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설렘: 크로아티아
#1
아름다움도 계속 보면 질린다고 했던가. 매번 감탄을 자아내던 크로아티아의 해안도시들에 서서히 무뎌질 때 즈음, 파진에 도착했다.
사방을 둘러봐도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몇 개월 바다 위를 항해하다 간만에 땅을 밟은 기분이었다. 파진은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불로 가는 입구를 묘사하는 데 영감을 준 장소가 있다고 하는데, 그러기엔 너무나 아름답고 밝은 도시였다.
차를 세운 곳 가까이 학교가 있는 탓에 아이들을 많이 만났다. 마침, 점심 시간이었는지, 아이들 손에는 하나같이 제 얼굴만 한 커다란 피자 한 조각씩 들려 있었다. 아마도 그게 오늘의 점심 메뉴인 듯했다. 삼삼오오 나무 그늘을 찾아 모여 앉아 맛있게 먹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배불렀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곤 했는데, 낯선 여행자에 익숙했는지, 쳐다보는 눈빛엔 호기심이 없다. 이 아이들은 어제 봤던 청춘 드라마나 오늘 입고
온 서로의 옷, 그리고 내일 싸올 도시락에 대해 더 할 말이 많은 듯했다.
#2
“크로아티아? 거기가 어딘데?”
내가 여행을 하던 당시에는 모두가 그랬다. 나 역시 크로아티아에 대해서 아는 게 전혀 없었으니까. 검색을 통해 처음 알게 된 크로아티아의 정보는, 국토의 크기가 우리나라의 절반 정도(우리나라 99,720 ㎢, 크로아티아 56,594 ㎢)라는 거였다. 사실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누구나 여행지 선택의 기준은 있을 테지만, 나의 기준은 ‘국토가 얼마나 작은가’에 우선 순위를 둔다.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그건 상관없다. 내 여행에서 피라미드를 보느냐 안 보느냐, 자유의 여신상을 보느냐 안 보느냐, 에펠탑을 보느냐 안 보느냐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국토가 크면, 도시에서 도시로의 이동이 힘겹다. 상당히 많은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내는 것이다. 물론, 길 위에서의 여행도 여행이지만, 한정된 시간이라면 좀 더 많은
도시를 보고 싶고 머물러 있고 싶다.
그렇게 도시의 품에 안겨, 하염없이 거닐기를 꿈꾼다. 그렇게 하나의 도시를 겪고 나면 또 다른 도시의 품에 안기고 싶어진다.
#3
크로아티아에 오기 전, 지도를 꺼내놓고, 도시와 도시를 연결했었다. 그렇게 연결된 도시들은 검색을 통해 살펴보고, 호감이 가지 않는다면 거침없이 지워냈다. 불과 한 시간도 안돼서 여행의 동선이 정해졌다. 물론, 실제로 여행을 하면서 지웠던 도시인데 들르게 되기도 하고, 꼭 가려고 했던 도시를 빼놓기도 한다. 그러면서 사전에 계획했던 여행의 동선은 춤을 추듯 변해간다.
때론, 이동할 도시만 정해놓고 떠나오는 여행이다 보니, 각각 도시마다의 정보가 부족해서 놓치는 부분도 많았다. 파진이 그랬다. 지표면의 갈라진 틈으로 심연 같은 100m 아래에서 흐르는 강과 그 강이 만들어 내는 지하 폭포가 있는 파진 협곡Pazinska Jama으로 유명한데, 난 그 사실은 크로아티아에서 돌아온 다음, 그것도 몇 달이 흐른 뒤에, 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파진 공식 사이트를 살펴보다가 알게 되었다. 보물을 깔고 앉아 있는 것도 모른 채, 아이들과 함께 한낮의 따사로운 햇살만 오랫동안 즐기다 돌아왔다. 허허 하고 웃음이 흘러나왔다. 나다웠다. 나다운 여행이었다.
#4
한번은 숙소에서 선배여행자를 만났다. 여느 여행자처럼 내가 어느 도시들을 거쳐왔는지 궁금해 했다. 어딘지 모르게 잘난 척 좋아하는 인상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하나씩 도시의 이름을 댈 때마다 “오! 거기엔 그게 유명한데. 뭐라고요? 모른다고요? 어떻게 그냥 지나쳐 올 수 있어요? 그건 제대로 여행을 하는 게 아니라고요!”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처음엔 같은 여행자이기에, 자신이 느꼈던 감동들을 내가 놓친 것이 못내 안타까워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야기하는 도시마다 그건 제대로 여행을 한 게 아니라고 하니, 슬슬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삶은 자기중심으로 돌아가듯, 여행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맛집이라도 내겐 맛집이 아닐 수 있다. 가령, 아무리 맛있는 스테이크 식당이라도 그곳의 음식은 채식주의자에겐 벽화처럼 보일 뿐이다. 내가 먹어본 결과, 음식이 맛있었던 식당은 있다. 그렇게 맛있던 식당이라도 몇 년 후에 다시 가보면, 이게 그렇게까지 맛있었나 고개를 갸웃거릴 수도 있다. 그 당시엔 함께 있었던 사람이 좋아서, 또는 심하게 배가 고팠던 터라 맛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자칫 자신만의 주관이 누군가에게는 소중히 기억될 추억을 망치거나,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도록 할 수 있다. 선배여행자가 할 수 있는 건, 단지 자신의 경험을 자신에게 국한해서 들려주는 것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듣는 사람의 몫으로 넉넉하게 남겨둬야 한다.
가끔, 어디론가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 못 봤어, 못 했어, 못 먹었어 하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 모습을 종종 봐왔다. 마치 크게 잘못이라도 한 사람처럼 목소리엔 힘이 없고, 주눅이 들은 모습이었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행을 가서, 아무것도 보지 않고 돌아와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와도, 아무것도 먹지 않고 돌아와도 당사자에겐 소중한 여행이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방송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그깟 거 하나 안 보고 왔다고, 간장을 한 숟갈 넣는지 반 숟갈 넣는지 구분할 수 있는 절대 미각도 아닌데, 그깟 거 하나 안 먹고 왔다고 뭐가 그렇게 문제가 되는 걸까? 뒤늦게 같은 도시를 다녀온 다른 사람들의 여행담을 들으면서, ‘어? 그런 게 있었어?’ 하고 아쉬워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여행은 해치워내야 하는 숙제가 아닌, 여행 그대로의 여행인 걸.
그 선배여행자는 한참이나 더 나를 붙잡고 왜 그렇게 여행을 하냐며, 여행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며 흥분해서 떠들다가, 새로운 목표를 발견하고 나서야 내 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