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금색손잡이 Nov 17. 2023

단풍과 은행이 피어날 때 즈음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생각한다

  단풍과 은행나무가 점점 물이 든다. 단조로운 초록에서 자기주장을 내비치고, 다들 "나 여기 있어요!" 외친다. 단풍잎에 물이 들면 누군가는 아름다운 빨간빛이 되었다며 기뻐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곧 빨갛게 익어 낙엽으로 떨어지면 치우기 귀찮아진다며 짜증 낸다. 또한 은행이 익으면 누군가는 은행구이를 먹을 수 있다며 기뻐하지만 누군가는 은행열매 터진 냄새가 지독해 싫다며 걱정한다. 이렇듯 우리 모두는 각기 다른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전부 틀린 말은 아니다. 단풍의 빨간빛이 아름다운 것도 사실이다. 낙엽이 떨어지면 치우기 귀찮은 것도 사실이다. 은행구이를 먹을 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은행열매 터진 냄새가 지독한 것도 사실이다. 또한 저 말들에 전부 동의할 수 없는 누군가도 있다. 단풍의 빨간빛을 좋아하지 않고, 낙엽치우 기를 좋아하는 누군가와, 은행냄새를 싫어하지 않지만 은행구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우리 학교 운동장이다!


  사람 사는 건, 전부 그렇다. 서로의 말에 전부 동의할 수 없다는 게 사는 거다. 모두가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그 생각에 동의하고, 누군가는 그 생각에 반대하며, 누군가는 둘 모두에게 동의하고, 누군가는 둘 모두에게 동의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은행냄새도 싫어하지 않고 은행구이도 좋아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동의를 얻을 수는 없다. 우리는 모두 능동적으로 생각하기에 더욱 그렇다. 우리는 하고 싶은 생각을 한다. 다만 남에게 표현하지 않을 뿐이다. 몇몇은 동의할 수 없지만 예의상 동의를 표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가 때로는 모든 사람들이 내 말에 동의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세상에 만장일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당장 객관적인 사실을 주제 잡은 기사와 뉴스에도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하는데 누군가의 생각에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누군가의 생각은 그 사람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다분히 객관적이지 못하다. 때로는 스스로의 견해와 생각이 상당히 객관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 또한 주관적인 견해이며, 생각이다.


  세상이 주관적인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분명 주관적인 견해들이 존재할뿐더러, 당장 나에게는 내 중심의 주관적인 사고가 최선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도 주관적인 견해를 글로 늘어놓을 뿐이다. 또한 누군가와 의견과 생각을 공유하고 다른 관점의 새로운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에서 개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만큼이나 좋은 것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상황은 객관적으로 보면서도 선택은 주관적으로 해야 한다.


  누군가가 하는 주관적인 생각을 통해 우리는 발전할 수 있다. 또한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할 수도 있고, 무언가에 미리 준비할 수도 있고, 타인의 의견에 동의를 건넬 수도, 동의하지 않을 수도, 스스로를 돌아볼 수도 있는 거다.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사는 거다. 물론 타인의 생각과 내 생각이 부딪혀 좋지 못한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나중에 상황을 객관적으로 돌아보며 주관적으로 나의 생각에 확신을 가질 수도, 타인의 생각에 동의를 건넬 수도 있다. 세상에 의미 없는 경험은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깨달아야 하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함께 은행구이를 먹으며 함께 생각을 나누면 좋겠다. 은행구이는 정말 맛있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누군가는 은행구이가 맛있다는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겠지만 뭐 어떤가? 적어도 나는 그렇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른이 된다는 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