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부터 투잡을 뛰었다. 작년과 같은 일이었다. 같은 배식도우미 일을 하지만 다른 학교에서 일한다. 작년은 초등학교에서 일했지만 올해는 중학교다. 그것도 남중이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그렇게 난리법석은 아니었다. 개학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고 내가 맡은 학년이 1학년이라 더 그럴 것이다.
중학교에서 같이 일하시는 분들은 작년에 같이 일했던 한 분 빼고는 다 다른 분들이었다. 작년에는 대부분이 나를 포함한 신입분들이셨지만 이곳은 어느 정도 일해 본 분들이라 일을 하는 데 있어서는 몸에 베여서 아주 자연스러웠다. 다만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가 처음이라 어색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 작년에 같이 일하신 분은 ‘작업 반장’님에서 ‘전담 매니저’로 더 높은 직책이 되셨다.
어색하면서도 서로 다른 환경에서 일을 했던 분들이 만나서 그런 걸까? 서로가 가지고 있는 기준의 차이 때문인지 약간의 마찰, 충돌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작년에 일했던 사람들과 연락을 하고 만남의 계기로 이어졌다.
작년에 같이 일했던 분들과 반가운 만남은 잠깐이고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자 각자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동안 쌓인 것이 많았던 걸까? 나 빼고는 다 여자고, 가정이 있는 유부녀들이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분들의 대화에는 희노애락이 담긴 경험, 기승전결이 있는 본인들만의 생각, 의견이 나왔다. 내가 경험했거나 관심 있는 것들은 재밌게 들렸지만 전혀 모르는 부분들은 흥미가 없거나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그분들은 대화가 잘 통하고 신이 나고 흥분이 되었는지 장소를 계속해서 옮겨가며 이런저런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매니저님과 둘이 있는 상황이 되었을 때였다.
“부모님은 뭐 하셔?”
“같이 살아? 본가에 할머니랑 같이 사셔?”
“아버지는? 어머니는?”
나는 결국 거짓말을 했다. 옆에 계시지도 않는 부모님을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만들어냈다. 그러나 감정은 거짓으로 포장하려 했지만 쉽게 될 리가 없었다. 부모님 얘기에 자연스럽게 얼굴이 그늘이 졌다. 숨겨지지 않았다. 차오르는 감정을 누르는 데 몰두하느라 더더욱.
통상적으로 사회에서 얘기하는 보통 혹은 평균을 언급하면 나는 거기에 속하지 못했다. 나는 늘 그보다 밑이었다. 내가 올라가려고 발버둥 치는 곳은 ‘보통’ 혹은 ‘평균’에 속하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원했던 보통 가정의 즐거운 저녁식사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다.
왜냐면 어렸을 때 부모님은 이혼을 했다. 그 이후로 엄마와 나는 외할머니네 집에서 살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구박 아니면 혼나는 인생을 살았던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불행하고 괴로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은 안 좋은 추억을 더 많이 더 잘 기억하지 않는가. 나도 그렇다. 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면, 피자나 치킨을 배달시켜 먹고 싶다고 하면 엄마와 외할머니는 항상 이렇게 말하셨다.
“몸에 좋지도 않은 거 뭐가 그리 좋다고!”
“우리 집안에 그렇게 고기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데 누굴 닮아서 저렇게 몸에 안 좋은 것만 좋아할까?”
비슷한 얘기를 더하자면 장난감에 관련된 일화가 또 있다. 나에게 있어서 장난감은 아주 귀하고 손에 넣기 어려운 것이었는데 그 장난감을 새로 산 지 일주일 정도 지나서 내가 고장을 낸 적이 있다. 그러자 엄마와 할머니가 하시던 말은
“어떻게 손에 갖다만 대면 저리 고장이 날까? 사줘 봤자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거 괜히 사줬어.”
“우리 집안엔 그런 사람이 없는데 누굴 닮아서 저럴까?”
정확히 내가 꿈꿔온 보통의 가정의 식사와는 정반대다. 맛난 음식과 즐거운 대화가 오가는 저녁식사란 오지 않았다. (잠깐이지만 명절날이 되어 큰삼촌이 돈을 쓰는 날에만 유독 즐거운 날이었다)
보통, 평균의 삶이 아니었던 나는 보통의 사람들이 당연한 듯 살아가는 삶을 꿈꾼다. 어찌 보면 꿈도 보통, 평균이 아닐지 모른다. 거기다 내 개인적인 꿈은 더더욱 보통, 평균과 다르다. 평균을 살아가고 있는 내 또래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을 이루거나, 그 가정을 지키며 산다.
그러나 나는 ‘작가’가 꿈이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스토리텔러’가 되고 싶다. 그래서 안정적이고 높은 월급을 받는 또래 혹은 전망이 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또래들과 당연히 비교가 될 것이다. 내 인생과 속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들은 나를 아마 이상하게 볼 것이다. 지금 일을 하며 친해진 사람들이 그렇다. 하지만 나는 그분들에게 일일이 다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내 성향상 관계의 깊이만큼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정해져 있다. 게다가 그분들은 나에게 크게 관심이 없다. 그냥 호기심에 혹은 내가 없을 때 내 얘기를 하기 위한 용도로 쓰일 게 뻔하니까.
내가 마음에 걸리는 것은 남들의 시선에 아직 자유롭지 못해 이러한 것들을 당당히 얘기 못하고 이 나이에 아직까지도 거짓말을 하는 내가 못난 놈처럼 느껴져서 그렇지 내 자신과 삶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힘든 상황이 또 오면 달라지겠지만)
유튜브 알고리즘은 내 생각을 읽었나 싶을 정도로 기가 막힌 썸네일의 영상을 추천해 주었다. 수학강사 정승제의 영상이었는데 제목이 ‘꿈은 큰데 왜 보편적으로 살려고 함?’이다. 영상을 틀어보니 정말 맞는 말이었다. 내 생각이 정말 어불성설이요 어처구니없는 생각이었다. 남들과 똑같은 보편적인 삶을 원하면서 또 꿈은 특별하고 원대한 꿈을 꾼다고? 에라이 한심한 놈 같으니라고. 그러면서 한편으론 기뻤다. 지금의 내 삶이 이런 게 당연하거구나 싶은 것이다. 크고 원대한 꿈을 꾸는 자가 사는 삶이 어디 쉽고 편하겠는가?
박찬욱 감독이 인생이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