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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Nov 03. 2023

어떻게 삶의 위로를 얻는가

시작이 반이고 멀리 왔지

누구나 삶이 힘들 때가 있다.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아무리 긍정적인 노홍철마저 본인의 형과 비교했을 때 ‘나는 왜 형보다 공부도 못하고 잘하는 게 없을까?’ 라며 비관하는 나날이 있었다. 본인은 인생의 최고의 무기 ‘타고난 성격’을 가진 것도 모른 채.

 이렇듯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누군가도 원했던 방향으로 삶이 풀리지 않아 힘들 때가 있다.

 각자 그 힘듦 속에서 어떻게 그 힘듦을 최단시간 동안 벗어나는지가 어쩌면 우리가 얼마나 더 성장하고 나아갈 수 있는가를 결정한다.

 누군가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운동을 하고, 누군가는 책을 읽으며 삶에 위로를 받는다. 또 다른 이는 가족에게 조언을 구한다.


 나는 그럼 힘들 때 어떻게 삶에 위로를 받을까?

 가장 먼저 나와 최대한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찾는다. 보통은 가장 접근성이 뛰어난 인터넷을 검색한다. 절대 다른 사람의 불행을 통해 내 인생을 위안 삼으려는 것이 아니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이들은 어떻게 문제를 헤쳐나갔냐를 보고 싶은 것이다.

 가령, 취업준비에 매번 실패하고 좌절하고 있을 때에는 네이버에 <취준>을 검색했다. 취업준비의 준말이다. 그러면 수많은 개인블로그가 등장한다. 그들의 일상기록을 보며 나와 똑같은 사람도 참 많이 봤다. 똑같은 시간 대의 기업면접을 보고, 똑같이 좋지 않은 결과를 맞이 한 글쓴이의 블로그 글은 충격적이었다. 나와 정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정말 그 누구보다 가고 싶었던 기업이었기에 좌절하고 있었는데 그는 별로 개의치 않는 듯이 '누가 이기나 해보자' 하며 금세 다른 기업의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다고 블로그에 적어둔 것이 아닌가.

 또 어떤 이는 바람을 쐬러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왔다고 한다. 기분이 한결 좋아졌단다. 인생에는 다양한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다. 하나의 결과에도 우리는 각자 다른 생각과 행동을 취하기 때문에 나와 비슷한 이를 만나는 것은 나만의 세계에 갇혀 있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이겨낸다는 생각도 들었다.

 현재는 위로받기 위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엿본다기보다는 참고로만 하고 책을 주로 읽는다. 책은 '검증된 지혜' 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수많은 정보가 있지만 그중 정확하지 않은 정보도 많다.

 또 다른 방법은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 물어본다. 혹은 전문가에게 물어본다. 전문가가 아니어도 된다. 주변에 나보다 연륜이 높은 사람에게 편하게 조언을 구한다. 혼자 낑낑대며 해결하려 하거나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방법이다. 자살방지센터에 가도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절대 피해를 끼치거나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나는 형들이나, 삼촌 뻘 되는 사람들과 술자리를 가지거나 저녁을 먹을 때 항상 하는 질문이 두 개 있다. 먼저 지금 내 나이로 돌아간다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하겠는가? 그다음은 그때 못해서 지금 제일 후회되는 것이 무엇인가?  이 두 가지다. 대체로 내 주변사람들은 재테크 얘기를 많이 한다. 부동산이나, 코인, 주식 그때~할걸. 껄무새가 된다. 자산증식 말고 기억에 남는 대답은 많이 없었다. 하지만 친한 형은 좀 다르게 말했다. '걱정한 것'. 별것도 아닌 것들에 신경 쓰고 걱정한 것이 가장 후회된다고 했다. 지나고 보면 진짜 다 쓸데없고, 부질없는 것들이었는데 그때는 목숨같이 생각했던 것. 인간관계나, 상사와의 대인관계, 친구, 술, 여자 등. 이렇게 나보다 인생의 경험이 많은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면 쉽게 삶의 위로를 얻을 수 있다. 설령 그것이 정답이 아닐지라도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는 더 양질의 해답을 얻는다. 어쨌거나 이 분도 나와 같은 경험을 이미 과거에 해 본사람이고, 지금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는 것이기에 나에게 이득이 되는 건 100% 확실하다. 나는 시간상 아직 저기까지 가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알 수 없다.

 마지막으로는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에서 생각을 바꿔보는 것이다. 즉 무의식 전환이다. 예를 들어보자. ‘나 주제에 어떻게 이런 회사를 들어가겠어’ ‘나 주제에 어떻게 저 여자와 데이트를 하겠어’라고 생각했던 내가 당연히 할 수 있는 것. ‘오직 나라서 할 수 있다’고 마음을 먹는 것이다. 한 사람의 미래는 사실 무의식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무조건 성공할 수 있다. 자기 암시, 자기 확언은 진짜 과학이다.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되뇌면 진짜 언젠가는 할 수 있다. 무조건.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다른 사람들이 그걸 원하지 않아 해 경쟁자가 크게 없을 수도 있고, 내가 생각한 만큼 다른 사람들은 노력과 꾸준함이 없어 쉽게 포기할 수도 있다. 만약 내가 무의식을 전환했는데 그것을 이루지 못했다면 그건 나의 간절함이 부족해서 그렇다. 진짜 삶이 힘든 순간에도 '나는 언젠가 된다'라고 나 스스로를 신뢰하고 되뇐다. 그러면 다음날 진짜 무언가 더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이처럼 삶의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는 주변을 바꾸려고 하면 안 된다. 통제불가능한 것에 힘을 쏟지 않고 나를 바꿔나가면 된다. 내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진짜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된다.

 

 삶의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는 것은 지금 매우 잘 살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 세상에 아무 생각 없이 인생을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는가.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서 지하철을 타면 앉을자리가 없다. 나는 처음 이렇게 생각했다.

 '와, 진짜 사람들 열심히 산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루를 일찍 시작하지? 정말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때 일어나는 사람도 많다. 그 지하철의 사람들이 다 올바른 직장이나 사업체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어디 속아서 다단계를 하고 있을 수도 있고, 보이스피싱을 하러, 아니면 사기를 치러 아침 일찍 나가는 걸 수도 있다. 아니면 단순히 그냥 놀러 가기 위해 일찍 일어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냥 일찍 일어나냐가 아니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아침 일찍 일어나냐가 진짜 성공을 판가름 짓는다.


 이처럼 삶의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게 있고, 무언가 확실하게 목표하고 있는 게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잘 안되고 있기 때문에 위로가 필요한 것이다. 고민과 성찰을 통해 우리는 더 목표한 바에 한걸음 다가서고, 삶의 정답을 찾을 수 있다. 시작이 반이고 멀리 왔다.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날 때나, 사람들과 스몰톡을 할 때 이런 질문을 많이 받고 물어봤다. 뭐 좋아해요? 시간 나면 주로 무엇을 하나요? 취미가 뭔가요?

 이럴 때마다 확실하게 말하지 않고 그냥 없다고 하는 사람, 그냥 TV보고, 자고, 원론적인 답변만 늘어놓는 사람들은 정말 매력이 없다. 아무리 특이하고 이상할지라도 본인만의 취미 가령, 로봇을 조립한다거나, 피규어를 모은다거나. 나만의 색깔이 있는 사람이 고민도 하고, 스트레스도 받고, 위로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삶의 위로는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다시 강조하면 시작이 반이고 멀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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