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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Aug 10. 2023

온전한 나로 살아가는 이야기

무조건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라

인생은 나로부터 바라봐야 하며, 나보다 중요한 관계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을 꼽으라면 언제일까? 죽기 전 인생을 돌아볼 때 달력의 한 면처럼 떼어내고 싶은 년도가 있다면 언제일까? 세월이 흘러도 이때밖에 생각나지 않을 것이다.

 바로 2011년 대학교 새내기 20살 때다. 당시 나는 누구나 그렇듯, 고3의 해방감에 부풀어 올라 자유로운 대학생활을 꿈꾸고 있었다. 맨날 보던 고등학교 친구들과는 달리 대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이는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비쳐야 한다는 강박이 됐다. 그렇게 사는 게 맞다고 여겼다. 심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나 스스로를 갉아먹으면서까지 남에게 잘 보이려고 애썼다. 특히 우리 과는 유독 군기가 센 학과였는데, 선배들에게 어떻게든 잘 보이려 주말을 늘 반납해야 했으며 수업이 끝나면 술을 먹으러 다니기 바빴다. 단체 뒤풀이나 행사에 빠지는 게 그땐 왜 그토록 두려웠을까? 좋아하지도 않던 술을 밤마다 억지로 마시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 왜 그렇게 허무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그 선배라고 하는 사람들조차 어쩌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사람들인데 그땐 왜 그렇게 하늘같이 보였는지. 당연히 그때 투자했던 내 시간과 돈은 의미 없이 새하얗게 사라졌고 지금은 선배들 그 누구와도 연락이 닿질 않는다. 어디서 뭘 하는지 궁금하지도 않다. 잘 살고 있다 하더라도 질투나 시샘조차도 없다. 아예 관심자체가 없으니까.

 그때를 가장 후회하는 날로 꼽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바로 내 인생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내 색깔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데 뭐가 아쉬워서 남의 눈에 이끌려 다녔나? 이처럼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서 늘 자유롭지 못하다. 자유롭다고 스스로 자칭하는 사람들은 회사에서나 학교에서나 행동이 버릇없다고 욕먹기 일쑤다. 동방예의지국유교의 나라라고 치부하기엔 이 잘난 것 하나 없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말 밖에 안된다. 눈치 보며 하고 싶은 것을 못하는 것보다 이게 백배 천배 더 나음을 왜 사람들은 모르는 걸까. 인생은 딱 한 번뿐인데 말이다. 죽어서 환생을 한다 해도 사람이 아닌 개구리로 태어날 수도 있는데 하고 싶은 걸 못하고 죽으면 얼마나 억울한가.  타인에게 피해를 안주는 선에서 그 시선에서 자유로워야만 내 인생을 만들어갈 수 있다.


 우리가 사진을 찍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추억으로 남기기 위함이다. 시간이 흘러 우리 뇌가 그때의 소중하고 행복했던 기억을 서서히 잊어갈 때쯤 사진을 통해 다시 행복을 꺼내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진을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찍는다. 근사한 호텔에 가야 하고, 오마카세를 먹어야 하며, 외제차를 몰아야 한다.  골프 라운딩을 하러 가서는 여러 번 온 것처럼 보이기 위해 화장실에서 2~3번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그러고는 2주에 한 번씩 아껴두었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이유는 딱 하나다. 남들에게 부자처럼, 성공한 사람처럼, 멋있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그 인정받는 기준은 좋아요와 댓글 개수로 삼는다.

 내가 진정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행복한 순간 앞에서 눈으로 담아야 한다.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가서는  내 눈으로, 내 귀로 직접 보고 들어야 한다. 더 행복감을 느끼고 기억에도 더 오래간다. 그까지 힘들게 돈 주고 가서 영상을 찍으며 폰 영상에 담긴 가수를 볼 이유가 없다. 시간낭비, 돈낭비다.

