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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짜 Jan 28. 2024

생각과 마음을 정리하러 간 여행에서 깨달은 것


 2024년 갑진년. 7개월째 백수다. 처음엔 이렇게 될 줄 몰랐다. 2023년 6월까지 병원식당에서 근무를 하다가 그만두었다. 자격증을 딴 곳에서 취업이 어느 시기에 될 거다란 말만 믿고 그만둔 게 큰 화근이었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첫째는 온라인으로 하는 글쓰기 수업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스토리 소재 때문이었다. 하는 일이 주로 몸을 쓰는 일이기 때문에 집에만 오면 피곤해 쓰러지거나 도무지 생각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여차저차 취업소개만 믿고 퇴사한 것이다. (꼭 그 이유 말고도 다른 부차적인 이유도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남은 잔고가 거의 바닥날 즈음에도 취업 얘기가 없었다. 전화를 해보니 사람이 있어야 일을 따와서 할 텐데 사람이 없어 힘들다고 하였다. 난 나 자신을 탓했다. 이 일 자체를 부업이나 여유 있을 때 접근했어야 하는 건데 작품 구상에 빠져 이성을 잃었던 것이다.     

 

 부랴부랴 취업준비를 하는데 쉽지가 않다. 지금 마음에는 글을 쓰는 것에 빼앗겨 면접을 봐도 적극적이지 못했고 마음도 가지 않았다. 자꾸만 떨어지는 면접에 자존감이 많이 내려갔다.  구인공고와 말이 달라서 짜증 나고, 계속 왔다 갔다 해서 지쳐만 갔다. 더 힘든 건 남은 돈이 얼마 없어 압박감을 느끼며 하루를 보내는 거였다.     

 

 좌절과 우울로 보낼 때 다행히 대출이 되어 겨우 고비는 넘겼지만 또 하나의 혹이 생긴 기분이다. 잔고는 해결되었지만 취업상태는 그대로라서 집에 있을 때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불안과 두려움이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한 유튜브에서 경비일을 하면서 글을 틈틈이 쓰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그래 이거다!’ 교욱기관에 전화를 해서 경비이수증 교육을 신청을 했다. 시간이 조금 남았다.(그때가 1월 둘째 주였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하다가 부산에 3대 걷기 코스를 걷기로 했다. 무수히 걸으면서 생각과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몰운대, 태종대, 해운대로 계획을 짰다.     

 

 


 처음으로 간 곳은 태종대.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서 도착하면 관광객을 유혹하는 분들이 먼저 다가온다. 유람선을 태우려고 하는 자와 그걸 듣고 고민하는 일본관광객들이 보인다. 좀 더 앞으로 걸어 나가면 입구 안에 있는 커다란 나무들이 반겨준다. 하도 오랜만에 나무를 봐서 그런지 몰라도 그냥 커다란 게 아니라 웅장하고 거대해 보였다. 잠시 멈춰 사진을 찍고 또 올라간다. 내 앞에서 올라가는 사람과 내려오는 사람이 교차되며 지나간다.     

 계속 올라가면 아주머니들이 즐거운 대화, 험담, 건강에 대한 대화를 하시며 내려온다. 도시 속에서만 보다가 나무들이 즐비한 곳에서 들으니 기분이 또 달랐다. 분위기가 이렇게 중요한 건가 싶었다. 기분 좋게 느껴졌기 때문에.     


 정상까지 올라가면 바다가 보인다. 차갑고 시원한 공기, 자연이 주는 색깔, 도시와 사람들한테서 들을 수 없는 소리가 내 머릿속과 가슴을 씻겨주었다. 불협화음이 내는 소음이 잠잠해졌다.     


 전망대에 들어가 바다를 바라봤다. 청량음료처럼 톡 쏘고 시원하게 느껴졌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 보니 저 멀리서 움직이는 배들이 보였다. 날이 좋아서 멀리 있는데도 선명하게 잘 보였다.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나서 한참을 쳐다보았다.      


 전망대 2층으로 올라가니 카페가 있었다. 앉아서 편하게 바다 뷰를 보며 차를 한 잔 마시는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물론 관광지라 비쌌지만 지금 아니면 언제 오겠냐 싶어 냉큼 유자차와 피자빵을 시켰다. 돈은 조금 나갔지만 후회되진 않았다. 그만큼 바다를 보고 글도 쓰고 사색에 잠긴 순간들이 좋았기에.     


 휴대폰 알람이 뜨길래 확인해 보니 ‘브런치 작가 합격’이라고 떴다. 마치 커피에 “샷 추가요!”라고 말하며 넣어주는 기분이랄까? 기분 좋음이 더 진해졌다. 브런치 작가 도전이 한 번에 이루어진 게 아니기 때문에 더 진하게 느껴진 거겠지? 이 기분을 바다 뷰를 보며 조금만 더 즐기다 걸음을 옮겼다.     


 시간이 남아 집으로 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갔다. 그곳은 몰운대. 지하철 1호선 제일 끝에 있는 다대포 해수욕장역에 내려서 걸어가면 나온다. 솔직히 태종대만큼의 감흥은 없었다. ‘처음’이 주는 느낌 때문에 덜 한 것도 있고 사람들 속에 찡겨 버스를 타거나 긴 시간 지하철을 타고 오는 지루함과 떨어진 체력도 한몫했다.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오겠냐며 스스로를 달래며 걸었다. 낙조전망대, 다대포 해수욕장, 해변공원, 고우니 생태길, 몰운대 유원지를 다 돌았다. 마지막 몰운대 유원지는 문을 열고 닫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걷다가 뛰기도 하면서 온전히 잘 즐기지 못해 좀 아쉬운 감이 있었다.     


 시간이 남기 때문에 하루에 두 곳으로 계획을 짠 게 온전히 즐기지 못한 이유가 되었다. 여행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여유와 힐링인 사람이 있는 반면 못 간 곳을 조금이라도 더 가보고 경험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사람도 있다. 여행을 많이 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조차 개념도 없었다. 그걸 이번 여행을 통해 알았다. 이 여행을 참고로 점점 나에게 맞는 여행을 짤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이 시원해지는 순간을 경험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비우고 나니 다시 채울 수 있다고 할까? 다시 또 불안하고 두려울 수도 있다. 그러다가 또 스토리에 관한 아이디어, 생각을 하다 보면 또 즐겁다. 나에게 있어서는 꿈이 어느새 버팀목이 되어버렸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불사 지르고 싶다. 후회가 없지는 않더라도 덜 후회하며 살고 싶다. 내 가슴과 머릿속에 있는 모든 것을 쏟아내고 싶다. 쏟아내기 위해서라도 포기(?)할 수 없다. 아름다운 풍경을 등 뒤에 두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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