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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현 Jan 08. 2016

수혼인살해사: 작가의 말

작가가 사이코패스일 거라며 출판사가 거절했던 문제작

<수혼: 기억 없는 시간>은 내가 출간한 2번째 소설이다. 오래전부터 캐릭터를 활용한 스토리를 만들고 싶었다. 뱀파이어, 좀비, 늑대인간. 수많은 작가들에 의해 재탄생되는 스토리에 등장하는 단골 캐릭터다. 난 그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


몇 년의 기획을 통해, 수혼인과 살해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규칙을 정했다. 치밀해야 했고, 독특해야 했다. 판타지 같지만, 판타지가 되지 않도록 신경 썼다. 내가 판타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현실감을 주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등장인물을 하나씩 만들었다.


그중, 장마석! 악인이다.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수혼>을, 가장 힘들었던 건, 바로 '몰입'이었다. 다른 작가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작가보다 스토리텔러에 가까운 난, 글을 쓸 때, 심하게 몰입하지 않으면 대사조차도 쉽게 쓰지 못한다. 그래서 모든 대사를 직접 연기하면서 쓰는데, '어라, 이건 내 말툰데?'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최면 아닌 최면을 걸고, 몰입에 몰입을 한다. 그래야 겨우 대사 하나 건질까 말까 한다.


특히, 주인공과 대립되는 '장마석'이 등장할 때마다 정말 힘들었다. 장마석이 되어야 했고, 온갖 악한 생각을 하고, 실행에 옮겨야 했다. (물론 상상 속에서였지만) 흉악한 범죄에 히죽거리며 글을 써나가는 내 모습이 소름 끼쳤다. 하지만 해야 했다. 글을 쓰기 위해 종일 장마석처럼 생각했다. 더욱 악인에 몰입했다. 이왕 써야 하는 장면이라면, 참혹하고 잔혹하게 쓰고 싶었다. 그런 생활이 일상이 되었다. 하루가 일주일이 되고, 다시 한 달이 되었다. 그사이 난, 점점 정신이 이상해져 갔다.  어느새 난, 장마석이 되어서 모든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컴퓨터 자판 위, 내 손가락 끝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어나갔다.


.....


안에서나올있는모든악은끌어냈던같다. 점점 장마석이 되어갔고, 실제로 내 안에서 살의가 생기는 것까지도 느꼈다. , 이러다 진짜로 사람을 찌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이토록 몰입해서 쓴 글이니, <수혼>이 완벽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부족함이 너무 많아서 부끄러운 글이다. 하지만, 그래도 당당할 수 있는 건, 그 당시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야근할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서 글을 써 내려갔다. 밤과 낮의 구분 따위는 없었다. 부족함이 많아서, 수많은 출판사로부터 퇴짜를 맞고, 어렵게 계약을 하더라도, 담당 에디터로부터 끝없이 수정 요청을 받아야 했다. 모든 초고는 걸레라고 말한 헤밍웨이가 없었다면, 난 자신감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출간 직전까지도 고친다고 하지 않았던가!


많은 작가들이 글쓰기를 악기 연습에 비유한다. 예를 들어 기타라고 하자. 신대철과 같은 전설의 기타리스트가 있는 반면, 비록 어설프지만 버스킹에서 만큼은 최고인 기타리스트도 있다. 아니, 버스킹에서 조차도 최고가 아니어도 된다. 기타를 친다면, 기타리스트다. ', 신대철처럼 못 치잖아! 그러니까 기타리스트가 아니야!'라고 지껄이는 덜 떨어진 바보가 있을까? '방금 틀렸어! 내가 다 들었어. 기타리스트가 틀리다니? 틀려서는 안 돼!'라고 지껄이는 멍청이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완벽하지 않으면 기타를 연주하지 말라는 말은, 그 완벽이 과정이 없이 이룰 수 없다는 걸 모르는 얼간이다. 틀려도 좋다. 엉망이라도 좋다. 기타는 연주해야 하고, 그래야 실력이 쌓이고, 점점 커가는 거다.


글 쓰는 사람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단 하나다.

글 쓰지 않는 것.


<수혼>을 탈고한 뒤, 한동안 멍하니 지냈다. 장마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척이나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도, 지금까지도 수혼을 읽은 지인들이 '장마석, 정말 소름 끼쳐.'라고 말하면, 은근히 기분이 좋아진다. 어쩔 수 없다. 결국 내가 만든 인물이고, 어쩌면 내가 가지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니까. 악당에게 ' 넌 정말 나쁜 놈이다.'라는 말은, 칭찬이지 않을까?


Photo by 양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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