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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희 Mar 19. 2024

나도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딸이 또 집을 나갔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시작된 아이의 방황은 자해, 자살시도, 가출로 이어졌고 상담과 치료를 지속했음에도 아이의 흔들림은 끝이 없었다.

대부분의 엄마가 그렇듯 전부 내 탓처럼 느껴졌고  괴로웠다.


 토요일 오전. 이주 째 수학학원에 안 가 학원에 가라고 잔소리를 했다. 학원에 보내달라고 몇  며칠 떼를 써 보내준 학원인데, 또 시작이다 싶었다. 거의 3년. 아이는 학원에 보내달라고 하고, 보내주면 일이 주 다니다 관둬버렸다. 이유도 다양하다. 강사가 분조장(분노조절장애)이다, 집에서 멀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된다 등등.


 애도 애지만, 애가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는 걸 분명 알면서도 같은 짓을 반복하니 왜 이 어리석은 짓을 계속 반복하나 회의감이 든 데다, 여전히 학원갈 생각 않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애가 미웠다. 한두 푼도 아닌 학원비가 아까워 미움이 배가됐고 결국 쏘아붙였다. 사춘기 뇌를 장착한 아이를 몰아붙이는 게 아니었다.


 거칠게 학원갈 준비를 한 아이는 또 연락이 안됐지만 친한 친구가 입원한 병원에 있다는 걸 알아서 크게 걱정은 안했다. 지 맘대로 나갔다 오밤중에 들어오는 일은 이미 비일비재했으니까. 사실 우리 아이는 이미 우리 부부가 그은 통제선 따위는 아랑곳 않은지 오래다.


 일요일 이른 아침, 밤새 뒤척이던 남편이 병원에 갔는데, 딸 친구 혼자 자고 있다며 연락이 왔다. 부랴부랴 병원으로 가 물어보니 우리 딸은 친구가 자는 사이에 나갔고, 당시 배터리가 방전상태라 친구도 현재 연락이 안 된다고 했다. 고작 몇 천원 충전된 교통카드 외에 무일푼인 아이의 행방을 알 길이 없었다. 친구들을 수소문해봤지만 딸의 소식은 아무도 몰랐다. 머리가 띵하고 두려웠다. 혹시 나쁜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그깟 학원 안가는 게 뭐가 대수인가 후회가 밀려들었다.


 가출신고를 했다. 경찰이 내가 있는 곳으로 왔다. 아이의 최근 사진을 달라 했고 가출당시 아이의 행색, 특징 등을 물었다. 우리 애는 가족과 사진을 안 찍은 지 오래다. 조카가 보내준 사진을 보내고 아이의 인상착의를 설명하는데 아이와 한없이 먼 느낌이 들었다. 눈물이 났다. 왜 우리는 이지경이 됐을까. 딸은 줄곧 엄마 껌딱지란 말을 들을 정도로 곁에서 떨어질 줄 몰랐던 아이였는데. 눈뜨자마자 와서 폭 안기던 아이였는데.


 경찰은 아이 위치 추적을 위한 몇 가지 절차를 밟은 후 청소년 가출전담팀 조사관을 연결해 주었다. 동네를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는데, 조사관에게 연락이 왔다. 아이가 동네를 벗어나 낯선 외지에 있다고. 납치일까. 가슴이 내려앉았다.


 주행하는 차 안에서 아이가 있을 법한 도로를 살피는 데 딸이 보였다. 처음 보는 여자아이와 함께 있는 딸은 금세 우리 차를 알아보고 차와 반대방향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유턴 후 딸이 사라진 근방에 차를 주차하는데 카톡이 왔다.


-당장 집으로 가. 엄마가 이러니까 내가 더 집에 가기 싫은 거야.


 어딘가 숨어 나를 보고 있는 딸은 차갑고 사나운 말을 쏟아내며 내가 돌아가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조사관과 거의 시간 반 주변을 뒤졌지만 딸을 찾지 못했다. 조사관은 집으로 돌아가 기다리라고, 자신이 잘 달래보겠다고 했다. 집으로 향하는 길. 체념, 슬픔, 분노, 원망 같은 감정이 불쑥 솟구쳤다 가라앉길 반복했다. 방안에 들어서자 참았던 울분이 쏟아졌다. 내가 또 아이를 몰아붙였다는 자책과 뭘 그리 잘못했나 싶은 억울함이 교차했다.


 조사관에게 연락이 왔다. 아이가 집에 들어가는 걸 거부하니 일단 다시 친구가 있는 병원으로 데려다주고 사건 종결하겠다고. 내가 억지로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면 아이가 또 나갈 거라 얘기한 상태였다. 내 아이에게 느끼는 무력감은 날이 갈수록 강도를 더해가는 느낌이다. 네, 감사합니다. 통화를 종료하고 여러 생각을 했지만 아무런 수도 떠오르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엄마가 이만 원 보냈으니까 저녁 굶지 말고 먹어.

-응


 밤 아홉시가 못된 시각. 아이한테 연락이 왔다. 생리를 시작해 배가 아프다고 데리러 오라고.

돌아온 아이는 정신없이 곯아떨어졌다. 내게 자기가 왜 나갔는지, 뭐 때문에 화가 났는지도 모른다며 모질게 덤비던 아이의 맨 얼굴은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애처럼 앳되고 순하다. 결국, 내 잘못일까.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학교 폭력 피해자가 된 딸은 여전히 아픈데, 나의 몰이해가 아이를 더 사지로 내모는 걸까.


-어제 같이 있던 애는 누구니?

-몰라도 돼.


나도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늘 같은 일을 반복한다. 이해하자 다짐해놓고 좁아터진 내 안에서 스멀거리는 화를 가르침이라 둔갑시켜 애를 궁지로 모는 일. 어린이일 뿐인 아이가 자해를 하고 가출을 하면 다시 후회하는 일. 연이은 후회로 포기를 배우는 일. 그게 나의 삶인가 보다.


이 밤. 좋은 엄마가 되긴 애당초 글러먹은 것 같으니 말이나 아끼자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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