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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희 Apr 25. 2024

바그다드 카페에 다녀왔습니다.

- 우리 다시 잘 살아볼까요?

 바그다드 카페. 세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아도 사막 한가운데 자리한 바그다드 카페와 검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흘러나오는 Calling You의 선율이 오래토록 아름다웠던 영화. 얼마 전 영화를 모티브로 한 에세이 쓰기 강좌에서 한참 어린 친구가 이 영화를 인생영화라고 극찬을 해 한번쯤 다시 바그다드 카페에 들러봐야지 막연히 생각했다. 오늘은 내게도 매직이 필요한 날이었다. 야스민이 브렌다에게 선사한 아름다운 매직.


 브렌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바그다트 카페, 모텔, 주유소를 운영하는 그녀는 삶이 지긋지긋하다. 살림에 전혀 보탬 안 되는 무능한 남편에 엄마 말 따위 아랑곳 않는 딸. 브렌다 생각엔 아무짝에 쓸모없는 피아노나 종일 치며 제 자식에게는 무심한 아들. 그 아들이 낳은 젖먹이 손주까지. 딸린 식구가 줄줄이 사탕이다. 게다 커피 머신이 고장 나 커피조차 팔지 못하는 카페는 다른 식재료 역시 동 난지 오래.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건지 당최 모르기에 어디서부터 손봐야 할지 알 수 없는 브렌다는 모든 것에 그저 화가 치민다. ‘망할 놈의 한량 나부랭이’같던 남편조차 그 모든 난감한 삶을 브렌다에게 떠맡기고 도망가 버리자, 브렌다는 서러움과 슬픔이 복받쳐 눈물을 흘린다. 곳곳에 널브러진 쓰레기를 주우며. 


 바로 그때 찾아온 야스민. 독일에서 여행 온 야스민은 무례한 남편과 여행지, 그것도 황량한 사막에서 결별한 상태. 거구의 몸으로 무거운 짐 가방을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정처 없이 걷다 찾은 바그다드 카페. 그 앞에서 브렌다와 야스민은 조우한다. 한 사람은 흐르는 눈물을, 다른 한 사람은 배어나는 땀을 닦으며.


 브렌다가 운영하는 모텔 역시 그녀의 삶처럼 대책이 없다, 손님을 맞았으나 야스민의 손이 쓸고 간 자리마다 더께더께 먼지가 수북하다. 어느 날, 야스민은 브렌다를 위해 대청소를 하고, 브렌다의 아이들, 손자를 돌보며 그들과 친해진다. 자신이 좋아할 줄 알고 청소를 해줬다고 말하는 야스민의 호의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브렌다는 자신과 소원한 아이들이 야스민의 방에서 노는 모습을 보자 화가 폭발한다. 


“당신 애들이나 데리고 놀아!” 

“애가 없어요.”


 영화는 야스민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 시시콜콜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때때로 브렌다의 손주를 가만히 어루만지거나 눈길을 보내는 모습, 혼자 모텔방에서 우는 모습을 보며 그녀 역시 삶이 쉽지 않았구나, 짐작만 될 뿐이다. 야스민의 애가 없다는 한 마디에 브렌다 마음의 빗장이 스르르 열린다. 나는 브렌다가 쾅 닫았던 문을 다시 열고 야스민에게 사과하는 장면에서 확신했다. 강퍅해 보이기만 하던 브렌다는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평범한 우리네랑 다르지 않았다는 걸. 신산한 삶이 그녀의 마음을 사막처럼 메마르게 했을 뿐이라는 걸.


 틈틈이 매직 키트로 마술 연습을 하던 야스민은 바그다드 카페에 어여쁜 색색의 꽃을 피운다. 거칠고 황량한 카페에 생기가 돌자 파리 날리던 카페가 사람들로 북적인다. 야스민이 매직,이라고 말하며 브렌다에게 빨간 장미 한 송이를 선사하는 모습에 내 마음이 뭉클거리며 일렁인다. 마치 내가 장미 한 송이를 선물 받은 기분에 켜켜이 쌓인 고됨이 씻겨 나간다. 영화는 다행히, 브렌다와 야스민이 서로에게 굳건한 의지처가 되리라는 걸 암시하며 끝을 맺는다. 감독은 비록 매직일지언정, 사람들이 꿈을 버리지 않길 바랐을 것이다.


 붉은 노을이 검게 변하는 하늘과 미풍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검은 실루엣. 은은한 불빛에 새어 나오는 바그다드 카페의 몽환적인 풍경은 넋을 잃게 만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황량한 사막에서 어디로 흐르는지 당최 모를 삶을 붙잡고 있는 브렌다의 모습에서 나를 보았기에 선물처럼 찾아온 야스민이 누구보다 반가웠다. 한번쯤, 내게도 매직 같은 순간이 찾아올 것 같은 기대에 다시 잘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스멀거리니 오늘, 바그다드 카페에 들르길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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