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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희 Mar 07. 2024

을로 사는 사람에게.

우리 나까지 나를 때리는 일은 삼가요.

 살다보면...

 좋은 날도 오겠죠? 오늘은 노동의 고단함이 주는 무게가 평소보다 버겁게 느껴지는 밤입니다.


 통합학급(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된 학생이 그렇지 않은 학생과 함께 공부하는 교실을 부르는 명칭) 학생들에게 4시간 연속 장애인권교육을 하느라 목소리도 쉬고 지친 상태로 교무실로 갔는데, 동료들 표정이 유난히 어두웠어요.

이 무거운 공기는 뭔가, 누군가 말해주길 기다렸죠.


 한 학부모가 동료 교사에게 다다다 화를 내고는 교장님께 또 다다다. 그러고도 분이 안 풀려  교육청에 다다다 했더라고요. 처음엔 아이의 엄마, 그리고 아이의 아빠, 다시 아이의 아빠가 돌아가며 민원을 제기했어요. 같은 반에 속한 아이들과 보호자에게 같은 반에 어떤 친구가 있는지 알려줘 불쾌하다는 민원이었어요.


 민원 전화를 받은 선생님은 새 학기 첫 날 학부모에게 아이들을 잘 가르치겠다는 인사 편지를 보냈어요. 특수학급(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된 아이에게 교육을 제공하는 교실)에 누가 있는지 특수학급 학부모에게 공개한 겁니다. 이 선생님은 기간제교사입니다. 일 잘하고 성실해서 제가 꼭 일해 주십사 부탁드린 분이에요.


 특수교육대상자인 것이 학교에 있는 그 누구에게도 노출되길 원하지 않았다고 하시니 불쾌하실 수 있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담당 선생님도 사과 했다고 해요.


 그런데, 교육청에서 갑자기 그 기간제교사의 신상에 대해 물었습니다. 알고 보니 아이의 부모님이 교사의 나이, 정규직 여부 등을 교육청에 물으며 그 교사를 처벌, 즉 자르라고 했다는 거예요. 이 현실이 잠을 빼앗고 주절거리게 합니다.


 사과를 하는 사람에게,

 “참 쉬워서 좋겠어요. 미안하다고 하면 다예요?”라고 말하며 비아냥거렸다는 두 분.


 뭘 바라는 걸까요? ‘잘못하면 자르고 싶다’는 그 마음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건지 진심으로 궁금합니다. 아무리 화가 나도 밥그릇은 건드리지 말아야죠. 하나 더. 그분의 미안하다는 말이 쉬웠는지 왜 함부로 판단하는 겁니까.


 그간,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하며 죄송하다는 말을 참 많이도 했습니다. 돌이켜 봤습니다. 내가 한 번이라도 그 말을 쉽게 한 적이 있는지. 필요할 때 하는 사과의 말도 시간이 지나야 겨우 가벼워지는 무게를 지니기도 합니다.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작은 실수도 긴 시간 자책하며 못난 자신을 탓하곤 한다는 걸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민원전화를 받은 기간제 선생님은 이후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아무 말도 없는 그 분의 마음이 얼마나 참담할지 고스란히 느껴져 위로도 못해주었습니다. 위로한들 무슨 말도 들리지 않았을 거예요. 당신도 종일 화가 났을 테지요. 원하는 대로 자를 수 없는 자신의 힘없음에.


 장애인권 교육을 하며 떠들었습니다.

‘우리는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우리의 말과 행동, 시선, 심지어 마음까지 들여다봐야 한다. 그 모든 것이 타인을 벨 수 있는 상처일 수 있는지. 그런 민감함은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 사회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 시간 반. 교장선생님과의 통화를 끝내며 화가 풀린 거 아니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들었습니다. 찾아오겠다고 들었습니다. 종내, 그 기간제 선생님을 자르고 싶어 교육청에 잇달아 전화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직업이 주는 무게가 있습니다. 나의 한 마디가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는 걸 너무 잘 알아 직장에서 불쾌했던 경험은 되도록 말을 삼갑니다. 그런데 당신, 오늘 지나쳤습니다.


 이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자녀가 장애가 있다는 사실. 그게 밝혀지는 게 왜 싫은지 그 마음을 들여다보며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당신이 장애를 부끄러워해서 그러는 건 아닌지. 그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당신과 당신의 아내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모욕하는 겁니다. 장애인이든 기간제교사든 타인을 모욕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내일 동료 선생님께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함부로 휘두르는 손에 얻어맞지 말자고. 잘못이 명명백백 밝혀지기도 전에 자책하며 나까지 나를 또 때리지는 말자고.


 한 편,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무턱대고 사과하며 내가 나의 자존감을 낮추는 일 그만하자 결심을 했습니다. 당신 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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