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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희 Mar 23. 2024

괴물은 누구인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괴물을 보고

 몸은 때로 마음보다 솔직하다. 좀 피곤할 뿐 괜찮다 생각했는데 오른 쪽 안면이 기분 나쁘게 따끔거리더니 군데군데 포진이 생겼다. 이쯤 되면 두말없이 쉬어야 한다. 오늘만 살 게 아니므로. 마침, 비 내리는 금요일 저녁. 봄을 재촉하는 빗소리가 오늘은 불금이니 좀 즐겨야하지 않겠냐고 말을 건넨다. 지인이 추천한 영화가 떠올랐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괴물의 포스터는 묻는다. 괴물은 누구인가.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영화는 시작부터 괴물을 찾게 만든다. 괴물 찾기 미션을 꼭 성공하겠다는 일념으로 영화 끝까지 몰입하던  가슴이 심하게 요동쳤다. 괴물을 쫓던 내가 바로 괴물이라는 자각에.


 사오리는 남편이 죽고 초등학교 5학년 미나토를 혼자 키우는 싱글맘이다.

-인간의 머리에 돼지의 뇌를 이식하면 그건 인간일까 돼지일까.

미나토의 기이한 질문으로 시작된 이상 징후. 아이가 자른 머리카락들, 텀블러에서 나온 흙과 돌, 그리고 몸의 상처. 사오리는 미나토의 담임 호리가 아이를 학대했다고 확신하며 학교로 찾아간다. 그런데 학교는 미나토가 받은 상처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무표정한 교장은 오히려 담임 호리 편을 들며 사오리 속을 뒤집는다.


 공교롭게도 작년 이맘때. 딸이 울며 자기 방에서 나왔다. 무섭다고 횡설수설하던 그 때, 난 남편과 거실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던 것 같다. 깜짝 놀라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는데 아이 손과 팔에 상처가 보였다. 컴퍼스로 직직 그어놓은 상처였다. 학교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애들 때문에 죽고 싶어 자해를 했다는 아이 말에 내 심장에도 컴퍼스 바늘이 꾹꾹 같은 선을 눌러 긋는 것 같았다. 학교 화장실, 운동장, 복도 할 것 없이 우리 애를 괴롭히던 여자애들은 SNS에도 우리 애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리며 딸을 고립시키고 있었고, 혼자 견디다 말문을 연 딸의 몸엔 자해한 흔적이 여럿이었다.


 4학년 즈음 시작된 사춘기로 초등학교도 힘들게 졸업한 아이는 중학교 입학 무렵 들떠 있었다. 어둡던 아이의 표정에 생기가 돌아 무겁던 집안 분위기도 좀 누그러지나 싶던 때였다. 하필 그때, 게다 입학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고, 아이가 겪었을 아픔에 가슴이 미어졌다. 미나토의 엄마처럼.


-가해자 애들도 지금 상황에 스트레스가 심해요.

 학교폭력 담당교사의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 교사는 수위를 더해가는 집단 괴롭힘에 죽고 싶다는 딸보다 가해자들을 걱정하며 진상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피해자 학부모가 직접 고쳐준 사건 경위를 그대로 옮겨 적었다. 학교는 우리 애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어보였다. 미나토가 다니던 학교처럼.


 서로 사과하는 것으로 사건이 종결됐지만 딸은 학교에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학교를 옮겨 달라고 애원했지만 이사 갈 형편이 안됐다. 학교폭력 피해자로 지역 내 전학을 시도했지만 집과 가까운 네 학교에서 전부 거부당했다. 학교 폭력 피해 학생이 전입해 잘 적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교육청에 민원을 넣었지만 학교장이 전입을 받아주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은 고구마 같기만 했다.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 덕에 학교 폭력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한껏 형성돼 학교에서도 학교폭력 예방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시기다. 모두가 학교 폭력 피해자의 아픔을 운운했지만, 막상 내 아이의 피해에 관심을 갖고 보듬어주려는 학교와 교육청은 주변에 없었다. 우리 애의 전입을 거부한 학교와 교육청은 당시 내게 괴물과 다르지 않았다. 미나토의 고통에 무관심해 보이는 학교와 미나토에게 사과할 생각 없어 보이는 호리 선생님이 사오리에게 그랬듯.


 그런데 이상하다. 어렵지 않게 괴물을 찾았다 생각한 나는 호리선생님 눈으로 같은 사건이 전개되자 황당해진다. 사오리 눈에 악마처럼 보이던 호리 선생님은 미나토와 친구 요리에게 오히려 좋은 선생님이었고 죄 없이 학교에서 쫓겨난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작고 예쁘게 생긴 요리를 괴롭히는 아이들, 아들의 성적 정체성이 못마땅해 폭력을 행사하는 요리의 아빠, 요리를 좋아하는 마음과 어울리면 같이 놀림을 받을까 두려워 요리를 괴롭히는 데 동참하기도 한 미나토. 사실이 무엇인지 중요하지 않다며 호리 선생님을 자른 교장. 괴물은 누구일까. 모두가 괴물이라는 건가. 혼란스럽던 차에 미나토가 동성인 요리에게 품은 마음이 드러나며 내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미나토를 제일 힘들게 한 건 뭘까. 엄마 사오리가 미나토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있다.

-네 아버지에게 약속했어. 네가 결혼하고 네 가족을 갖기 전까지 버텨내겠다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가족이면 돼.


 작년 가을.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지 못하는 딸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이제 좀 그만하라고 딸을 다그쳤다. 엄마도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했다고 읍소도 해봤지만 계속 엇나가는 딸이 못마땅했다. 남들처럼 좀 평범하게 학교 다닐 수는 없나. 평범한 게 그렇게 어렵나. 제발, 평범하게 살라고 하소연했다.


 평범할 수 없는 미나토에게 평범한 가족이면 된다는 엄마의 말. 아차 싶었다. 나는 영화에서 그 말을 한 엄마보다 더 심하게 미나토를 아프게 한 괴물을 끝내 찾지 못했다. 학교 폭력 피해의 후유증으로 어른이 되어서도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미 평범할 수 없는 딸에게 평범하라고 다그친 나. 아이의 아픔에 공감 못한 학교폭력 담당교사, 아이의 전입요청을 거부한 학교, 아이를 도울 생각이 없던 교육청. 엔딩 크레딧을 마주한 순간, 우리 애에게 가장 잔인한 괴물은 엄마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지만 부인할 방법이 없었다.


 얼마 전 가출했던 딸은 이번 주 내내 학교에 가지 않았다. 가해자 아이들의 시선이 불편하고 싫어서 같은 학교에 못 다니겠다고 했다. 검정고시를 보면 된다고 말했지만 종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아이의 미래가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아이를 탓하며 내 아이에게 또다시 나 스스로가 가장 강력한 괴물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싶다. 더불어, 기도한다. 서로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미나토와 요리가 행복하게 숲을 달리는 마지막 장면처럼 딸에게도 해피엔딩이 기다리고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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