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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현 Feb 17. 2022

쿠팡 플렉스 해버렸지 뭐예요

쿠팡 플렉스

1. 놀면 뭐하니?

퇴사를 하고 반년 넘게 놀다 보니, (당연히) 돈이 필요해졌다.

나름 투자도 해놓고, 매달 들어오도록 돈도 세팅해 뒀지만, 돈은 늘 넉넉하지는 않으니까.


사실 난, 소설가다. 

그리고 지금 신작을 쓰고 있다. 

하지만 글이라는 게, 의자에 열두 시간 앉아 있다고 열두 시간 내내 써지는 건 아니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반 년 동안, 글 썼다는 말이 아닌 놀았다고 하는 게, 

100page 정도 썼을까. 


물론, 나도 미치겠다. 

차라리, 미래의 내가 쓴 소설을, 지금의 내가 타이핑만 했으면 좋겠다.


아무튼, 토요일 저녁. 

그 프로그램의 제목이 유난히 내 가슴을 후벼 팠다. 


놀면 뭐하니?


유느님도, 

무명 시절에 일이 없어서 내일 뭐할지, 그게 걱정이었다고 하던데.

그때 유느님도 단기 알바는 했을까?

아니, 그럴 시간에도 개그를 짰을까?


난, 유느님의 발가락의 때만큼도 못 쫓아가니, 

모든 시간을 소설 쓰기에 밀어붙여야 하는데, 


놀면 뭐하나, 

용돈이라도 벌자 싶었다. 


2. 일하지만 자유롭고 싶다. 

쿠팡 플렉스가 눈에 들어왔던 건, 

일은 하긴 하지만, 자유롭다는 느낌이 강해서다. 


내가 원하는 날에, 

내가 원하는 시간에,

고용주(돈 주는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일을 한다는 것이 좋았다. 


호기심에 여기저기 알아보고, 

유튜브도 보다가, 카톡 채널을 등록했더니, 

매일 오후 4시가 되면, 

온갖 프로모션으로 날 꼬셨다. 


머릿속에는 소설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강박에 가깝게 자리 잡고 있어서, 

규칙적으로 출근해야 하는 일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취업도 그랬다. 

취업할 거면, 퇴사를 안 했지. 

전에 다니던 회사가 얼마나 좋았는데. 싶은 마음이랄까?


물론, 이 나이에 마땅히 취업할 곳도 없었다. 


반년을 쉬었던 탓에, 

다시 일할 생각을 하니 귀차니즘이 밀려왔지만. 

돈은 필요하고, 놀면 뭐하나 싶고. 


그래, 하자. 


쿠팡 플렉스 어플을 깔고, 

기웃거리다가, 


주차는 어떻게 하나,

차가 막힐 텐데,


이런저런 걱정 끝에, 

주간이 아닌, 야간 업무를 신청하기로 하고, 

업무 신청 버튼을 눌렀다. 


3. 쿠팡 플렉서를 하면서 느낀 점.

분위기의 흐름상 3번은 

어떻게 쿠팡 플렉스의 업무 신청하는 가? 

어플 사용 방법은? 과 같은 정보가 튀어나와야겠지만, 


인터넷에 이와 같은 정보는 넘치고 넘치기 때문에. 

그리고 그보다 더 잘 정리할 자신도 없기에.

무엇보다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기에. 

(가령, 쿠팡 플렉스가 돈을 주면서 설명 글을 써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니까.)


바로, 

일하면서 내가 느낀 점들을 적어볼까 한다. 


a. 관리자가 싸가지 없다?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곱게 자란 사람이라면 행여나 상처를 받을 수도 있겠다 싶긴 하지만, 

자기도 바빠 죽겠는데, 초보 플렉서들을 챙기려면, 

자기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지거나 할 수 있는 거니까. 

아, 물론 그 마저도 느끼지 못했다. 

그렇다고 막 친절하고 따뜻한 것도 아니다. 

그냥 일로 만난 사이. 

회사가 알려준 매뉴얼 대로, 감정을 유지하는 프로의 모습이랄까. 


b. 사고가 나면 보험사가 나 몰라라 한다.

자차로 알바를 하는 거라서, 

만약 사고가 난다면 이미 들었던 자동차 보험사에서 해결해 줄 것 같지만, 

그 보험은 99% 운송 특약은 빠져있다. 

