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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희 Sep 18. 2024

내가 사랑한 그림책 Parts) 걱정은 걱정을 낳고

 남편이 늦는다. 전화를 했는데 받지도 않는다. 두세 번 더 걸어보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남겼는데 확인을 안 한다. 길거리에 혼자 쓰러진 걸까. 아무도 없는 길거리에서 심정지라도 온 거면 어떡하지. 초조해진다. 근래 힘든 일이 많았는데 설마 가족을 두고 나쁜 생각을 한 건 아니겠지 조바심이 난다. 밖에 나가 서성이길 20여분. “어, 왜” 남편에게 전화가 온다. 왜 전화를 빨리 안 받느냐고 잔소리를 한바탕 쏟아부으며 남편에게 화를 낸다. 거칠게 획.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린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자책한다. 내 뇌의 회로는 왜 늘 걱정과 불안을 부풀릴까.

 자식 일엔 한 술 더 뜬 모양새가 가관이다. 아이가 약속을 안 지킨다. 우리 아이는 약속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지 못하는구나. 사회생활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대체 어느 직장에서 저렇게 약속을 안 지키는 애를 고용하지? 고립되어 외롭게 살다 잘못되면 안 되는데.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부모가 아이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이어야 아이가 잘 될 확률이 높아진다는데. 나는 엄마 자격도 없는 사람이야. 또르르 눈물. 어느 한구석도 사실과 정합하지 않는 비약이 뇌에서 춤을 춘다.

 Tedd Arnold의 <Parts>

 이 그림책은 아이들이 자기 몸을 관찰하며 느낄법한 온갖 걱정을 재치 있게 표현한 그림책이다. 인간의 걱정 대부분이 얼마나 쓸데없는지 코믹하게 묘사해 보는 재미가 톡톡하다.

I think it was three days ago

I first became aware~

That in my comb were caught a couple

Pieces of my hair.

처음 알게 된 건 세 밤 전이었던 것 같아요.

빗에 머리카락 두 세 가닥이 끼어 있는 거예요.

I stared at them, amazed, and more

Than just a bit appalled

To think that I was only five

And starting to go Bald!

머리카락을 보다 기겁을 했잖아요.

이제 다섯 살인데 대머리가 된다고 생각하니 너무 오싹해요.


 아이가 황당하고 몹쓸 걱정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며 처음에는 나도 그저 웃고 넘어갔다. 그런데 책장을 덮고 시간이 한참 지난 근래 그림책 <Parts>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걱정회로를 돌리는 내 모습이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남들을 웃게 만드는 아이와 너무 흡사했기 때문이다. 이상해 보이는 나의 걱정회로는 물론 처음부터 그리 기형은 아니었을 거다. 본래 부정적인 기질에 살며 겪는 풍파, 관계와 여타 요인들이 함께 작용한 결과물일 터. 문제는 걱정의 순간은 오로지 개인에게 한정된 순간이며, 그 순간 경험하는 사고의 왜곡, 현실에 대한 과잉 해석, 과도한 의미 부여는 그림책 아이가 보여준 두려움과 불안을 낳으며 어지간해서는 쳇바퀴를 벗어나지 못한다.

So all of me is normal.

“그러니까 지금 나는 다 정상이네요. 휴.”


 걱정에 질식하기 일보직전, 아이는 자신이 겪는 과정이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이야기에 안도한다. 하지만 그림책은 이렇게 싱겁게 끝나지 않는다. 그림책을 본 사람이라면 끈덕진 걱정의 속성에 웃음과 동시에 무릎을 쳤을지 모른다. 작가는 걱정하지 마,라는 온기 어린 말보다 사람이 얼마나 걱정에서 벗어나기 어려운가를 자각하게 함으로써 걱정을 내려놓는 법을 일찌감치 배우길 희망했는지도 모르겠다.

 걱정과 불안의 확장은 흔하게 인지오류를 동반한다. 어느 날, 걱정에 휩싸여 불안감을 누르지 못한 나는 다행히 그런 내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이후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물꼬를 틀며 흘러갈 채비를 하는 걱정과 불안이 느껴지면 일단 생각을 멈추는 연습을 했다. 걱정과 불안은 이성보다 감정에 가까워 합리적인 생각을 해보려 노력해도 밀물처럼 밀려오는 부정적인 느낌을 제거하기 어렵다. 하지만 걱정과 불안이 대부분 뿌리 없이 부유하는 왜곡된 인식의 산물이라는 자각은 생각보다 유용하다.

 아내를 모자로 인식했다거나 통제 불가능한 불안과 함께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을 보며 뇌가 저지를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을 했다. 개인의 특정 경험이 사고를 어떻게 장악하는지 주변에서, 그리고 직접 조금이나마 경험해 본 지금으로선 그저 현재에 집중하며 순간순간 타당한 선택을 주체적으로 할 수 있으면 그만이란 생각이다. 한편, 적은 지면에 걱정이란 녀석을 어떻게 이리 그럴싸하게 묘사할 수 있는지 그림책 작가의 재능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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