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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Nov 28. 2023

의대증원에 의사들이 난리난 이유

진짜 의사를 빙의해 대변해 본다

인생을 살며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가 뭘까?

가치관? 취향? 삶의 질? 부와 명예? 다 틀렸다. 다름 아닌 바로 '건강'이다. 건강 없이는 모든 걸 잃는다. 죽어서 돈 들고 갈건가? 아니다. 이에 정부는 의료, 교육, 주거 등 국민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 기본적 요건을 책임지고 보장할 의무가 있다. 정치인들이 늘 선거 때 공약으로 이것부터 건드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처럼 우리 삶의 가장 근간이 되는 의료에 요즘 가장 핫한 이슈는 단연 의대증원이다. 이전 편은 형의 입장만 대변해 다소 색안경을 끼고 이 문제를 접한 것이 사실이다. 듣고 싶은 얘기만 듣고 사실 정부와 국민의 편만 들었다. 이 문제와 관련, 이번에는 정부의 입장이 아닌 진짜 의사의 입장이 되어 이야기해보려 한다.

지금부터 내가 잠깐동안 의사가 되어 한번 빙의해 보겠다.


-의사 홍그리:

 영국의 NHS시스템이라고 들어본 적 있는가? 영국의 국영 의료시스템으로 전 국민에게 무상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정책이다. 영국은 이 제도 아래 한때 복지 롤모델이자 전 세계의 자랑이었다. 캐나다, 호주, 싱가포르 등 이 선진국들도 모두 영국의 이 의료시스템을 따라 했다.

 지금은 어떨까? 700만 명이 넘는 환자들이 진료 웨이팅을 하고, 12만 명이 진료를 못해서 응급 상황에서 죽는다. 영국을 포함 이 국가들 모두 현재 진료가 거의 마비된 상황이다. 어쩌다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 걸까. 영국 전공의의 초봉은 23년 기준 2만 9천 파운드, 시급으로 치면 한화 2만 3천 원이다. 영국의 의사들은 영국에 남아있길 꺼려한다. 하루빨리 더 나은 급여와 복지를 위해 영국을 떠나고 있다. 직업에 물론 귀천은 없다지만, 몇십 년 동안 공부를 했는데 나는 시급 2만 3천 원 받고, 웨이트리스 아르바이트생이 1만 9천 원 받고 이게 과연 정당하고 공정한 사회라 할 수 있을까. 의사와 웨이트리스의 임금차이가 시급 3천 원이라니.

 이처럼 그 누구도 영국에서 의사를 하기 싫어하니 영국 국민들은 아파 죽을 것 같은 순간에도 진료웨이팅을 하며 기다릴 수밖에 없는 판국이다.

 아, 물론 민간 의료시스템도 있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비싼 가격에 국민들은 부담스러워 응급상황에서도 그대로 방치된다. 일부 상류층을 제외하고 사실상 무용지물인 것이다. 우리나라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5살 아기의 응급상황에서 응급실을 4번 돌다 결국 골든타임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심지어 서울이었다고 한다. 우리는 지근 영국의 뒤를 밟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의사의 공무원화로 가고 있는 영국. 이 모든 건 주 정부의 무상의료에서 벌어진 일이다. 의대증원은 어쩌면총액계약제를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밑그림이라 생각한다.

 총액계약제란, 모든 보험항목에 해당하는 금액을 사전에 결정하는 거다. 예를 들면 진료비가 보험비를 초과했든, 미달했든 그냥 환자는 정해진 금액만 내는 것이다. 의사들의 임금은 당연히 삭감될 것이고, 의사라는 직업자체 매력도는 더 떨어져 아무도 의사를 하지 않으려 할 거다. 이로써 의대증원은 결국 영국의 뒤를 밟아가는 발판이고 우리도 머지않아 진료를 보는 데 웨이팅을 걸어야 하는 날이 오리라 짐작한다.

 단순히 의사의 월급이 삭감된다고 이러는 것이 아니다. 의사집단에게도 피해가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앞서 말한 국민이다. 정당하고 편리한 지금 같은 의료서비스를 더 이상 누리지 못할 날이 분명히 온다.  

 이 전 글에서 언급했듯 사실 기피학과 수가개선을 안 하고 명백한 해결책 없이 수요공급논리로 증원을 하는것까지는 그래, 그렇다 치자. 적당한 수의 증원도 아닌 지금 현실(연 3,000명)의 2배를 만든다는 정부의 의견은 의사 죽이기 정책과 무엇이 다른가?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해서 N 수를 결정하고 시스템을 정비해야지통합, 화합을 장려하는 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의대증원해서 의사를 2배 늘렸다 치자. 가장 피해받는 건 국민이다.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저출산 1위, 초고령화사회 1위, 이 나라는 지금 세계에서 전례 없는 기형구조로 변하고 있다. 서울 경기에 집약된 인프라, 노인밖에 없는 지방,이 현실 속에  단순 수요와 공급논리로 빚어진 이 통계놀이는 과연 정당하다고 볼 수 있을까?

