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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희 Apr 10. 2024

봄꽃 같은 위로의 말이 있다면.

- 모든 죽음은 슬프지만 짧은 생은 특히 애석하다.

 강아지를 데리고 아침 산책을 갔다. 주말 내 만개했던 벚꽃 잎이 바람이 흩날리며 떨어진 자리에 라일락이 피기 시작했다. 어느새 4월. 나무에 물이 오르고 가벼운 차림으로 아침, 저녁산책하기 좋은 때. 라일락 향이 기분 좋게 사람 마음을 들뜨게 하다가도 짧게 피고 지는 꽃잎을 보며 슬퍼지기도 하는 계절.


 지난 주 벚꽃 구경을 하다 남편이 말했다. 웅이(가명) 녀석이 살아있을 적에 이렇게 벚꽃이 흐드러지면 족발이랑 막걸리 사 한강에 가자고 했다고. 웅이라는 친구는 몇 년 전에 혈액암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남편이 덧붙였다. 그래도 웅이 어머니가 그 녀석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 다행이라고. 어느 봄날이던가. 남편과 함께 내가 다니던 대학으로 찾아와 처음 얼굴을 본 남편의 친구는 시커먼 피부에 사람 좋은 인상을 풍기는 사람이었다. 싱그러운 이파리들이 한창 삐죽빼죽 연초록 무늬를 수놓던 계절. 남편과 나, 그리고 그 친구는 한창 청춘이었다. 딱 지금의 계절처럼.


 문득 남편 친구 딸과 아내가 떠올랐다. 만날 때마다 딸이 공룡 박사라며 오타쿠 경지에 이른 딸 자랑에 시간 가는 줄 모르던 그 친구가 살아있었다면, 지금쯤 남편은 그 딸에 대해 무슨 말을 내게 전할까. 남편 친구의 아내와 그 딸은 남편과 아빠가 부재한 이 봄, 거리에 지천인 봄꽃들을 어떻게 바라볼까. 길거리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너무 환해서 젊어 간 남편 친구의 죽음이 더 애석하게 느껴졌다. 뭐가 급해 그리 빨리 갔대... 흐린 말끝에 물기가 스몄다.


 중년에 들어서며 남편 친구 소식처럼 예상치 못한 부고를 듣는 일이 잦아졌다. 친구의 남편이 불치병을 앓다 눈을 감고 남편의 후배가 심장마비로 돌연사 했다. 그런 소식엔 연세 지긋하신 분이 오래오래 살다 돌아가셨을 때와는 다른 감정이 인다. 그리고 그런 죽음은 살만큼 살다 편히 눈감는 호상보다 유족에 대한 안타까움이 짙고 길다. 나도 언제든 죽음을 맞을 수 있다는 실감에 아직 철없는 딸의 모습이 함께 겹쳐 걱정과 불안이 뒤섞이고, 나의 죽음 이후 홀로 남을 딸 생각에 옷소매로 눈물을 찍는 일도 많아진다.


 “내 구명조끼 니가 입어.”

10년 전, 하필 이 아름다운 4월. 세월호와 가라앉은 故 정차웅 학생의 유언이다.


 “걱정하지 마. 너네들 먼저 나가고 선생님 나갈게.”

정차웅 학생과 같이 세상을 떠난 故 최혜정 단원 교사의 유언이다.


 사는 일이 내겐 그리 행복한 일은 아니다. 사는 건 어쩌면 그저 죽어가는 과정이며, 살아있다는 건 끊임없이 몸을 소모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아침에 늘 몸이 찌뿌둥하고 별 것도 안했는데 지쳐 휴일이면 줄곧 침대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쉬어야 회복되는 나이가 되고 보니 몸이 낡았다는 생각에 서글프다. 출근길 엘리베이터 안 거울에 비친 얼굴을 아무리 뜯어봐도 예쁜 구석 하나 없고 봄물 든 생명들이 뿜는 생기도 찾아볼 수 없어 가끔 허망하다. 그래도, 살아있기에 만들 수 있는 삶의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를 가까운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 아침 산책길 탈모 약을 먹었더니 옅은 눈썹이 시커매져서 좋은데, 입술 위에 수염이 나 난감하다는 동생의 얘기를 듣고 크게 웃을 수 있으며 벚꽃이 다 지기 전 한 번 더 꽃을 보러 가자는 남편과 커피를 마시며 작은 꽃잎이 수놓은 꽃길을 천천히 음미할 수도 있다. 별 것 아닌 그러한 일의 연속이 생이라 하더라도, 그 생을 갑작스레 잃은 사람들, 그 유족을 위로할 말은 떠오르지 않는다. 짧은 생은, 뜻하지 못한 갑작스런 죽음은 그저 애석하다.


 4월이 되면 유독 그런 죽음들이 떠오른다. 흰 빛깔의 꽃들은 환하지만 상복으로 차려입던 소복이 떠올라 설까. 10년 전 세월호가 천천히 가라앉던 그 장면이 어딘가 각인 되어 설까. 모르겠다. 다만, 어느 날 지구 여기에 떨어져 나의 생이 시작되었듯, 여기 어디선가 나의 생이 나도 모르게 마감될 것이므로 아이가 살아갈 앞길에 도움이 될 만한 유언을 준비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순간, 친구와 아이들을 챙기느라 그들을 사랑하는 가족에게 아무 말도 남기지 못한 故 정차웅 학생과 故 최혜정 선생님의 유언은 영영, 너무 아프기만 할 것 같아서다.


 아름다운 빛깔의 꽃잎처럼 고인의 넋과 유족의 아픔을 달래줄 말이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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