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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희 Mar 31. 2024

변두리 후미진 골목에도 봄은 오고 꽃이 핀다.

 왼쪽엔 다섯 동쯤 되는 아파트 단지. 오른쪽엔 담벼락이 검게 그을린 공장, 낡은 빌라와 다세대 주택이 자리한 골목. 그 골목은 재래시장으로 이어지는 길이라 일주일에 세 번 이상 거니는 길이다. 후미진 동네답게 길거리에는 아무렇게나 던져진 담배꽁초며 산책 나온 개들이 남긴 배설물이 곳곳에 널렸다. 초저녁부터 시장 어귀에 자리한 낡은 술집 앞에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사람들이 삼삼오오 담배를 피우며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흘긋거린다. 흔한 변두리 풍경이다. 단 한 번도 내 삶의 터전이 변두리에서 벗어난 적은 없다. 차와 사람이 복잡하게 뒤엉킨 시장 통, 취기 오른 사람들이 내뿜는 담배연기는 남편이 늘 입고 있는 구멍 난 내복처럼 익숙하다. 하지만 학교에서 적응 못해 이사 가고 싶다 노래 부르는 딸의 방황이 수위를 더해가고 월례행사처럼 집을 나가는 아이를 찾아 미친 사람처럼 길거리를 헤매기 시작하며 눈에 익숙한 풍경 하나하나가 참을 수 없이 지겨워졌다.

 근래엔 우울하면 더 찾곤 하던 재래시장의 활기도, 몇 몇 다정한 어르신의 아는 체도 다 거추장스럽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지난 주. 하필, 거의 6년 유지해온 영어회화 스터디모임에서 우리 동네의 장점을 영어로 소개해 보라는 미션이 주어졌다. 멀미가 났다. 거의 4년 매주 로또를 사며 이사를 꿈꾸고 있는 마당에,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내 삶의 누추함을 꼭 빼닮은 동네를 자랑해 보라니. 같은 시에 속하나 내 삶의 터전과 백팔십도 다른 신도시에 사는 젊은 엄마가 동네 카페며 공원, 강을 낀 산책길, 맛집을 운운하며 우리 시에 대한 자부심을 한껏 드러냈다. 배배 꼬인 마음에 도심에 있는 아름다운 공원, 서울의 고급스런 레스토랑과 비교해 좋은 점을 세밀하게 말해 달라 심술을 부렸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딸을 위해 두세 번 이사를 했다는 내 또래 엄마 말에 맞장구를 치는 엄마들을 보며 입을 다물고 경청하는 시늉을 했다. 그들의 경제적 여유에 질투가 났고 하나밖에 없는 딸을 위해 이사 한 번 해주지 못하는 내 처지가 초라했다.

 방황하던 딸은 이주 전쯤, 현재 재학 중인 학교에 다니지 않겠다고 마침내 선언했다. 예견된 일이었고 받아들였다. 지난 시간. 헛된 희망을 품으며 매주 로또를 사기도 했지만 인간은 모름지기 지난한 인생을 견뎌야 하며, 인생은 원래 뜻대로 안 된다는 문장을 수없이 되뇌며 괜찮은 척 했다. 자기 몸과 마음에 상처를 내는 딸을 보며 대체 내 삶이 왜 지속되어야 하는지 숱하게 되물었고 오밤중에 아이를 찾아다니며 차라리 내게 사고가 났으면 했다. 아이가 다시 학교에 잘 적응하길 내심 간절히 바랐지만 어차피 안 될 일. 그나마 다행인 건 괜찮지 않고 지난한 시간도 어김없이 흐른다는 사실이다. 변한 건 딱히 없다. 매일 가던 학교에 안 다니는 딸은 여전히 종일 스마트폰에 붙어살고, 외출할 때엔 두 시간 가량 메이크업을 한 후 크록스 슬리퍼를 찍찍 끌고 나간다.

 존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온전한 사랑이 있을까 생각하며 11시쯤 일어나 아점을 먹고 종일 빈둥거리는 딸아이를 내버려둔다. 그 아이와 내게 시간을 주고 싶다. 그간의 상처를 아물게 하며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새로운 삶을 쌓아올리기 위해. 

 며칠 전 놀러나갔던 아이가 뛰다가 다쳤다는 연락이 왔다. 세상은 참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병원으로 바삐 옮기다 고개를 들었다. 정신없이 흐른 삼월. 공중에 노란 점을 수놓은 산수유 꽃나무 옆에 고운 목련이 활짝 폈다. 초라한 변두리 후미진 골목에도 미색 등을 켠 듯 은은하게 핀 꽃의 자태가 더없이 아름다워 착잡한 마음마저 순해지던 순간이다. 생각해보니 자연은 참 공평하다. 봄은 가난한 동네라 피해가지 않으며 꽃은 지저분한 곳이라 피고 짐을 건너뛰지 않으니.

 어제 아침 지인에게 메시지가 왔다. 죽은 줄 알고 베란다에 내버려둔 화분에서 연두색 새 잎이 두 개나 솟아 있었다고 사는 일도 그러하길 바란다며. 내가 그분께 하등 도움 될 일도 없는데 종종 연락하며 내 안위를 걱정해주는 고마운 분이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오후. 나보다 한 참 어린 지인이 비타민 선물을 보냈다. 가정폭력으로 마음이 셀 수 없이 허물어졌던 그 친구는 오히려 내가 챙겨야 할 사람인데, 내게 건강 돌보라며 행운이 깃들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무너져본 사람은 무너져본 사람을 알아보며 마음이 힘든 사람 눈엔 마음이 힘든 사람이 유독 눈에 띈다. 내게 메시지를 보내며 다독이는 그들의 마음도 아마 편치 않기에 내 생각을 했을 터이다. 그들이 처한 상황이 힘들어 나의 힘듦이 더 이해가 갔기에 측은지심이 느껴졌을 것이다.

 섣부른 희망은 절망의 깊이를 더 한다는 걸  아는 나이다. 삶이 나아질 거라는 근거 없는 위안이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걸 이해한지 오래다. 하여 그들에게 내가 그랬듯, 환하게 핀 봄꽃을 보며 잠시 위안 삼아 보라 말하고 싶다. 어두운 영혼에 노란 산수유와 분홍 진달래, 미색 목련이 은은한 조명을 비춰주면 우리 맘이 잠시 가벼워진다고. 때가 되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봄꽃처럼 무너진 삶은 언제든 다시 쌓아올릴 수 있다는 믿음만 버리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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