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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Nov 10. 2023

개인주의자로 살아간다는 것

관계 속에서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가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책이 인기다. 사람은 이제 철저히 개인주의, 핵개인의 시대로 간다는 거다. 가령, 명절 때 당연 각 부모님 댁에 방문하는 것이 도리이나,

”저는 그때 시간이 안돼 그전 주에 갔다 오려고요“

 “저는 그때 일본 여행 가려고요“

라고 얘기하는 것이 우리는 이제 자연스럽다. 그때 여행을 간다고 해서 그 아무도 ‘부모님에 대한 도리도 없는 배은망덕한 자식’이라는 생각을 가지지 않는다. 개인주의를 넘어선 핵개인이다.

이 책은 개인주의의 시발점이 된 책으로, 어떤 관계를 이끌어가야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사는지 말해준다.

처음에 부장판사가 쓴 책이라 하여 자연스레 손이 갔다. 판사가 글을 쓴다는 게 워낙 드물기도 하고 관계에 회의를 느끼는 요즘 구미가 당기는 제목이라 바로 읽게 됐다. 직위로 보나 명성으로 보나 사회의 가장 높은 집단의 일원이 바라보는 개인주의적 현시대의 삶, 위선, 불공정, 불평등, 행복이 어떻게 그에게 해석이 될지알고 싶었다.

 판사로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첫머리부터 저자는 인간에 대한 혐오가 자리한다고 말한다. 워낙 성향자체가 소시민적이기도 하고, 혼자 사유하는 시간만이 오로지 본인의 행복을 최대한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저자의 말에 크게 공감했다.

 사실 한국사회는 이런 성향을 크게 환대하지 않는다. 사회생활에 있어 관계를 형성하고 지키는 것은 어쩌면내 밥그릇을 지키는 것과 같다. 내가 속한 조직에서 인정받아 승진을 하고, 조직의 결속력과 가치를 더 높여 조직에 들어가기 위한 진입장벽을 높이는 거다. 이 집단주의 사회는 일을 잘하고 관계를 잘 만들어 더 많은 돈을 버는 개개인에게 선순환적 역할을 하지만, 안에 속한 대부분은 불행하다.

 미생의 장그래를 봐도 알 수 있다. 아무리 운과 실력이 출중해 회사에서 좋은 성과를 얻어도 <고졸 계약직>이라는 신분이 그의 한계를 명백하게 규정하지 않나.   학벌이 좋은 사람이 우수하다고 평가하고, 더 높은 고과를 주고, 지방대사람을 낙오자 취급한다. 저자는 여기서 탁월함에 대해 얘기한다. 사실 최고 엘리트집단, 피라미드 계급 속 가장 우위에 있는 정치계, 법조계에서도 각 분야의 탁월함을 보이는 이들은 알고 보면 학벌과 상관없다고. 지방대 출신도 많으며 성과는 절대적으로 노력과, 각 분야의 탁월함에 비례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각자 가진 집안, 학벌, 부, 수치화할 수 있는 것을 기준으로 계급을 나누기엔 삶에는  변수가 많다. 관계에서 양극화를 조장하는 숫자가 이래서 무섭다.


 설거지 알바가 인기다. 그릇에는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으니 이 알바가 인기가 많다고 한다.

 집단주의 속 관계는 위에서 언급한 숫자 말고도 눈치도 잘 봐야 하고, 체면, 옷차림, 열등감, 질투, 위계질서등 온갖 관행들까지 모두 신경 써야 한다. 이외 수도 없이 많다. 이 모든 것에서 하나라도 어긋날 시 조직에서 미움을 받고, 문제아 취급을 하는 것이 현 대한민국 집단 사회의 현주소다.

 나는 실제로 2018년 첫 회사 근무 당시에 카라가 없는 니트를 입었다고 팀장에게 1시간 반동안 설교당한 적이 있다. 설교라기보다는 반 협박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지만 그때는 그랬다. 불과 5년 전 일이다.

 이처럼 시간이 흐르며 집단주의의 문화도 변화하나, 맹점은 가장 근본적인 집단주의의 속성이 불변한다는 것에 있다.

 이 속성은 타인과의 관계가 나의 기호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내 의사와 관계없이 강요된다는 것.

 가기 싫은 회식에 강제로 참여했다고 치자. 그때 마시는 술과 음식이 맛있을까? 혼자 집에서 마시는 맥주 한잔이 훨씬 더 편안하고 달콤하게 여겨질 거다. 이 근본적인 집단주의의 속성이 바뀌질 않는데 어떻게 우리가행복할 수 있을까?

그래서 요즘 2030에게 뜨는 것이 디지털노마드다.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관계나 장소에 상관하지 않고 자유롭게 이동하며 업무를 하는 거다. 원래 일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혼자 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 함께 일하는 순간 각자의 이해관계, 업무스타일로 지치기 마련이다.

 집단주의의 또 다른 특징은 성격인데 조직에서는 아무래도 둥근 성격의 외향성을 띄는 사람이 잘 적응하고 주목받는다. 우리는 성격과 성향 즉, 외향성,내향성을 나누는 데 있어 내향적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여긴다.

 가령 MBTI를 물을 때 외향성의 E와 내향성의 I를 동등하게 대하고, 공감을 잘하는 F와 다소 현실적인 T의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거다.

 ‘너 T야?’ ‘T발 너 C야?’라고 묻는 조롱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개인주의자 선언. 개인주의를 표방해도 결국 우리는 사람이다. 혼자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다. 저자는 힘겹게 공부하는 젊은이가 잘못도 없는데, 부잣집 사모님 앞에서 무릎 꿇는 모습을 보며 연민을 느끼고 통탄스러워한다.

 돈이나 명예, 조직 이 부수적인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없다. 돈을 벌어야 나와 내 가족을 지킨다. 그러려면 대학에 가야 하고, 취업경쟁에 내몰려야 하고, 나아가 직장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날 성품을 가져야 한다.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이 경쟁 속에서 누구나 자기 아픔이 있다.

 우리는 이 자본주의 사회를 용인하면서도, 뒤에서 서로를 돌보고 보듬어줘야 한다. 누군가를 돕기 위해,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우리는 성공이라는 하나의 목표로 나아가야 한다.


이 책을 읽고 생각한다. 자녀 없이 50억이 있는 할아버지가 혼자 요양원에서 노후를 보내면 행복할까? 이 많은 돈은 어디다 쓸 것인가?

 돈은 얼마 없어 크게 여유롭진 못해도 자녀들과 옹기종기 집에서 함께 맛있는 걸 먹으며 보듬어주는 삶이 훨씬 더 행복할 거다.


 관계에서 아파하면서도 행복하자. 상처받아도, 무한경쟁에 내몰려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 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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