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 선입견을 깨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by 하짜




최근 들어 글도, 인생도 막막하다고 느껴진다. 뭐라고 해야 할까? 마치 화장실을 며칠 못 간 느낌이라고 해야되나. 뭔진 모르겠으나 막힌 무언가를 ‘뻥’하고 뚫어버렸으면 좋겠다 싶었다.

‘글’이나 ‘문학’, 혹은 ‘인생’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영화가 있나 찾아보다가 예전에 보았던 영화 중 하나가 떠올랐다. 왓챠를 통해 이 영화를 몇 년만에 다시 보았다.

나이와 인종을 뛰어넘어 서로 스승과 제자, 친구가 되어 가는 이야기

보통 이 영화를 소개하거나 감상 후기글을 보면 <굿 윌 헌팅>의 문학버전이라고 종종 얘기들을 한다. 아마도 같은 감독에다가 비슷한 얼개의 이야기다보니 그런 얘기가 나오리라 본다.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는 고등학생 자말과 유명한 작가이지만 은둔생활을 하는 포레스터가 나이, 인종, 계급을 떠나 아름다운 우정과 참다운 사제지간의 모습을 이야기 한다.


이제 시작을 하는, 앞으로 나아가는 청년과 다시 시작하고 마지막을 준비하는 노인

자말은 농구와 글쓰기 둘 다 재능이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문과, 이과보다는 스포츠를 더 알아주는 경향이 있어서일까. 자말은 글쓰기에 대한 자신의 모습을 숨긴채 지낸다. 그러다 농구로 인해 다른 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다. 비싼 사립학교라 돈이 부족해서 거절하려 했지만 자말의 성적이라면 장학금을 받으면서 다닐 수 있을 거라는 사실에 일단 학교에 견학을 간다.

포레스터는 항상 혼자서 은거하다 싶이 지내는데 우연한 기회로 자말과 만나게 되고 그에게 글과 문학의 스승이 되어준다. 자말은 학교생활과 본인의 일상얘기 및 생각을 포레스터에게 얘기해주면서 그는 간접적으로나마 세상을 ‘체험’하게 된다. 거기에 자신의 경험을 덧해 자말에게 올바른 길로 인도를 해준다.

포레스터는 자말에게 마음을 열고 트라우마를 고백한다. 그리고는 집 밖으로 나와 동생과 거의 항상 왔다던 야구 경기장에 몇 십년 만에 올 수 있게된다. 그리고 후에 밝혀지지만 그게 포레스터의 두 번째 꿈이자 마지막 꿈이었다. 자말이라는 어린 친구 덕분에 이루지 못할 뻔한 꿈을 이루게 된 것이다. 자말이 포레스터 덕분에 작가의 꿈을 꿀 수 있었던 것처럼.

"네가 꿈을 버리지 않은 아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 또한 다시 꿈을 꿀 수 있게 되었지. 계절은 변한다. 인생의 겨울이 와서 삶을 알게 되었구나. 네가 없었다면 영영 몰랐을 게다.“ (포레스터가 자말에게 쓴 편지 내용중)


편견, 선입견을 깨야 발견하고 부딪치고 성장한다

두 인물은 서로가 서로에게 편견없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상호작용한다. 영화는 물흐르듯이 진행되기 때문에 잘 못 느낄 수도 있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렇게까지 가능하기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누구나 다른 사람을, 그것도 처음보는 사람을 그렇게 편견없이 만나고 지낸다는게 거의 불가능하지 않던가.

그렇게 서로의 편견을 깨고 바라봐주는 두 인물은 각각 자말에게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되어주고, 포레스터에겐 용기와 마음의 문을 열 수 있게 도와준다. 어쩌면 서로가 서로에게 ‘구원자’ 역할을 한 게 아닐까.

두 주인공을 빼곤 거의 모든 주변인물들은 어떻게든 편견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두 인물은 알게 모르게, 작든 크든 상처를 받는다. 자말이 다른 학교에서 지내게 되면서 작문 수업을 가르치는 크로포드 교수가 등장하는데 이 인물이 대표적으로 편견의 인격화라고 느껴질 정도로 자말을 몰아붙이는 캐릭터다. 그의 눈에 자말은 흑인에다 가난한 지역, 집안의 사람이자 낮은 계층의 사람이다. 농구야 그렇다치더라도 돈이 많은 상류층이나 지성(지식)인 아닌 자말이 글을 이렇게까지 잘 쓸 리가 없다며 굳게 믿는 사람이다. 편견은 결국 잘못된 신념을 낳는다.

신념이란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사람을 빛나게 하고 성장시키기도 하며 폐쇄적이고 틀에 갇힌 사람으로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편견을 깨어야 다른 이면을 발견하고 서로가 부딪치고 성장하는 것이다. 이것이 선행이 되어야 신념도 건강한 신념이 된다.


어쩌면 나도 글과 인생이 막막하다고 느끼는 이유가 그저 나도 모르게 편견, 선입관으로 나와 세상을 바라봐서 그런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환경이 그래서, 역시 나라는 놈이 원래 그렇지 뭐. 내가 나를 바라보는 것부터가 편견과 선입견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다른 사람을 볼 때도 당연히 그렇지 않겠는가? 나에게도 자말처럼 나이와 성별을 뛰어넘는 스승 혹은 친구가 있다. 어떻게 보면 내가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포레스터와 같은 멘토가 있었기에 가능한게 아닌 가 싶다. (감사합니다)

나를 비롯한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이 있다면 살다가 막막하거나 답답한 생각이 들 때 내가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는가? 혹은 나와 상대방을 이해하고 믿어주는가? 하고 점검하는 건 어떨까. 혹시나 모른다. 그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답답한 가슴을 뚫어주는 뚫어뻥이 되어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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