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어.

by 지희

"나는 상담선생님이 좋아."


학교라면 이를 가는 딸아이가 느닷없이 말해 깜짝 놀랐다. 학교에서 우리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토닥여주는 어른이 있는 줄 몰랐다. 아이가 중학교를 졸업하기 전, 그래도 따뜻한 기억 한 조각 안고 떠날 수 있어 감사했다.

언젠가부터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확연히 늘고 있다. 자신의 감정을 거칠게 드러내며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는 경우도 많지만, 그런 아이들보다 오히려 조용히 무너지는 아이들이 점점 더 눈에 띄어 걱정하는 동료들이 많다. 수업시간에 앉아 있는 게 힘들어 화장실에서 자해를 하는 아이들. 학교식당에서 밥을 못 먹어 점심시간 내내 화장실 안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아이들. 내가 근무하는 학교만 해도 한 달에 한 명 꼴로 자퇴를 하고 있다. 서로에게 너무 큰 상처가 되기에 쉬쉬하지만, 지금까지 근무했던 학교 중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아이가 없었던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내 딸아이가 자살시도를 여러 차례하고 셀 수 없이 자해를 하며 학교에 제대로 다니지 못해 그런 아이들을 위한 제도와 물리적 환경 지원의 한계를 명확하게 알고 있다. 일례로 치료받을 정신병동이 턱없이 부족해 적절한 치료가 거의 불가능하고, 학교엔 이런 아이들을 위한 전문 인력이 상담교사와 보건 교사 외엔 없다. 사실 생활을 온전히 영위하기 힘든 아이들 외에도 소위 ‘라때’와 달리 자기만 아는 애들, 자기 자식만 아는 부모들이 많아 담임교사가 별 탈 없이 일 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 실정이니 내 새끼한테 특별한 관심 좀 쏟아 달라 말할 염치도 없고 아이를 이해 못 한다고 서운해해서도 안 된다는 게 개인적인 결론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막막한 심정에 ‘다급한 위기 해결에서부터 근본적인 심리 상담까지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곳에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부모가 병상이 있는 정신병원을 찾아 입원시킬 수밖에 없다는 고구마 같은 대답만 들었고, 다른 상담센터, 병원도 속 시원한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공감해 주고 격려해 주는 어른들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

공부 잘하고 예의 바른 아이들은 스스로 빛을 내기에 어디서든 주목받고 사랑받는다. 어떤 부모든 내 자식이 그런 아이로 성장하길 바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엔 공교롭게도 모나고 부족해 손길이 더 필요한 아이들이 훨씬 많고, 개중 운 좋은 아이들은 마음이란 걸 써준 어른을 만나 삶을 견디며 지탱한다. 고립된 아이와 이 세상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그 ‘어른’을 우리 아이가 만났다니 감사할 따름이다.

졸업식에 갔다 조퇴하고 바로 오겠다는 아이가 오늘 졸업식을 끝까지 마치고 상담선생님께 감사인사를 하러 갔다 들었다. 담임 선생님도 신경 많이 쓰셨으니 감사하다고 인사드리라 하니 고분고분 그러겠노라 했다. 어제까지 자신에게 화를 낸 담임 선생님이 갱년기라며 폄훼하던 아이가 하루 새 마음을 가다듬고 담임 선생님께 인사를 드린 건, 사실 상담선생님의 노고다. 덕분에 부족한 우리 아이가 조금이나마 성장한 것이다. 사실 상담교사는 모든 힘든 아이들의 마음을 돌봄에도 담임교사가 아니기에 졸업식 같은 어떤 ‘특별한 날’ 학교에서 소외되기 일쑤다.


"선생님, 우리 미나, 덕분에 졸업해요. 얼마 전에 자긴 상담 선생님이 제일 좋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미나가 학교에 좋아하는 어른이 있어서 참 감사했습니다. 우리 미나 이야기 잘 들어주시고 좋은 말씀도 많이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3년간 가장 많이 힘든 시간 보내신 분이 어머니시잖아요. 오늘 미나가 단상에서 졸업장 받는 데 정말 울컥하더라구요. 미나가 오늘 지영이랑 같이 졸업식 끝나고 상담실 들러서 인사하고 가서 고마웠어요. 오늘 졸업하는 한 관문을 넘도록 마음을 쓰신 어머니께 제가 축하를 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상담 선생님의 메시지가 그간 힘들었던 나의 마음을 달래주는 듯했다. 이렇게 우리 딸의 마음을 보듬어 줬구나 싶어 주책맞게 또다시 눈물이 흘렀다.


시그리드 누네즈의 장편소설 ‘어떻게 지내요’에 나오는 한 구절로 남모르는 곳에서 애쓰는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


누가 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헨리 제임스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데,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했다. 고통받는 사람을 보면서 내게도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 생각하는 사람과 내게는 절대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 생각하는 사람. 첫 번째 유형의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견디며 살고,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삶을 지옥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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