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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현 Jul 25. 2021

노력하긴 싫지만 여행은 가고 싶어

낯선 설렘: 사이판

#사이판 #여행에세이




어쩌다 보니 여행 관련 에세이를 출간하면서 '여행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됐지만, 

내가 생각하는 '여행작가'는 여행에 진심인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타이틀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낯선 설렘: 사이판> 편에서는 그 '진심'과 '노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내 첫 여행은 교회 수련회와 비슷하게 떠난 수학여행이겠다 싶다. 

그런데 첫사랑도 처음이라 모르고 어설프기에 좋은 기억보다는 쪽팔리고 아픈 기억이 더 큰 것처럼, 

교회 수련회는 성경을 암기해야 밥을 주는 시스템에 반발하며 금식을 했기에 그다지 좋은 기억이 없고,

(지금도 생각하니까 열 받는다. 왜 밥을 주면 그냥 주지 성경을 외워야만 준다고 해?) 

수학여행도 아싸리(?) 제대로 일탈을 했어야 했는데, 그다지 이야기할만한  추억거리(?)가 없다. 

그리고는 MT 정도?

개인적으로 짐을 싸서 집을 떠나본 적이 없다. 

여행에는 관심도 없는 순도 100% 집돌이. 그게 나다. 

이 성향은 여행작가(?)라고 불리는 지금도 동일하다. 

집이 좋고, 집이 편하다. 

그렇다고 밖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집이 너무 좋고 편해서, 밖에 대한 로망이 없을 뿐이다. 


그런 내가 여행을 하게 되고, 

그 여행을 기록하고, 정리해서 책까지 내게 된 이유는, 

<낯선 설렘>의 포스트를 계속 업로드하면서 충분히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테니

다소 불친절하지만, 패스.


이번 포스트에서는 이런 성향의 내가, 

회사에서 보내준 사이판 여행에 대한 짧은 단상을 기록해 본다.  




1.

어느 날 회사 대표가 내게 사이판에 가겠냐고 물었다. 

거래처에서 파트너사의 담당자들과 함께 해외연수(?)를 가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우리 회사에서는 내가 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때, 파견근무로 외부에 나와 있는 상태였는데, 고생한다는 차원에서 보내주는 뉘앙스였다.  

'그래도 다른 일정이 있거나 가기 싫다면 다른 사람을....' 보내겠다는 말이 나오려는데, 

'알겠다, 가겠다.' 고 대답했다. 


(나중에 다녀와서 알게 됐는데, 나에게 말한 건 인사치레였고, 

사실은 정말 고생한 사람을 보내고 싶었는데, 그 직원이 내 밑이라, 
일단 나에게 물어보고, 당연히 내가 양보를 하는 그림을 생각했었다고 했단다. 

그래서 그 직원은 입이 대빨 나왔다고 전해 들었다.

처음부터 말을 정확하게 하던지.... 떠보긴 왜 떠봐? 애들도 아니고.)


2. 

생각지도 못한 여행이고, 

내가 준비하고 계획하는 여행도 아니고, 

그냥 몸만 가는 여행(?) 처음이라, 

출발 당일 새벽까지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다가, 

아침에 부랴부랴 옷 정도만 챙겨서 공항으로 향했다. 


3. 

공항에 도착하니, 거래처에 담당자는 총 3~4명이었고, 

나름 시뮬레이션을 해봤는지, 우왕좌왕하지 않고 침착한 인솔이 시작됐다.

너무도 나이스 해서 여행사 직원인가 할 정도였다. 


파트너사의 담당자들은 나를 포함해서 10명 정도. 

나이는 나와 비슷했다. 아무래도 회사에서 짬밥이 어느 정도 돼야 올 수 있었나 보다. 

물론, 아주 어린 사람도 몇 보였다. 그 회사의 문화가 보이는 듯했다.

그때 잠깐, 나도 양보를 했어야 했나, 잠깐, 아주 잠깐 생각했다. 


4. 

사이판 여행은 몇 줄로 정리가 된다.


[술] 

출발하는 인천공항에 모였을 때만 해도 어색 어색했는데, 

도착한 날 밤, 파트너사에서 제공하는 술을 마신 다음날부터는 급격하게 친해졌다. 

역시, 친목도모에는 술이 최고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다음날 다소 부끄러운 표정으로 조식을 먹기 위해 식당에서 마주치면, 

'속은 괜찮으세요? 한국이 아니라 북엇국 같은 게 없어서 아쉽네요.' 하면서 안부를 묻는 정겨움(?)과,

전날 밤에 얼추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었으면 눈여겨봤다가 슬그머니 커피나 주스를 챙겨주는 살가움(?)을.


나도 한창 연애에 목마르고 있던, 

싱글라이프를 즐기고 있던 터라 눈이 가는 이성이 있었는데, 

아쉽게도 내색을 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마음이 없는 이성과는 몇 년이나 알고 지내던 것처럼 친해졌는데 말이다. 


이 경험은, 

이후, 한참 뒤에 하게 되는 '터키' 여행에서 큰 변화를 일으킨다. 

자세한 이야기는 <낯선 설렘: 터키> 편에서 하려고 한다. 

(이번 포스팅은.... 유독 더 불친절한 걸.... ㅡ..ㅡ)


[옷]

이래 봬도 필리핀에서 1년 넘게 살다 온 사람이야. 