 지금의 2030이 국민연금을 내고 그것을 못 돌려받는다는 건 이미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안다. 나도 세금을 내면서 이미 인지하고 있다. 물가는 계속 오르고, 세금을 낼 국민은 없고. 근데 이 와중에 의대를 증원하는 건국민들 죽으라는 거다. 일반 월급쟁이가 건강보험료로기존 2배 이상 뜯겨봐야 그때 와서 피부로 와닿아 후회를 하려나? 그땐 이미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만약 지출도 늘릴 생각이 없고, 의사를 늘린다는 걸 유지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정부가 나중에 내밀 수 있는 카드는 딱 하나뿐이다. 바로 총액계약제. 총액계약제는 지금처럼 진료를 볼 수 없는 환경에 놓여 모든 불편함은 국민에게로 간다.

 사실 총액계약제는 아무도 의사를 하기 싫어하는 현 영국의 상황일 때에만 성립된다. 영국의 의사가 왜 영국을 떠날까? 너무 단순하다. 돈을 안 주기 때문이다. 의사라고 해서 돈을 싫어할 이유는 전혀 없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물어보자. 그럼 국민 한 명당 1명의 주치의를 원하는가. 이미 엄청난 고퀄리티의 의료혜택을누리고 있는 와중에 모든 의사가 슈바이처가 되란 법은 없지 않은가.

 검사를 예로 들어보자. 검사는 지방 내려가도 힘이 있다. 힘이 있어서 지방법원에서 떵떵거리면서 잘만 산다. 근데 힘없는 의사들은 박봉에, 지방행에, 끝없는 직업적 매력도 추락이 일어난다면 이 사회가 어떻게 되겠나. 오히려 지금 의사가 가진 힘이 적절히 배분되어 있는 거라면? 대한민국에 가장 걸맞게 합당한 수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똑같이 생각해 보라. 우리나라 인구대비 검사가 1천 명, 국회의원이 1천 명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나.


 얼마 전 올리브쌤의 어머니와 함께 제주도에서 시간을 보내는 영상을 우연히 봤다. 올리브쌤의 어머니는 폐 검사를 살면서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으셨다고 한다. 원인 모를 기침만 계속하시는 상황에서 한국에서는 전화예약도 없이 토요일 오전에 동네병원을 갈 수 있다는 올리브쌤의 말을 듣고 놀란다. 왜냐면 텍사스에서는 전화 한번 하고 2주나 기다려야 하니까. 영국의진료웨이팅과 다를 바 없다. 심지어 미국은 더하다. 도박을 해서 파산하는 것이 아니라 병 한번 잘못 걸려서 파산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진료비가 비싸다.

 약국이랑 같은 건물이라 또 놀라시고, X-RAY 결과가 바로 나와 또 놀라시고, 비급여인데도 27달러밖에 하지 않는 진료비에 또 놀라시고. 어머님뿐 아니라 전 세계인이 찬사하는 한국 의료체계다.

 내가 미국에 있을 때도, 감기에 걸리면 한국에서는 병원을 바로 간다고 하니 친구들이 정말 놀라워했다. 미국에서는 감기정도면 무조건 타이레놀이고, 병원에는

(농담 삼아) 팔다리가 잘려야만이 가는 곳이라고 한다. 특히 미국은 영국이나 타 국가와 또 다른 것이, 민영보험 체계다. 철저한 자본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좋은 직장을 가지고 있으면 더 저렴한 보험료를 내고, 자영업이나 직업이 변변치 않는 사람에게는 가입조건이 더 까다롭고, 더 비싼 보험료를 받는다. 일반 서민은 그냥 병에 걸리면 치료할 방법이 없다. 꼭 의료시스템뿐만 아니라 미국은 정. 말.로 돈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 배가고프면 길거리에서 그냥 굶어 죽어야 하는 나라다. 엘에이나 뉴욕 대도시에 기회가 된다면 직접 보시길 바란다. 그런 사람이 적지 않게 있다. 실제로 자본주의는 이토록 잔인하다.

  

 의대증원은 의사를 공공재로 여기는 것과 같다. 이 영상에 나오는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대한민국의 의료서비스를 우리는 평생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의사는 지금도 많다. 지금 집 밖에 한번 나가보자. 건물 하나에 동네의원 없는 건물이 어디 있나? 큰 병원은 아닐지라도 네이버지도에 병원만 검색해도 5km 근방에 수도 없이 많다. 진짜 중요한 건 의사가 없는 게 아니고 필수과 의사가 없는 것이다. 필수과 의사를 살리는 정책은 생각만 하면 차고 넘친다. 대한민국은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도둑놈이 많은 것이다. 수요공급논리를 근거로 통계놀이를 일삼는 정부는 명백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왜 정부와 국민들은 단순히 의사집단의 밥그릇만 챙긴다고 생각하는가? 진짜 의사입장에서 생각을 안 해봤기 때문이다. 호의는 권리가 아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사실 당연한 게 아니다. 오늘도 열심히 환자를 위해 일하고 있는 의사집단을 집단이기주의로 몰아세워 카르텔화 해버리는 정부. 의사도 의사이기전에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잊지 않길 바란다.

 비정상의 정상화의 기준은 무엇인지에 따라 얼마든지달라질 수 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로의사와 정부는 현재 서로의 의견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대화와 타협이 결여된 일방적인 정책공약시행은 그것이 곧 공산주의고 국민을 파멸로 이끄는 것이다. 의사와 정부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당면한 이 거대한 사회문제에 맞서야 한다.


이번엔 의사의 입장에서 한번 빙의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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