자신의 또 다른 꿈을 얘기해주었다. 


JV 

마닐라에서 일식 프랜차이즈를 만들고 싶어요. 

제가 일식을 참 좋아하거든요. 

여기서 어느 정도는 성공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 판단도 하고요. 

그래서 돈을 벌면, 호텔사업도 하고 싶어요. 

아, 호텔이라고 하지만.... 그러니깐 한국 모텔 같은 거요. 

한국은 이미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고, 제가 가진 게 정말 많지 않으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잖아요. 

하지만 여긴 비집고 들어갈 틈이 많아요. 

무엇보다 적은 자본으로 충분히 연습을 해볼 수도 있고요. 

평생을 마닐라에서 살겠다는 건 아니지만, 

여기서 뭔가를 테스트하기엔 정말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해요.

 

훗날 마닐라에 다시 오게 되면, 

제이브이가 운영하는 호텔에 묵으면서, 

그가 세운 일식 프랜차이즈에서 식사를 하는 것도 꽤나 즐거울 듯했다.  


꼭, 성공하길 바란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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