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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현 Aug 10. 2021

그 유부녀의 대답은

낯선 설렘: 일본

#일본 #도쿄 #동경 #서울 #동경서울






현대판 동화

女_과거: 서울, 삼송



첫 만남.

여자는 가볍게 취해 있었어요.

 

‘오늘 밤, 같이 있어요. 우리.’ 

남자의 말투는 진지하면서 부드러워서 싫진 않았지만 잠시 망설였어요. 


‘No.’라고 하기엔 함께 술을 마시며 해놓은 이야기가 많았고,

‘Yes.’라고 하기엔 그래도 왠지 쉬워 보일 것 같았거든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야릇한 웃음을 짓기로 마음먹었을 때,

이번에도 남자가 먼저 선수를 쳤어요. 

‘Yes.’라고 대답하지 않아도 좋지만, 

그렇게 대답하더라도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그리고는, 살짝 고개를 돌리고 남은 술잔을 천천히 비웠어요.

 

더 이상 대화는 없었어요. 


여자는 침묵이 길어질수록 자신을 조여 오는 초조함을 느꼈어요.

이대로 ‘Yes.’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끝날 것 같은 아쉬움만이 주위를 감돌았거든요. 


자정이 넘지 않은 시간. 

남자는 망설이기만 하는 여자의 귓가에 끊임없이

담백하면서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고,

새벽이 될 무렵, 둘은 한 몸이 되었어요.


그 후로,

일주일 동안 여자는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았어요.

하룻밤의 여운이 그만큼 길었거든요. 

너무나 완벽했기에 어설픈 행동으로 그 여운을 깨고 싶지 않았어요.

평생 그날과 같은 순간이 없다 해도 괜찮을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점차 여자는 그리웠어요. 

남자가 그리웠다기 보단 

함께 했던 그 순간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었어요. 


잠시 망설인 여자는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남자는 여자의 전화번호를 보고 망설였어요. 

그렇다고 눈치챌 정도로 길게 끌지는 않았어요.

여전히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습관처럼 옆에 놓인 다이어리를 펼쳐놓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글자와 그림을 그려가며 

여자가 하는 말을 듣고만 있었어요. 


“오늘 밤, 만날 수 있어요?”

마지막 물음에 남자는 하던 일이 있어서 곤란하다고 했어요.

하던 일이라곤 다이어리에 낙서하는 게 전부였으면서요. 


“혹시, 무슨 일 있는 거예요? 내일은 시간이 되는데.”

그렇게 물으면서 다이어리 귀퉁이엔 자연스럽게 한 단어를 적었어요. 


임신?


전화를 끊고 여자는 만나기로 한 약속에 한껏 들떴지만,

전화를 끊고 남자는 무거운 마음에 담배를 찾았어요. 


여자는 생각하는 게 그래요.

남자는 생각하는 게 고작 그래요.





루머

女_과거: 서울, 삼송



이젠 하도 들어서 자극도 안 되네요. 

말이 돌고 돌아 말을 만들어 내는 걸 아는데, 눈물. 

그런 건 개나 줘버려요. 


독기밖에 안 남았다고요? 

그건 약해 빠진 사람들의 자기 합리화일 뿐이에요. 


내가 머릴 숙일 거라 생각했어요? 

왜요? 


이렇게 나오니까, 생각대로 안 움직여줘서 당황스럽나요? 

피해자가 되고 싶었나요? 


아아! 

그러고 싶었는데, 내가 먼저 다 까발리니깐 당혹스럽나요?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그냥, 단 한마디. 

걔, 좀 이상하잖아. 

이렇게만 말해도 이젠 다들 수긍하고 머릴 끄덕이겠네요. 

지금까지 떠들고 다닌 말이 있으니까. 


자, 내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 알잖아요. 

미안하다고 하고. 

아님 말고 라며 돌아서면 되잖아요. 

너덜너덜해지는 나 따위는 처음부터 상관도 없었으면서, 

내 앞에서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다며 눈물짓지 말아요. 


그냥, 쉿! 

닥쳐요.






소통

男_현재: 동경, 지유가오카



그랬다. 

말하지 않아도 호흡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아무리 표정을 감추고 있어도 당신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충분히 알 수 있으면서도 훔쳐본다는 부끄러움에 모른 척했다.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러한 소통이 어느 순간, 끊어져 버렸다. 

하루 종일 우리는 서로를 향해 떠들어 댔지만, 

소통이 되지 않는 답답한 날은 늘어만 갔다. 

그래, 어쩌면 처음부터 누군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 따위는 없었는지도 모른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는 착각이었을 뿐. 

단 한 번도 맞는가에 대한 확인은 하지 않았으니까.

우린, 참 엉뚱한 착각으로, 


처음부터 아무런 소통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 유부녀의 대답은

男_현재: 동경, 지유가오카



애인 있는 여자에게 물었다.

가장 해보고 싶은 게 뭐냐고.


짧은 한마디의 대답. 

진짜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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