그러니까. 쿠팡 플랙스를 하다가 사고가 난다면 무보험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 


운전하고, 멈추고, 짐 내려주고.... 그게 다인데, 

무슨 사고가 나겠냐 싶겠지만. 


확실히. 사고의 노출되어 있었다. 


일단,  

아무리 느린 속도로 골목을 누빈다고 해도, 

처음 가는 길이라 내비게이션에 집중하다 보면, 

전봇대나, 쓰레기통, 보도블록 턱 등에 부닥치기 딱 좋다. 

그나마 이런 것들은 다행 히지. 

주차된 차라도 긁으면.... 


그래서 운전을 더 천천히 조심조심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난 1시간에 배송을 평균 4건밖에 못했다.


1건에 650원 (or 1000원) 이니까. 

시급이 2,600원이란 셈. 

30년 전, 롯데리아에서 일할 때 시급이 2,300원인가 그랬던 것 같은데.


물론, 쿠팡에서는 1시간에 4건을 배송한 건, 

100% 내 능력 탓이라고 한다. 


1시간에 50건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까. 

(아, 물론 1집에서 50개를 배송했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속도를 낼 수는 없었다. 

사고가 내면, 쿠팡이 책임져 주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다고 보험사도 나서 주지 않는다. (운송에 관한 특약을 들지 않는 한)


사고는 100% 내 책임이다. 


게다가 심야는.... 정말 시야 확보가 어렵다. 

(아, 물론 이것도 운전 실력은 내 탓이다.)


c. 나도 모르게 불법주차를 한다.

배송지가 아파트면 다행이다. 

차를 세울 곳이 충분하다. 


하지만 일단 주택가 거나, 

상점이거나, 

이미 다른 사들이 주차되어있거나 하면, 


어쩔 수 없이 (잠시지만) 불법 주차를 하게 된다. 

제대로 된 곳에 차를 대려고 빙빙 돌다 보면, 

시간도 빠듯하게 흐르고, 왔다 갔다 체력 소모도 크다. 


결국, 나도 모르게 불법 주차를 하게 된다. 


물론, 난 야간 업무를 했기에, 차를 세울만한 곳은 곳곳에 많았다.

뒤에서 빵빵거리는 차들도 없고. 도시가 모두 잠든 것처럼 조용하다. 

 

다만, 감시 카메라가 있는지 살펴야 했다. 

우리나라는 CCTV 천국이니까. 


시급 2,600원인데, 불법 주정차로 단속되면, 

아.... 몇 배를 물어줘야 하나.


d. 공동현관이 발목을 잡는다. 

내가 가장 시간을 많이 빼앗겼던 부분은, 

공동현관의 비번이 맞지 않아서다. 


야간 배송의 특성상, 

고객에게 전화를 할 수 없는데 (새벽 3시에 택배요~~~ 하면 맞아 죽지 않을까?)

그럼 비번이라도 잘 적어놓던가....


비번을 안 적어 놓거나, 

비번을 틀리게 적어 놓거나 한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럴 때마다 캠프에 연락을 해서 처리 방법을 논의해야 하는데, 


캠프와의 연락은 '카톡'이 기준이라, 

응답이 바로바로 오지 않는다. 


비번을 몰라서, 

공동현관 앞에서 20분 넘게 기다리기도 했다. 


내가 왜 1시간에 평균 4건을 했는지, 

변명거리가 하나 더 나왔다. 


e. 쿠팡 프레쉬 박스 회수는 족쇄다. 

빨리빨리 치고 나가야 하는데, 

쿠팡 프레쉬 박스를 회수하면서 배송을 해야 하는 시스템이라, 

빨리빨리 치고 나가기가 어렵다. 


물론, 빈 박스라 무겁지는 않다. 

다만 부피가 꽤 크다. 

그래서 그걸 들고 다음 집으로 바로 이동하는 게 어렵다. 

그러니까 족쇄를 차게 되는 셈이다.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커다란 빈 상자를 안고서 달려야 하는 상황이랄까. 


내가 왜 1시간에 평균 4건밖에 못하는지,

변명거리가 또 하나 튀어나왔다. 


f.  한집에서 50개를 시키면 한 번 배송에 얼마를 버는 거지?

가끔 엘리베이터를 타면, 

택배기사님이 커다란 카트에 택배 거리를 잔뜩 담고, 

층층마다 내려서 배송하는 모습을 보고 한다. 


