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라는 변명

낯선 설렘: 일본

by 감성현

#일본 #도쿄 #동경 #서울 #동경서울






후회라는 변명

女_과거: 서울, 뚝섬 유원지



두 개의 갈림길 앞에서 고민에 잠기지.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두 개의 갈림길을 만들고는 스스로 고민에 빠져들지.

그때마다 마음 깊이 물어봐.


나에게 허락한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시간이란 언제나 내 곁을 맴돌고 있는 친구 같은 거야.

애써, 모른 척할 뿐이지.


언제인지 알 수는 없지만,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잖아.


삶의 끝이 두렵다면,

아마도 그 이유는 미련 때문일 거야.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한 미련.


두 개의 갈림길에서 나의 선택은

어느 길이던 내 모든 걸 하얗게 태우자는 거야.


적어도 선택하지 않은 또 하나의 길을 돌아보며

후회를 하는 건 부질없으니까.


그래, 후회라는 건 변명이야.

아니, 유치한 어리광에 불과해.


죽음 앞에 서면.

웬만한 모든 게,

다 유치해지거든.





마법의 장소

女_과거: 서울, 뚝섬 유원지



그런 곳이 있잖아.


전혀 특별하지 않으면서도 나에게만은

그 어떤 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함이 느껴지는 곳.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혼돈의 머리가 차갑게 다스려지는 묘한 힘을 간직하고 있는 곳.


난 그런 곳을 마법의 장소라고 불러.


마법의 장소는

서늘한 그늘에 살랑거리는 바람이 불어오는

커다란 나무가 있는 곳일 수도 있고,

비릿한 파도소리가 온몸을 감싸 도는

탁 트인 바닷가가 있는 곳일 수도 있지만,


건너편과 이어주는 다리가 있고,

그 아래 잔잔하게 물이 흐르는 곳을 보면,

그 마법에 걸려.


서울에서 발견한 그곳은,

범선 모양의 식당이 하늘을 날고,

어디선가 날아온 갈매기가 그 옆을 수호하며 날아가.

바다도, 하늘도 아니면서,

바다도, 하늘도 모두 되는 믿을 수 없는 착각이 일어나는 곳이지.


아직은 낯선 서울이라는 이 도시에서,

나에게 또 하나의 마법이 새롭게 일어나고 있어.


자아.

너에게 마법의 장소는.


어디니?






하나밖에 모르는 남자

男_현재: 동경, 이케부쿠로



양치를 하면서 신문을 읽을 수 없고,

식사를 하면서 TV를 볼 수도,

다림질을 하면서 전화를 받을 수 없다.


변명 같지만 난 오직 하나밖에 할 줄 모른다.

그래서 당신을 만나는 순간엔 당신만 바라보지만,

사실 나에게도 삶이 있고 일이 있다.


문제는.

그 삶보다 당신이 언제나 먼저일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미안. 지금 일하는 중이라서...... 급한 일이야?

미안. 지금 씻고 있었는데...... 별일 아니면 이따가 통화하자.

미안. 지금 뭘 좀 보고 있어서...... 나중에 얘기해도 될까?


그럴 때마다 당신의 목소리에서 속상함이 느껴진다.

하나밖에 할 줄 모르는 날 끝내 이해하지 못하는 듯, 날 미안하게 만든다.


그게 나보다 중요해?

늘 이렇게 끝을 맺는다.


내 일과 삶에서,

당신 하나를 만났을 뿐인데,

난 일과 삶도 제대로 소화 못하는 바보가 되고,

널 사랑해주는 당신에게도 제대로 못하는 못난이가 되고,

늘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


다른 어떤 것도 당신보다 중요한 건 없다.

하지만 사랑만 하고 살 순 없다.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그 일을 하려는 마음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이젠 우리를 위해서니까.

그러니까 더 이상 어리광은 그만두라고 했다.


하지만 당신은 차갑게 웃는다.


어리광?

사랑만 하고 살 순 없다?

당신은 단단히 토라져서 입을 다문다.

내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도 여자가 원하는 대답은 그런 게 아니야’라는 말로 마지막까지 자존심을 굽히지 않는다.


처음엔 당신은 좋아했다.

하나밖에 할 줄 모르는 나에게

그 하나가 당신이라는 사실에 무척이나 행복해했으니까.

하지만 수많은 여자들 중에서만 하나일 뿐이라며

견디기 힘든 외로움이 밀려온다고 했다.


일, 가족, 친구, 휴식...... 그 모두에서도 유일한 하나이길 바랬다.

말이 되지 않는 걸 알면서도 그 말을 매번 나에게 내뱉었다.


왜 그렇게 철이 없어?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당신만 바라볼까?

정말 그렇게 있길 바라?


당신은 그 말에 울었다.


자신을 왜 그런 여자로 만드냐며 오히려 답답해했다.

좀처럼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그 눈물이 멈출 즈음,

당신은 날 떠났다.


양치를 하면서도 손을 멈추고 멍하니 서있고,

신문은 벌써 몇 시간 째 같은 줄만 반복해서 읽고 있다.

식사는 툭하면 거르고,

켜놓은 TV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

빨지도 않은 구겨진 옷을 입고,

멍하니 울리지도 않는 전화만 바라본다.


당신이 떠나도 여전히 난,

하나밖에 할 줄 모르는 남자다.





길을 잃다

男_현재: 동경, 이케부쿠로



멍하니 한참을 같은 자리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곳으로 가야 하는 것도 아니면서 길을 잃자 불안함이 밀려온다.

발길 닿는 대로 거닐고 있었으면서도 방향을 잃고 헤매니

모든 걸 제쳐두고 길 찾기에 매달린다.

행여나 실수로라도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서둘러 잃어버린 방향을 찾는다.


더 이상 당신에게 다가가지 않도록.

완벽하게 당신에게서 멀어질 수 있도록.



일본_도쿄_이케부쿠로__MG_3924.JPG
일본_도쿄_이케부쿠로__MG_3855.JPG
일본_도쿄_이케부쿠로__MG_3893.JPG
일본_도쿄_이케부쿠로__MG_3872.JPG
일본_도쿄_이케부쿠로__MG_3876.JPG
일본_도쿄_이케부쿠로__MG_3869.JPG
일본_도쿄_이케부쿠로__MG_3954.JPG
일본_도쿄_이케부쿠로__MG_3921.JPG
일본_도쿄_이케부쿠로__MG_3962.JPG
일본_도쿄_이케부쿠로__MG_3973.JPG
일본_도쿄_이케부쿠로__MG_3978.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파하는 내 모습이 멋져 보이는 나르시시즘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