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설렘: 크로아티아
#1
모토분. 나를 크로아티아까지 이끈 도시다. 지금은 많은 책에서 언급하고 있기도 하고, 애청 프로그램인 <걸어서 세계 속으로, 풍경보다 아름다운 블루 크로아티아, KBS>에도 소개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 작은 도시다.
내가 모토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미야자키 하야오みやざきはやお의 <천공의 성 라퓨타天空の城 ラピュタ>를 만나면서였다. 크로아티아를 사랑했던 미야자키 하야오는 두브로브니크를 배경으로<마녀 배달부 키키>를 구상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수많은 작품에는 크로아티아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그만큼 크로아티아는 무한한 상상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나라다. 그리고 크로아티아가 품은 수많은 도시 중에서 모토분은 단연 최고다.
#2
일본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영화 동아리에서 조그만 공간을 빌려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영화들을 상영한다는 곳이 있다길래, 호기심에 찾아 갔었다. 일종의 해적 상영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영화가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그 영화가 <천공의 성 라퓨타>였다. 처음부터 애잔하면서도 감미로운 클래식 선율이 들려왔다. 곧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음악이 히사이시 조의 작품이라는 사실과, 히사이시 조가 얼마나 대단한 작곡가인지는, 그로부터 한참이나 더 지나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실사에 가까운 장면들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충격이었다. 전율에 숨을 쉴 수 없었다.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깊이 빠져들었다. 정말 멋있고 위대한 상상이었다.
그 후로 <천공의 성 라퓨타>의 파즈와 쉬타가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동네에 있는 조그만 동산에 자주 올라가 종일 하늘에 떠가는 뭉게구름을 바라보다 내려오곤 했다. 그때마다 수많은 상상들이 깨어나고, 수많은 편견들이 깨져나갔다. 나의 상상력이 알을 깨고 비상하는 날들이었다.
#3
<천공의 성 라퓨타>의 배경이 된 도시가 모토분이다. 산꼭대기에 세워진 이 도시는, 낮게 구름이 깔릴 때, 밖에서 보면 하늘 위에 두둥실 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안에서 보면 하늘을 비행하는 거대한 섬으로 보인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모토분을 보지 않았다면 <천공의 성 라퓨타>는 그렇게 현실감 있게 그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디에 서서 모토분을 바라봤을까? 그날, 모토분의 날씨는 어땠을까?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니었다면 모토분을 보고도 <천공의 성 라퓨타>를 상상해 낼 수 있었을까?
그 천공의 성 라퓨타에 내가 와 있다니!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정말 왔어? 정말 내가 여기에 온 거야? 모든 게 꿈만 같았다. 순식간에 과거로 돌아가 어린 나를 다시 만났고, 그때처럼 조그만 동산에 올라가 하늘에 떠가는 뭉게구름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공기의 이명이 끝날 즈음 바람의 노래를 들었다. 한없이 부드럽고 감미로웠다. 하늘을 바라보고 누운 내 몸을 이름 모를 들풀이 촘촘히 붙잡아 끌어 당겼다. 보드라운 흙 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이 좋았다. 햇살은 따사롭고 눈은 스르르 감겼다.
누군가에게 모토분은 볼 것 없는 작은 도시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이미 많은 추억들과 수많은 상상들을 함께 간직한, 둘도 없는 친구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