 내 눈에 보이는 걸 믿자. 타인의 눈에서 자유로워지자. 한결 마음이 편해짐을 느낄 것이다. 점심시간에 혼밥을 하러 식당에 한번 가보자. 처음에는 부끄러울지라도 정말 놀라운 사실은 주변 사람들 그 아무도 본인을 신경 쓰지 않는다. 남을 의식하며 사는 것은 가짜 인생이다. 타인이 눌러주는 좋아요는 진짜 관심이 아닌 습관적인 의미 없는 클릭일 뿐이며 모두 다 신기루다. 정작 그들은 내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누구와 함께 했는지 관심이 없다. 내 사진과 영상에 쓰는 시간은 길어야 5초다.

 이 모든 걸 느낀 계기가 있었다. 어느 날 내가 팔로우한 명단을 보다 이름 석자가 기억이 안나는 누군가를 한참 보며 이건 아니다 싶었다. 회사도 똑같다. 평판에 목숨 걸고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만 몰두하면 정작 진짜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만다. 회식에 불려 다니며, 윗사람한테 아부하는 것은 당장은 좋게 보일지라도 정작 시간이 흘러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회사에 다니면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겠지’ ‘이 옷과 신발을 신고 사진을 찍으면 멋져 보이겠지’

 ‘나’라는 존재자체가 퇴색 돼버린, 어쩌면 본인의 인생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생각이다.

  남들이 이 휴가철에 해외여행을 간다고 나도 가야 하는가? 안 가면 뒤쳐진 느낌이 드는가? 친한 형은 34살이 넘도록 아직 한 번도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고 강릉이나 부산만 가 봤다고 한다. 내가 그 이유를 묻자, 해외여행 가는 남들이 부러웠지만 본인은 부산, 강릉을 그 누구보다 좋아하고 그 순간 행복했다고 한다. 행복했다면 남 눈치 보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그곳에 한번 더 가면 된다. 난 집에서 쉬는 걸 좋아한다면 그냥 집에서 쉬면 된다. 아무도 신경 안 쓴다.

 

 우리는 오로지 나의 기준에 맞추어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누가 뭐라 하든 내 인생에만 초집중하는 삶을 사는 것이 오히려 개성이 더 빛나고, 유니크하고 대체불가능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잃지 말아야 한다.

 나의 기준에 맞춰 살아갈 때 피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소문이다.  “누가 뭘 했대” “걔는 이래서 이혼을 했대” “진짜 성격이 별로래” “이렇게 하면 다 돈을 번대” 등 우리는 남의 입에서 수없이 검증되지 않은 말들을 듣고 산다. 진짜는 그 소문의 본인만 알고 있다. 소문은 대체로 늘 과대평가된다. 이는 소문을 퍼트리는 그 순간 그들만의 재미나 분위기를 올리기 위해 그럴 수도 있고, 은연중 본인이 싫어하는 소문 당사자에 대한 악의를 드러낸 일수도 있다. 그 소문을 믿는 자, 퍼트리는 자 모두에게 실익이 단 1도 없다는 사실을 꼭 명심해야 한다. 거기에 개입되는 순간 시간이 지나 화살은 나에게 온다. 늘 말 수를 줄이고 내 눈에 보이는 것만 믿자.

 몇 년 전 회사를 다닐 때에 주말에 보통 뭘 하냐는 한 선배의 말에 영어공부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말은 곧 다른 사람에게 ”토익을 공부한다더라 “ ”토익을 몇 점 더 올리겠다더라 “ “주말마다 시험을 보러 다닌다더라” 로 퍼져서 정작 최종적으로 내 귀에 들어온 말은 “쟤 이직준비한대”였다. 충격적이었다.

 

 온전히 나로 살아가는 데 시간과 돈을 초집중하자. 경제적 자유를 이룬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돈과 시간 이 두 가지다. 극단적으로 친구도, 가족도 모두 배신할 수 있지만,  이 둘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늘리는 삶의 태도만이 내 삶의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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