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크룸, 누드 비치

낯선 설렘: 크로아티아

by 감성현

#1

누드비치에 대한 환상은 없었다. 분명 남탕일 테니까. 혹시나 했을 뿐이다. 궁금했을 뿐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는 사회계약론에서 ‘인간은 자연인으로 태어났지만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누드란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는 자유를 상징하고, 여행이란 곧 자유가 아니겠냐며, 누드비치를 찾은 변명을 해보지만,


그래, 솔직히 나, 호기심 때문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촌스럽다 할 수도 있고, 음흉하다 할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다. 그게 사실이니까. 태어나서 단 한번도 가본 적 없는 누드비치를 알면서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나 역시, 누드가 되어 자연의 일부가 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타고 온 배가 로크룸에 닿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누드비치로 돌진했다. 섬 안쪽에 꼭꼭 숨어 있는 누드비치라지만, 찾는 데 어렵진 않았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도로시처럼 오솔길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오래 걸리지 않아서,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푯말과 함께, 누드비치의 입구가 나타났다.



#2

입구부터 강렬했다. 탁 트인 바다를 배경으로 뭔가 묵직한 것들이 눈앞에 덜렁거렸다. 이런 곳이라는 걸 알고 왔어도 실제로 맞닥뜨리니 당황스러웠다. 배에서 같이 내리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여기까지 나와 함께 걸어온 동양인 연인은, 오는 내내 쉬지 않고 종알대더니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일순간 침묵했다. 남자는 실성한 사람처럼 웃었고, 여자는 미소 가득한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로크룸의 누드비치는 비치(바닷가)는 아니었다. 그냥 상징적인 단어일 뿐, 바위였다. 다큐멘터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바위 위에 드러누워 있는 바다사자 무리가 떠올랐다. 꼭 그 느낌이었다. 울퉁불퉁 자연 그대로의 바위 위에서, 적당한 곳을 찾아 자리를 잡고, 남녀 구분 없이 누드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 누드비치의 모습이었다.



#3

벗을까? 말까? 그냥 갈까? 한참을 망설이고 있는데 저 멀리 젊은 서양인 남녀 무리가 눈에 띄었다. 분명 친구끼리 온 것 같은데, 그들 사이엔 부끄러움이 없었다. 주위에 그 어떤 시선도 의식하지 않았고, 옷을 벗는 내내 자연스러웠다. 모르는 사람들에 섞여 누드가 되는 건 그래도 할 수 있긴 할 텐데,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 앞에서, 누드비치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누드가 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갑자기 억울함과 한심함이 뒤섞여 밀려왔다. 자유를 줘도 취하지 못하는 바보 같았다. 평소 늘 자유롭고 싶다고 했으면서도, 정작 자유를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되자 겁에 질려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다. 이렇듯 자유는 두렵다.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 한복판에 있는 것과 같다. 어느 방향으로 헤엄쳐 가든 자유다. 하지만, 그 어떤 방향으로도 쉽게 헤엄칠 수 없다. 헤엄치고 싶었다.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마음을 다잡고, 평평한 바위를 찾아 자리를 잡았다. 곁에서 알몸으로 누워 일광욕을 하던 연인이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고 ‘넌 뭐야?’ 하는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이미 마음을 단단히 먹은 터라 아랑곳하지 않고 거침없이 옷을 벗었다. 마지막 속옷을 벗을 때는 묘한 쾌감까지 밀려왔다. 그러자 그들은 검은 머리인 내가 신기한지, 대놓고 쳐다봤지만, ‘그래, 그래야 진정한 자유인이지. 우리와 같은 자유인이 된 걸 축하해.’ 하는 표정으로, 곧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눈을 감고 일광욕을 즐겼다.


저 멀리 펼쳐진 수평선 가까이 낮게 깔린 구름이 아름다웠다. 햇살은 따뜻하고 바람은 부드럽고 눈앞엔 그림이 펼쳐진다. 그렇게 아드리아해의 일부가 되었다.


사실, 격하게 몰아칠 것만 같던 자유는 없었다. 그냥. 평범했다. 오히려 처음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일상에 가까운 자연스러움이었다. 자유는 자연이었다. 처음부터 그랬다. 그동안 거부하고 회피하며 잊고 있었을 뿐이다.


#4

일정이 있어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짧아서 더 아련하고, 그래서 더 강렬한 기억을 남겼다. 떠나기 위해 주섬주섬 다시 옷을 챙겨 입는데, 희한하게도 옷을 입으려니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묘했다. 벗을 때가 아닌 갖춰 입을 때 부끄럽기는. 그러고 보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답인 듯하다. 누드라는 것은 일종의 최면에 따른 스위치다. 자유의 전구에 불이 켜지는 건, 그 스위치를 올렸을 때인지, 내렸을 때인지 알 수 없다. 생각이란 전선

을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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