그래서 더위는 안 탈 줄 알았는데, 덥더라. 

그런데, 반바지를 안 챙겨 왔다. 

게다가 짐이 많은 걸 싫어해서 운동복 긴바지 한 벌만 입고 왔었다. (수영복이랑)

어찌나 덥던지.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뒤풀이 겸해서 모였는데, 

다들 나에 대한 기억이 '참 이상한 녀석'이었다고 했다. 

현지인도 안 입을 것 같은, 

그것도 정말 집에서 입을 듯한 옷 하나만 (정말 집에서 입는 옷 맞았다. ㅡ..ㅡ) 입고 다녔으니.

장소마다, 시간대마다 옷을 바꿔 입으면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보기엔, 

내가 별종이긴 별종이었다.  


지금도, 여행을 할 때, 

그렇게 옷에 신경을 쓰는 편은 아니지만, 

이제는 적어도 가려는 나라의 기후나, 

내가 다른 사람의 사진에 등장할 때, 도려내고 싶어지지 않을 정도로는 꾸민다. 

(음.... 꾸미긴 꾸미는데.... 음.... 솔직히 자신은 없다.)


그러고 보면, 

여행의 교복과 같은, 

등산복이.... 왜 어르신들에게 인기가 있는지 알 것도 같다.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까. 

(아닌가? 나름 등산복 패션이라는 게 있는 건가?)


그런데, 왜 산에 오르는 것도 아닌데, 

해외여행을 도시나 바다로 가도 등산복을 입는 걸까?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 


물론, 내가 남의 옷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관광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인데,

난 인위적으로 꾸며놓은 공간에 대한 매력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 

그러니까 아무리 잘 꾸며놓은 정원의 꽃도, 

보도블록 사이로 피어난 꽃만큼의 감동을 (적어도 나에게) 주지 못한다.

잘 정리된 시설물은, 

세월의 일상이 묻어나는 어느 자그마한 동네의 골목길에서 마주하게 되는 감동을 주지 못한다. 


사이판에 있는 동안, 

낮시간에는 햄버거 바위라든지, 자살 절벽이라든지 등을 가긴 했지만, 

솔직히 별 느낌이 없었다. 

차라리 그곳까지 가는 길가에 핀 꽃이 좋았고, 고개 들어 쳐다본 구름이 멋있었다.

그렇다고 구름 보겠다고 사이판까지 가는 경우는 없으니, 

이런 내가 여행을 꼭 떠나는 이유를 못 찾는 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기념품]

지금이야 거의 사라진 문화로 알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해외여행이 흔하지 않았고, 

그래서 해외여행을 하면, 꼭 기념품을 사서 주변 사람들에게 돌려야 했다. 

(그 돈으로 차라리 더 맛있는 거 먹고, 더 구경이나 하고 오지....)


그래서 기념품은, 

여행을 다녀온 자에게는 일종의 자랑이었고, 

여행을 다녀오지 못한 자에게는 일종의 배아픔이었다. 


그렇다고 그 기념품이 대단한 건 아니다. 

그 지역 이름으로 디자인된 냉장고 자석, 볼펜. 열쇠고리 거나, 

그 지역 특산물 중 커피와 같은 차가 다수였다. 

커피야 한국에도 있는 거고, 

사이판에서 산 기념품 뒤에  Made in China라고 새겨진 것이, 과연 무슨 의미일까 싶다. 


예쁜 쓰레기.

아니, 예쁘지도 않은 쓰레기.


5. 

자유 시간이 주어지긴 했지만, 

대부분 리조트 밖으로 나가지 않고,

리조트 수영장을 이용하거나, 

리조트 앞 바닷가를 거니는 정도였다. 


누가 보내준다고 신났다고 온 여행이긴 했지만, 

아무런 준비가 없었기에, 

제대로 그 여행을 즐기지 못했다.


그러니까. 

그래서.


여행에도 분명 준비가 필요하다. 

무엇을 챙길까 하는 준비물에 대한 준비가 아니라, 

여행을 위한 학습을 말하고 싶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여행을 하는지도 좀 살펴보고,

내가 가려는 곳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도 조사해보고, 

하다못해, 내가 가려는 곳에서 찍은, SNS에 올라온 다른 사람들의 사진을 보면서, 

어떻게 찍으면 인생 샷을 건지는지 정도의 염탐이라도 해야지, 

똑같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제대로 여행을 할 수 있다고 본다. 


6. 

아마도 내 인생에서 

적어도 사이판을 다시 갈 일은 없을 것이다. 

세상에는 가볼 곳이 무궁무진하니까. 

그리고 내가 아무리 발품을 팔아도 세상의 구석구석을 다 돌아다닐 수는 없으니까.

(걸어서 세계 속으로 PD라도 어렵지 않을까?)

굳이, 사이판을 다시 가지는 않겠지. 


그래서 더 준비를 했어했고, 

그래서 더 격렬하게 그 여행을 즐겨야 했다. 


다시는 가지 않을 장소였고,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이었으니까. 


7. 

집돌이인 내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

그게 여행이 주는 매력이니까. 

문지방을 넘게 하는, 설명하기 어려운 매력이 분명, 

여행에게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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