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어느 날. 나와 200여 명이 쫌 안 되는 동갑내기 녀석들이 입학식을 하려고 운동장에 모여 있었다.
학교 운동장에는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분위기가 있었다. ‘교복’이라는 것을 처음 입어서 한껏 들뜬 감정이 있는가 하면 여러 초등학교 출신의 아이들 이 모여서 생긴 경계심과 불안 또한 넘쳐흐르고 있었다.
복잡한 감정들을 들여다보고 다스리다 보니 입학식은 벌써 끝이 나있었다.
입학식이 끝나고 나서는 반 배정 시험이 이루어졌다. 모든 과목을 치르는 건 아니고 수학과 영어로만 테스트를 했다. 아무래도 이 두 과목이 공부 실력의 척도를 알 수 있는 과목이니까.
모두가 검은색 교복을 입고 고개를 숙여 시험을 치르는데 묘한 긴장감과 알 수 없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초등학교에서도 간간이 느꼈지만 중학교에서는 더더욱 경쟁과 수준을 알게 되는 시기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반 배정 시험이 끝이 나고 며칠 뒤 배정받은 교실로 들어섰다. 혹시나 아는 얼굴들이 있나 하고 둘러보니 ‘그 녀석’이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우리의 뒤통수를 치고 노석대에게 냅다 꼰지른 그 점탱이 녀석이. 녀석도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땐 흠칫 놀랐지만 이내 웃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리곤 아는 체했다. 순간 나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의 1년은 어떻게 보내야 하는 걸까?’
그렇게 아무 데나 남는 자리에 앉아 긴장한 채 전체적인 분위기를 살폈다. 얼굴만 봤을 땐 그리 위험해 보이는 녀석은 없었다. 하지만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순 없었다. 어떤 녀석이든 똑같이 파악하는 시기니까.
그렇게 분위기 파악이 대충 되었을 때 교문이 촤-악 하고 열렸다.
“반갑습니다. 아 저는······.”
교문을 열고 들어온 안경잽이 아저씨는 우리에게 자신이 담임이라고 소개했다. 도무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어서 다들 조심스러웠다.
특히나 여자 선생님이 아니라 남자 선생님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좀 더 긴장하는 부분이 있기도 했다.
담임선생님은 소개가 끝이 나자 우리에게 청소를 시키셨다. 조금 있다가 와서 확인하겠다고 조용히 교무실로 향했다.
우리는 청소담당을 정하면서 좀 더 서로를 파악했다. 청소구역과 도구를 선점하는 것에서부터 기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청소가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담임선생님이 교실에 도착했다.
청소를 확인한 선생님은 열려있던 교문과 창문을 다 닫았다. 한숨을 크게 푹 쉬고는 안경을 벗고 말했다.
“이게 지금 청소라고 한 겁니까? 다들 책상 위로 올라가 무릎 꿇고 걸상 듭니다.”
우리는 당황하고 벙쪄서 움직임이 둔해졌다. 책상에 올라가는 둥 마는 둥 하는 모습을 보이자 선생님은 뒤집힌 눈을 하고 우리에게 포효했다.
“야 이 새끼들아! 지금 나 무시하냐? 얼른 안 올라가?! 새끼들이 뒤질라고 환장했나.”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을 몸으로 배운 순간이었다.
우리가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대상은 서로가 아니라 우리 담임선생님이었단 걸 꿈에도 생각 못했으니까.
https://youtu.be/RVNMZA6lbT8?si=2Z85MV1MPgVSmTk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