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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현 Aug 27. 2021

당신에게서 무뎌지기 위함

낯선 설렘: 일본

#일본 #도쿄 #동경 #서울 #동경서울






속아주니 우습니

女_과거: 서울, 이대입구



바보라서 속는 게 아니라,

단지 '의심하는 내 모습'이 싫어서

속아 주는 거야.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가볍게

女_과거: 서울, 이대입구



이.따.가.

그 말은 내가 생각할 땐. 

아무리 양보해도 하루는 아닌 거 같은데?


조.만.간.

그 말은 내가 생각할 땐. 

아무리 양보해도 한 달은 아닌 거 같은데?


언.제.한.번.

그 말은 내가 생각할 땐. 

아무리 양보해도 일 년은 아닌 거 같은데?


그냥. 

아무런 약속도 하지 마.

차라리.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만 해.






이별후愛(애)

男_현재: 동경, 우에노



“아파, 나 지금 너무 아파.”


- 당신은.


“미안. 갑자기 당신이 떠올랐어.”


- 왜 나에게 연락을 했니?


“나, 이러면 안 되는 거지?”


- 이미 해 놓고는.


“그냥, 못 들은 걸로 해줘. 미안. 끊을게.”


-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데?


나도 아파.

계속 아프고 있었는데

당신은 

끝까지 날 아프게 만든다.





이제 그만 꺼져줄래

男_현재: 동경, 우에노



오래 끌고 싶지 않아. 

당신을 만나기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 

아프다고 칭얼대는 것도 지겹고, 

더 이상 사랑 따윈 하지 않는다는 거짓말도 지긋지긋해. 

내 몸엔 벌써 땀에 찌든 쉰내가 풍기는데, 

아, 끝을 낼 수가 없어. 

이대로 걷다가 돌아가는 길을 잃고 낯선 거리에 지쳐 쓰러질 것만 같아. 

왜 시작했는지도 잊고, 

뭘 잊으려 했는지도 모르고 초점 없는 눈으로 주변을 살피겠지. 

그러니 오래 끌고 싶지 않아. 

이제 그만 꺼져줄래.





딱 한 걸음만

男_현재: 동경, 우에노



당신이다. 

중심을 잃은 척 딱 한 걸음만 내디디면 당신의 얼굴을 볼 수 있는데 

바닥에 붙어 버린 발은 얼어붙어 좀처럼 움직일 줄 모른다. 


출발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오고 

뒤늦게 달려온 사람들이 날 밀치고 열린 문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가자 

고막을 괴롭히는 익숙한 소음과 함께 문이 닫힌다. 


내가 서있는 방향으로 천천히 전차가 움직이고 당신과 눈이 마주칠 찰나, 

겨우 굳어있던 몸을 움직여 고개를 돌린다. 


잠시지만 당신이 날 알아본 것도, 

렇지 않은 것도 같다. 


살짝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창문에 바싹 매달려 있는 당신의 모습이 보인다.

 

아직은 당신을 만나긴 싫다. 

멀어지기 위해 애쓰고 있는 나에게 실패를 안겨주고 싶지 않다. 

쓴 약을 계속 먹다 보면 더 이상 쓰지 않게 된다. 

레몬은 계속 먹다 보면 더 이상 신 맛을 느끼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 

달리기를 계속하다 보면 괴로움은 어느덧 묘한 쾌감으로 밀려온다.

 

당신을 생각하고 

당신을 기억하는 건 

당신을 잊기 않기 위함이 아닌, 


당신에게서 무뎌지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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