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도 가난은 싫고 부끄럽다

by 하짜



축구와 개그로 한창 내 주가가 최고 절정에 다달했을 즈음에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학교를 다니면 매 학기 초에 ‘가정설문조사’를 실시한다. 설문 조사에 처음 부분에 해당하는 것이 본인이 누구와 살고 몇 명이서 사는 지다. 나는 한부모 가정이며 외할머니와 외삼촌들과 산다고 적었다.


선생님들 중에서도 사려 깊고 배려심 많은 분들은 그런 아이들을 따로 복도나 교무실에 불러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셨다.

중학교에 와서도 초등학교 때와 별반 다를 게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나를 포함해서 여러 아이들에게 교무실로 오라고 방송했다. 처음엔 뭣 때문에 부르는지 몰라서 두려운 마음으로 갔다. 가보니 교무실이 있는 복도에 쌀포대가 여럿 쌓여 있었다.


그것을 보고는 ‘아 우리 보고 이걸 옮기라고 부른 거구나.’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방송으로 호출한 아이들은 모두 경제적으로 힘든 아이들이었다. 선생님은 마치고 쌀포대를 짊어지고 가라고 했다. 특히 우리 반 담임선생님은 꼭 챙겨가라고 얼굴을 인상을 팍 주며 말했다.


나는 믿기지가 않았다. 옛날 못살던 80년대도 아니고 학교에서 쌀포대를 짊어지고 가라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지금 생각해 봐도 가난한 아이들의 여리고 슬픈 마음을 신경써주기는커녕 그저 챙겨만 주면 끝인 아주 난폭한 선의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베풂과 챙김은 ‘얘네들 집안은 가난해서 이렇게 쌀을 준답니다!’라고 우리를 대놓고 광고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날 쌀을 짊어지고 집으로 갔다. 엄마와 할머니는 기뻐하셨지만 나는 솔직히 기쁘지 않았다. 화가 났다. 내가 원해서,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가난하게 살아야 할까? 어른들한테 따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의 창피함은 무조건적으로 잘못된 거이고, 그렇게 사는 게 부끄러우면 집을 나가라고 엄마는 말하셨기 때문이다.

결국 그날 저녁에 참고 참았던 감정이 터졌다. 밖으로 소리가 새어 나갈까 봐 두 손으로 입을 꼭 막았다.


다음날 학교에 가기가 무서웠다. 아이들이 날 놀리거나 손가락질하면 어떡하지? 가난하다고 무시하거나 따돌리면 어떻게 해야 되지?

아니나 다를까. 나의 예상은 어긋나지 않았다.


등교를 해서 교실 문을 열고 자리에 가서 앉자마자 점탱이가 나를 주시하더니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주둥아리를 열었다.

“야! 니 어제 쌀 받아갔제?”

“어? 어.....”

“쌀 받아간 놈들은 가난해서 받는다던데? 너희 집 가난하제?”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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