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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현 Aug 09. 2021

친구의프러포즈

낯선 설렘: 일본

#일본 #도쿄 #동경 #서울 #동경서울






친구의 프러포즈

女_과거: 서울, 동묘



넌 자연스럽게 프러포즈를 했지만, 

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슬며시 웃고 만 거야. 


장난 아니라며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내 입술만 바라보는 너에게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한 건 


진지한 너의 눈빛과 

부드럽게 마음을 어루만지는 너의 손길이 

싫지는 않았기 때문이야. 


그래, 싫지 않았어. 


하지만 그건, 

좋지 않았다는 의미도 담겨 있는 거야. 


한결같이 내 곁을 지켜준 친구였는데,

대답 한 마디로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그래, 

솔직히 없었어. 

우리의 우정이 그렇게 얄팍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래서 잠시지만, 

너와 알몸이 되어 하나의 침대에 포개어 잠든 모습도 상상했어.


그래, 나쁘지 않았지. 


비록, 알몸은 아니었지만, 

삶이 무척 힘들었던 많은 날들을 

너의 품에 안겨 잠들곤 했으니까.


그날부터 네가 사랑으로 키워온 감정을 

난 아닌 척하며 우정으로만 애써 포장하려 했지.


사랑. 


그 사랑이란 게 유통기간이 있어서, 

그래서 끝내 썩어버린다고 해도. 


나도 너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은데, 

넌 날 이해할까?





사랑은 라디오처럼

女_과거: 서울, 동묘



여자는 자신이 여자라는 걸 알게 되는 

아주 작은 꼬마 때부터 자신만의 결혼을 꿈꿔오니까. 


‘정말 갈 거야?’

‘응.’


서울행 비행기에 올라서는 날 붙잡은 건,

억지로 웃어보려 하는 너의 어색한 얼굴이었어.


‘간다는 그 대답. 거절이지?’

‘.... 아니.’


분명, 거절의 의미는 아니야. 

너의 청혼으로 내가 결혼을 할 나이임을 알았고, 

단지, 너라는 확신을 갖고 싶은 거야.


‘그 서울에 산다는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겠지만, 그렇지만 혹시라도 만나게 되면, 할 거지? 연애.’

‘아마도.’

‘그런데도 지금 나에게 거절은 아니라고 하는 거고.’

‘응.’

‘그렇다면 난, 보험이네.’


그 말에 왈칵 널 안은 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지려 했기 때문이야. 


‘알았어, 잘 다녀와. 이기적인 년아.’

그게 네가 

겨우 내게 

할 수 있었던 원망 섞인 욕이었어. 


그것도 무척이나 슬픈 눈을 하고서

입가엔 웃음을 애써 머금고 있었지.


우린 친구니까, 

이런 날 이해해 줄 거라고 믿는 건.


그래, 정말 이기적이지.


하지만, 

사랑 앞에서 우위에 올라서는 건 

언제나 덜 사랑하는 쪽이니까.


미안.

난, 널. 


너만큼 사랑하지 않아. 






사람 잘못 봤습니다

男_현재: 동경, 시모키타자와



울며불며 붙잡을 줄 알았나 본데, 사람 잘못 봤습니다. 

시들시들 아파할 줄 알았나 본데, 사람 잘못 봤습니다. 

죽을 듯이 괴로워할 거라 믿었나 본데, 정말 사람 잘못 봤습니다.

 

내 삶에서 떨어져 나가길 원한 사람입니다. 

잔인하게 떠났으니, 잔인하게 잊겠습니다.

깨끗하게 잊어주겠습니다.





쉬는 토요일

男_현재: 동경, 시모키타자와



조그만 창문을 열자,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시원했다. 

눈 뜨자마자 돌렸던 세탁기에서 

꽃 향기를 가득 머금고 서로 엉켜있는 셔츠와 수건들을 

하나하나 꺼내 창가 옆에 나란히 널어놓았다. 


모처럼 쉬는 토요일. 

당신이 좋아하는 유부초밥을 만들어 

가까운 공원이라도 나갈 생각에 

서둘러 문자를 보냈다. 


‘우리 공원에라도 갈까?’

그래 놓고, 

문자를 받은 당신이 외출 준비를 마쳤을 때, 

당신의 집 앞에서 바로 만날 수 있도록 준비를 서둘렀다. 


먼저, 옷을 벗고 거울 앞에 섰다. 

그간 운동을 소홀히 했는지, 

조금은 배가 나온 것 같아서 두세 번 손바닥으로 애꿎은 배만 두들기다가 

이번엔 면도기를 들고 턱선을 따라 비누거품을 묻혔다. 

면도크림이 있었지만 당신이 유난히 비누 향을 좋아하기에.

날카로운 면도칼이 제멋대로 자라난 수염을 자르고, 

이제야 샤워를 시작했다. 

적당히 물의 온도를 맞추고, 

세찬 물줄기 아래 설 때, 

온몸을 감싸고 흘러내리는 비누거품이 좋았다. 

젖은 머리를 말리며 방으로 돌아왔을 때, 

반갑게도 문자 하나가 와 있었다. 


침대로 달려가 날아가듯 눕고, 

괜스레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문자를 확인했다. 


‘나, 선약이 있어.’

짧은 한마디. 


한참을 문자를 바라보다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은은했던 비누 향은 금세 찌든 담배 냄새에 덮여버리고, 

화창한 하늘 아래 싱그럽게 부는 바람은 차갑다 못해 춥게 느껴졌다. 

깊게 빨아들인 진한 연기는 내 몸속을 온통 휘젓고, 

답답해지는 호흡에 깊은 한숨을 들이마시자 거칠고 마른기침이 쏟아져 나왔다.

 

젠장. 

정말 시리도록 파란 하늘이었다. 


담배를 비벼 끄고, 

천천히 침대 속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가 누웠다. 

사각거리는 두꺼운 무게의 이불을 머리 끝까지 끌어당겨 덮고는 

서둘러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자꾸만 밀려드는 우울함을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잠이나,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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