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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희 Mar 09. 2024

금요일 퇴근길 단상

아침부터 딸아이 이마가 뜨겁다.

목소리도 나오지 않고 기운이 없다.

중학생이어도 처진 아이를 홀로 두고 출근하는 마음은 무겁다.


다이어리에 빽빽이 적힌 to-do list.

전화와 메시지 폭주

엇갈린 의견,

한 마디만 더 하면 무너질 마음들.


복도를 걸으며 배민에 혼자 있는 딸아이 점심을 맡기고

일 얘기로 어수선한 식당에서 꾸역꾸역 배를 채운다.


상담실 문을 여니 입학한 아이 엄마가 기다린다.

히스토리도 없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는 아이 엄마.

힘들었겠어요.

가만 듣다 뱉은 한 마디에 아이 엄마 눈시울이 붉어진다.


넘어지면 몇 달간 못 일어날 수 있다는 병이라기에

학교 시설물을 점검하고

아이에게 필요한 걸 정리해본다.


분주히 오가던 사람들이 사라진 건물.

뒤죽박죽 열린 문서창을 그제야 하나하나 정리한다.


적막한 건물.

무심코 바라본 창 밖 어둠에

혼자 있을 아픈 딸아이가 떠오른다.


문서창에서 깜빡거리는 커서를 보며

잠시 머뭇거리다,

마지못해 짐을 챙기는 마음이 미안하다.


퇴근길.

죽 늘어선 자동차 라이트가 깜빡거린다.

히스토리를 몰라

병의 진행경과를 모른다는 아이가 떠오른다.

문득,

나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씁쓸하다.

살아오며 한번이라도 내 이럴 줄 알았던 적이 정말 있었던가.


별 거 아니다 생각하자.

우리 그냥 오늘 하루만 즐겁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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