난 다 이러는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내가 배정받은 업무는 30개. (쿠팡 프레쉬 박스 회수는 17개)

1시간에 10개 정도를 쳐도 6,500원 (에서 10,000원 정도)이다. 

그런데, 내 실력에 10개가 가능할까?


물론, 한 집에서 10개를 시켰다면 가능하겠지. 

같은 아파트 같은 동 윗집 아랫집 옆집에서 시켰다면 가능하겠지. 

하지만 이런 경우가 얼마나 될까 싶다. 


주간 업무 때는 이런 경우도 많다고 하는데, 

야간 업무 때는. 아니 내 경우에는 단 1건도 없었다. 


예를 들어서, 

같은 아파트이긴 한데, 동이 다른 경우. 

A동 1803호에 올라갔다가 내려와 밖으로 나오고,

B동 1204호에 올라갔다가 내려온다. 


그러니까, 

같은 아파트 단지라고 좋아할 게 아니다. 


내 경우엔, 

30개 중 2건이, 같은 아파트 같은 동 고층과 저층이었다.  

이와 같은 행운은 1번뿐이었다. 


g. 미완성이었다

야간 업무는 0시 20분부터였다. 

우리 집에서 캠프까지는 20분. 

그렇다고 0시까지 자다가 나가는 건 아니다. 


캠프에서 계속 톡이 온다. 

대답을 못하면 (자느라) 업무 신청이 취소된다. 

이해는 된다. 

연락이 안 되는 사람에게 고객의 소중한 물건을 어떻게 맡기겠는가.


그러니까. 

0시 이전에도, 톡으로 응답하는 업무를 하는 셈이긴 하다. 


그래도 계산하기 편하게 따져본다면. 


0시~7시까지 7시간 일했다. (7시간에 24건?)


0시~2시까지 교육 (처음 하는 거라 이것저것 상세히 알려주다 보니 시간이 걸렸다.)

2시 40분까지 배송할 물건들 확인 및 스캔 등등.

3시까지 캠프부터 배송 지역까지 이동. 


본격적인 일은 3시부터였다. 


3시~5시. 2시간 정도 배송일을 했다. 

손에 익을 때쯤 되니까. 캠프에서 전화가 왔다. 


"평균 한 시간에 4건 처리하시고 계시다. 

이대로라면 7시까지 다 배송을 못하신다고 판단된다. 

그래서 백업하시는 분을 보낼 테니, 여기까지만 일하시라."


2시간에 24개를 배송했는데 무슨 Dog 소리.....

라고 생각이 들긴 했지만, 


중요한 건 아니니까.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듯이.

캠프의 직원도 매뉴얼대로 할 뿐이다. 


나를 언제 봤다고, 

나에게 억한 감정이 있어서,

그럴까. 


그리고 무엇보다 회사는,

정해진 시간에 맞춰 배송을 다 해야 하는데, 

내가 못할 거라고 판단이 되니까. 

최후의 보류로 백업하시는 분을 보내는 게 당연하지.


결국, 고분고분 남은 6개를 내주었다. 


4. 정산

시간은 정말 빨리 흐른다. 

나중에는 시간이 더 있었으면 할 정도였으니까. 

모처럼 내 삶의 시계가 빠르게 흘러가는구나 싶었다. 

활기찬 것 같기도 하고. 


기분은 너무너무 좋았다. 

모처럼 생기가 돌았다고 할까. 


하지만 정산을 하면서,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7시간 일하고 대충 16,000원 벌었다. 

시급으로 따지면 2,285원.... 


하아.... ㅜ..ㅜ


내가 총 달린 km 수는 80km. 

이중 40km는 캠프에 오가는 거고, 

배송으로는 40km 정도 달린 셈이다. 


아무튼, 기름값은 8,000원 정도. 


정리하자면, 


7시간 일하고 8,000원 벌었다. 

ㅡ..ㅡ


5. 마무리

요령이 없었다. 없어도 너무 없었다. 

물론 쿠팡도 돈을 퍼줄 정도로 비용을 높게 잡아주지는 않는다. 


상식적으로는 두 번 다시 안 하는 게 맞는데, 


희한하게, 

다시 한번 해보고 싶은 생각은 든다. 


한 번만 더 하면, 

요령이 생길 것도 같고, 


시간당 10건은 아니더라도, 7건 정도는 하지 않을까.

7 건해도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겠지만....


아무튼.

일단은 자자. 


너무 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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