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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색손잡이 Aug 21. 2024

외로움의 모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

  믿기지는 않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8월이 찾아왔다. 대부분의 3학년 선배들은 2학기 초반부터 취업을 위한 자소서 작성과 실질적인 구직활동(내가 재학 중인 학교 기준이다.)이 시작된다. 나는 집이 많이 멀지 않지만, 기숙사를 사용하는데 점점 기숙사에서 아는 얼굴들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우리 아래층(남자 기숙사)은 벌써 몇 사라졌다. 대게는 바로 기업에 지원하여 취직하지만, 가끔 위탁교육이나 기업에서 운영하는 교육을 들으러 가는 사람도 있다. 작년에도 이맘때부터 선배들이 한 명, 두 명 사라지기 시작했었다. 작년에 기숙사에 입사할 때 사람도 많고 집도 가까워서 꽤 아슬아슬하게 들어왔는데 2학기 중반부터는 방이 몇 개가 남아서 기숙사가 허전했었다.     


  올해는 작년만큼 기숙사에 3학년의 수가 많지 않아 허전함은 덜하겠지만, 작년을 떠올려 보면 몇 명 나가지 않았음에도 선배 저마다의 빈자리가 컸던 것 같다. 나랑 친하지는 않았어도 존재감이 컸던 선배, 나랑 꽤 교류하며 지냈던 선배, 등 저마다의 역할이 있던 것처럼 그랬다. 작년에는 사정이 있어서 3학년 선배와 2학기에 방을 사용했었다. 나랑 친하긴 했어도 방에서는 둘 다 개인적인 성향이 없지 않아서 학교에 큰일들이 있을 때만 종종 얘기하곤 했다. 방에서 선배의 소리는 샤워하는 소리, 핸드폰 하는 소리, 가끔 기침하는 소리가 전부였기에 혹여 취업에 성공해서 학교를 떠나도 허전하진 않겠다고 생각했다. 선배는 나랑 2개월 정도 같이 방을 사용하고 학교를 떠났는데 세상에, 절대 아니었다. 사람의 흔적과 존재감은 정말 무시하지 못한다.     

  

  선배가 학교를 떠나고 나는 약 3개월 동안 혼자 방을 사용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선배 바짓가랑이 붙들고 다시 데려오고 싶은 마음이었다. 내가 외로움을 심하게 타는 성격을 가졌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어릴 때부터 워낙 독립적인 성향이 강해서 어릴 때부터 혼자 방도 사용했고, 집에 나 혼자라는 사실이 그렇게 편하고 좋을 수가 없었는데……. 완전히 독립된 공간에서 장기간 혼자 생활한 건 그때가 첫 경험이었다. 선배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그런지 더 많이 외로웠던 것 같다. 그래서 심심하고 외로울 때마다 연락했었다. 개발 회사에 취업한 선배는 힘들지만, 만족하는 삶을 사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선배처럼 잘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그래서 일찍 학교를 떠난 선배가 더 멋있는 것 같았다.     

  

  작년에 나는 친구가 없지는 않았지만,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친구는 없었다. 내 주변 모두는 졸업 이후에 대학에 진학할 계획을 한다. 사실 대게는 큰 생각이 없었다. 학교에서도 큰 관심과 지원이 없는 과였기에 선생님도 몇 분 계시지 않아서 더 자신이 없었다. 다른 과 학생들처럼 다양한 공부를 할 수 없었고, 학교에서도 크게 관심 갖지 않아서 공부는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나왔다. 같은 방을 사용한 선배는 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과에 다녔고, 언니도 좋은 결과를 학교에 적지 않게 안겨줬기에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언니는 같은 방향을 향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무엇보다 그게 가장 부러웠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정말 엄청난 행운이다. 나는 작년에 유독 외로웠던 한 해를 보냈다.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지금 고등학교 2학년을 다니며 이전에도 그전보다 외로웠던 해는 없었고, 올해도 아마 그렇게 마무리될 것 같지는 않다. 설령 찾아올 내년이 그 얼마나 외로울지라도 작년을 넘어서긴 힘들다. 집을 떠나 기숙사에 생활하는 것도 처음이었고, 이제 막 입학해 다들 친구를 만들 때 자격증 취득을 준비하며 스스로 외톨이를 자처했던 탓도 컸다고 생각한다. 물론 비슷한 방향성을 가진 친구가 한 명 있었지만, 금방 다른 길로 빠졌다. 많이 울기도 했었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되어 저녁 늦게 끝났던 공부가 힘들지는 않았다. 그저 다른 친구들이 즐겁게 시간을 보낼 때 나는 혼자 어울리지 못하고 어느 집단에도 완벽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 괴로웠다.      

  

  지금 열심히 공부하면 나중에는 내가 웃게 된다는 어른들의 말씀들도 거짓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너무 잘 아는 말이라서 더 우울했다. 당장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세상에서 내가 이렇게 살다가 다음날 삶이 종결되면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 생각했다. 그렇게 현실에 약간의 타협과 조금 많은 우울함을 갖고 작년을 살았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자처했기에 번복할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숫자 하나하나가 재무제표에 들어맞는 순간이 너무 즐거웠다. 모순이다. 행위 자체는 너무 즐거웠지만 전반적인 삶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당장의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한다고 해도 잘 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렇다고 걱정 없이 현재를 즐기기에는 다가오는 미래가 너무 두려워서 못 했다. 난 고작 고등학교 1학년인데 세상이 너무 각박하다. 

     

  그렇게 정신없는 1년을 보냈다. 어째 시간은 갈수록 빨라지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이쯤 되니 시간은 정말 절대적인 개념이 아닌 상대적인 개념이라는 확신도 든다. 2학년 중반에 접어들어 지난해의 고민을 다시 짚어봤다. 음,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반년 만에 단정 짓기에는 너무 큰 고민이기도 하지만, 나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정신없이 사는 게 잡생각이 비집을 틈이 없어 좋기는 하다. 그게 문제다. 여유가 없다. 여유 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 삶을 나는 과연 좋은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그게 불확실한 미래를 대하는 나의 태도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 그리고 급우들이랑은 여전히 겉도는 감이 있다. 나만 겉도는 것 같다. 나 그래도 나름 반장인데 말이다. 그래도 올해는 그 외로움에 적응해서 외롭다는 감정에 크게 잠식되는 일은 없다.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 어떤 새로운 푸른 감정이 나를 향해 달려들어도, 더 이상은 물드는 일 없으면 좋겠다. 그래서 남은 올해의 몇 달은 나를 조금 가꿔야겠다. 적어도 그 일은 모순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행위로 남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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