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그림책은 어른인 내게도 선물 같은 존재였다는 걸.
허리 보존치료 차 책장이며 방안 구석구석 들어앉은 먼지들이 자꾸 눈에 띄었다. 그간 쌓아두고 지낸 잡동사니들이 공기를 짓누르는 느낌. 좁은 집이 품고 있기에 짐이 과했다. 우리 집 규모에 비해 가장 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게 책이다. 읽은 책과 읽지 못한 책이 책장 여기 저기 빼곡하다 못해 심지어 나뒹군다.
그냥 내놓기는 아까워 난생 처음 한 당근 거래. 공짜로 가져간 사람은 나름 아끼는 책을 방치할 것 같다는 느낌에 염가에 내놨다. 비교적 사람들이 많이 찾는 소설 여덟 권에 좀 연식이 된 책 두 권을 올려 일괄판매 한다고 게시했더니 생각보다 금세 팔렸다.
마음도 집도 비우고 싶었다. 천천히. 밑줄을 박박 그으며 읽은 책, 언젠가 책장을 다시 들춰보고 싶은 책을 제외하고 싹 정리하자 결심했다. 그렇게 책장을 둘러보다 한 권 한 권 모은 영어그림책에 눈이 갔다.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미소 짓게 만들어주던 영어그림책. 영어그림책 낭독에 빠져 아름다운 단 한 문장, 그림 한 컷만 있어도 결제 버튼을 클릭했더니 권수가 제법 된다. 그림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절로 미소 짓던 소중한 시간들. 그 시간은 그 시간을 제외하면 미칠 것 같던 시간의 버팀목이 되어주기도 했다. 그래서 차마 내보내지 못하겠다.. 대신, 먼지로 몸피를 키우면서도 다시 손길이 닿길 바라던 그 책들을 다시 보며 즐거웠던 시간을 상기해보기로 했다. 이 역시 천 천 히.
딸꾹, 딸꾹, 딸꾹
책장을 넘기자마자 같이 딸꾹질이 나올 것 같은 그림책 <Skeleton hiccups>, 해골 씨의 딸꾹질.
글 margery cuyler, 그림 s.d. schindler
Skeleton woke up. hic, hic, hic
해골 씨는 일어나자마 딸꾹질을 시작한다.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오는 딸꾹질이 멈추지도 않으면 여간 곤욕이 아닐 터. 양치질을 할 때도 샤워를 할 때도 뼈에 광을 낼 때도 딸꾹질이 나는 해골 씨. 이 와중에 뼈에 광까지 내는 해골 씨는 고난이 닥쳐도 할 일은 하는 캐릭터. 그래서 멈추지 않는 딸꾹질이 더 안타깝다.
동심을 지켜주고 싶은 그림책에 구원의 손길은 필수. 같이 놀던 고스트가 딸꾹 씨에게 딸꾹질을 멈추게 하는 온갖 방법을 알려준다. 뻔해도 무의식에 희망을 심어주는 고마운 장치라 생각한다.
Hold your breath.
숨을 참아봐.
Eat some Sugar.
설탕을 먹어.
Press your fingers...over your eyeballs.
눈알을 손가락으로 꾹 눌러.
... ... ...
그런데 어쩌면 좋을까. 고스트가 알려주는 방법은 다 미신. 무슨 방법을 써도 어설픈 해골 씨의 딸꾹질은 멈추지 않는다. 물론, 결론은 그림책답다. 아이들은 그림책을 읽으며 좌절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허무맹랑하고 황당하지만 사람을 빵 터지게 만드는 방법으로 딸꾹질을 멈춘 해골 씨 이야기는 상상에 맡기련다.
조용한 교실에서 딸꾹질이 나와 숨을 참던 기억, 아무리 숨을 참고 물을 들이마셔도 딸꾹질이 멈추지 않아 가슴을 치고 발을 동동 구르던 내게도 등을 쓸어주던 엄마, 부러 깜짝 놀라게 하며 도움의 손길을 내밀던 추억의 친구들이 있다. 연락은 끊겼어도 해골 씨 이야기를 보며 떠올려 본 친구들 얼굴. 과거의 시간 어느 공간에서 아직도 과거의 내가 그들과 웃고 떠들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은 그림책의 질감과 닮았다. 해골 씨의 표정, 재밌는 상상력, 추억을 소환하여 잠시나마 사람을 맑게 씻어주는 그림책이 좋다.
참고로 해골씨의 딸꾹질 이야기는 글밥이 적다. 게다 brush one’s teeth 같은 표현만 알면 누구든 해골 씨를 영접하며 힘든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배시시, 웃어볼 수 있다. 웃는 시간이 늘면 진짜 웃을 일이 더 많이 찾아올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