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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짜 Feb 04. 2024

몸으로 배운 인생사 '새옹지마'

 塞 변방 , 막힐 색, 翁 늙은이 , 之 갈 , 馬 말 마     


 ‘변방에 사는 노인의 말’이라는 뜻으로, 세상일은 변화가 많아 어떤 것이 좋거나 나쁜 것이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말.          

 

 2023년 12월 말부터 취업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쉽지 않았다. 온라인 이력서를 넣었지만 연락이 오는 곳은 겨우 한 두 곳이었다. 면접을 보러 가면 지원자들이 많거나 경력, 자격증으로 괜스레 주눅이 들었다. 면접도 한두 번이지 계속 떨어지면 자존감이 내려간다.      

 

 면접을 여러 번 보다 보면 2 지망인 곳에서 일해보자고 연락이 왔지만 1 지망인 곳의 결과를 기다렸다 기회를 놓친 적도 있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와중에 경제적인 압박이 오니까 버티기 힘들었다. 떨어져서 오는 자괴감보다 얼른 취업이 돼야 하는 불안감이 더 커져만 갔다.     

  

 어떻게 해야 될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나?라는 생각이 내 방안에 가득 차 있을 때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에 경비일을 하면서 글을 쓰는 사람의 영상이 떴다. 무언가에 홀린 듯 영상 처음부터 지금까지 안 빼고 다 시청했다. 멋있었다. 결과와 성공 이런 걸 떠나서 꿈을 위해 모든 것을 견뎌내고, 지치고 힘들어 온갖 유혹에 흔들려도 다시 돌아와 글을 쓰는 모습이. 뭔지 모를 위로와 힘을 얻었다. ‘그래 나도 해 보자.’ ‘나도 저분처럼 글을 쓰겠어.’ 라며 경비이수증 교육을 신청했다.     

 

 교육은 화, 수, 목이었다. 긴장하며 들어갔는데 대부분이 중장년의 어르신들이었다. 그중에 내 또래 남자들과 여자가 몇 명 끼어있었다. 수업을 하루에 8시간씩 24시간을 이수하고 마지막 날에 시험을 쳐서 합격하면 이수증이 나오는 커리큘럼이다. 처음엔 정말 열심히 들었는데 이틀 날부터는 솔직히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중장년의 눈높이에 맞춘 터라 굉장히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내용으로 수업이 진행되었기 때문이겠지.      

 

 강사가 다음 주에는 응급처치 심폐소생술 이수증과 화재소방재난안전 수료증 수업이 있다고 신청을 받았다. 난 주저 없이 신청했다. 취업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로는 얼마 없는 자신감을 키우기 위해서? ‘없는 것보다는 든든하겠지’라는 얄팍한 이유로 말이다.      

 

 보안·경비 쪽으로 이력서를 넣으려고 공고 홈페이지를 들어갔다. 사람들 생각이 역시 다 비슷비슷 한가보다. 괜찮아 보이는 조건의 공고들은 지원자가 많았다. 애써 무시하고 지원을 넣는다. 시간의 여유가 없으니 다른 분야의 일도 지원을 한다.     

 

 아무 연락이 없을 때도, 하루에 두 번 이상 연락이 와도 결과는 항상 똑같았다.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고 노력한 대가는 없다.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그 과정도 모를뿐더러 알아도 바뀌는 건 없으니까.      

 

 그렇게 똑같은 날을 지내고 있다가 지원했던 곳에서 면접문자가 날아와서 다음 날 아침에 병원으로 면접을 보러 갔다. 거기서 하는 업무는 ‘환지이송원’이었다. 나 말고도 5명이나 대기를 하고 있었다. 거기서 내가 제일 어렸다. 대기 중에 혹시나 몰라 구인공고 어플에서 보안·경비를 검색하니 조리원으로 일하던 예전 직장에서 ‘야간경비원 1분 구합니다.’라고 떠있었다. 검색한 그날 방금 올린 뜨끈 뜨끈한 공고였다.      

 

 고민을 하다가 ‘내가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잖아.’라고 속으로 말하며 입사지원 버튼을 눌렀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남은 두 사람과 함께 면접을 보았다. 직무에 대해 듣고 질문하며 면접 마무리쯤에 하는 면접관이 말했다.     

 

 “면접에 합격하시는 분은 2월 28일부터 일하게 됩니다.”     

 

 아차 싶었다. ‘그래 면접에 합격해서 바로 일하는 게 아닌 경우도 있는데...’ 면접을 끝내자마자 마음이 다급해졌다. ‘빠른 시일 내에 일하는 곳을 찾아야 한다!’ 병원에서 나와 카페에 들어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는 구인공고를 열심히 뒤지고 기대하고 실망하고를 반복했다.      

 

 집에서 한숨을 푹 쉬고 있을 때 예전 직장 상사한테서 연락이 왔다. (그전부터 종종 연락을 하며 지냈다.) 나에 대한 추천을 해줬으니 얼굴에 먹칠하는 언행을 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기쁘고 나쁘고 감정을 떠나서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하며 말이다. 통화를 끊고 나서 시간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사람의 인연이라는 게 참... 그동안 내가 못나고 나쁘게만은 살지 않았구나 싶었다. 너무나 감사했다. 그 다음날 전화가 왔다.     

 

 “OO 씨! 맞으시죠? 여기 OOOO입니다. 오늘 면접 괜찮으신가요?”     

 

 그날 면접을 보고 그 자리에서 계약서를 썼다. 면접이 아니라 마치 신입직원의 교육을 받는 것 같았다. 그동안 그렇게 어렵던 취업이 이렇게 일사천리로 끝이 나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약간의 허무함도 느껴졌다.     

 

 2월 8일 날 인수인계 및 교육을 받고 11일부터 야간 보안으로 출근을 하게 된다. 급한 불은 일단 껐다. 마음의 여유가 조금은 생겼다. 불과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취업난으로 며칠을 헛되이 보낸 적이 있었다. 불안으로 인해 무언가에 집중할 수 없었던 날. 그때 생각을 바꾸어 ‘지금 이 귀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기는 너무 아깝다.’며 이수증, 수료증을 따고 계속 움직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매일 일희일비(一喜一悲) 했더라면 아마 지금 이런 순간이 오지 않았을 것이다.     

 

 20대 때 헛되게 보냈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지금에서는 아니었다. 그 시절이 있었기에 아픔도 오래가지 않았고 힘들어도 버틸 수 있었다. 상황과 감정이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배운 시절이니까.     

 

 최근 약 한 달간 몸으로 배운 것은 인생사 새옹지마다. 당시에는 힘들고 괴롭던 시절이 그 뒤에 있을 일들에 대한 자양분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꿈에 바라던 일에 다가가기 위한 걸음을 일보 전진했다. 지치고 쓰러져도 괜찮으니 기어서라도 멈추지 않고 가고 싶다. 만약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에 비슷한 일을 겪고 있다면 내 이야기가 조금은 위안이 되길 바라본다.     

 

 (혹시나 저의 브런치 글을 읽어보실 S 실장님께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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