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몰락에 대한 소고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를 떠올려보자. 모두가 메시를 꼽는다. 메시의 국적은 아르헨티나다. 축구선수의 가장 마지막 꿈, 월드컵 우승을 이뤄낸 메시는 그 누구보다 지금 행복하다. 침대에서까지 유니폼과 컵을 안고 있는 아래 사진 속 메시를 보며 그의 깊은 애국심과 국가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사진에 그대로 드러난다.
그런데 메시는 진짜 지금 아르헨티나의 사정을 들여다봤을 때 과연 조국을 자랑스러워할까?
아르헨티나는 지구본을 돌려보면 알 수 있듯, 경도와 위도기준 대한민국과 물리적 거리를 포함해 시간, 계절 모두 정확히 정반대의 있는 국가다. 따라서 우리에겐 다소 생소할 수 있다. 중남미에서 브라질 다음으로 영토가 넓고, 중남미에서 유일하게 전 국민의 90%가 백인이다. 백인의 후손이라 중남미의 유럽이라 불리며그들은 이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중남미 사람들은 이런 아르헨티나 사람들을 건방지고 거만하다고 무시하고, 그들은 또 중남미 사람들을 무시한다.
언어도 조금 다르다. 같은 스페인어를 쓰지만 사실상 아르헨티나의 스페인어는 동사변형 체계를 포함해 단어도 조금 다르다. 너를 얘기하는 스페인어의 ‘Tú'도 ’Vos'라고 한다. 억양도 원어민을 비교해 보면 노래 부르듯 박자와 음을 타면서 말한다. 아르헨티나는 파라과이와 우루과이, 브라질과 메리코수르(MERCOSUR)라는 경제 공동체를 이끌고 있다. 이처럼 언어, 문화, 경제 모든 것이 중남미 타 국가들과 달리 독자적인 노선을 취하고 있다.
이런 아르헨티나 경제는 현재 무너져내려 IMF의 구제금융을 받고 있다. 과거에서부터 7차례나 받았고, 당장내년부터 IMF에 상환 해야 할 돈만 440억 달러(한화 58조 원)이다.
이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듯, 아르헨티나는 전 세계 국가들 중, IMF에서 가장 많은 돈을 빌렸다. 중요한 건 상환해야 할 화폐가 아르헨티나 페소가 아닌 달러라는거다. 이를 갚을 능력도, 여력도 없는 국가로 전락했다. 원래 아르헨티나는 이렇게 가난했던 걸까?
믿기 힘들겠지만 아르헨티나는 과거 20세기 초반 세계 5대 경제부국에 속했다. 남미에서 최초로 지하철을개통한 국가다. 소, 돼지 축산업을 비롯, 1차 산업의 발달로 풍부한 자원과 내수경제로 탄탄한 경제를 이끌었다. 현재 대한민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아르헨티나의 ‘리튬’을 채굴하려 안간힘을 쓰는 자체만 봐도 아르헨티나는 자원강국이다. 리튬은 ‘하얀 석유’라고 불리며 2차 전지, 신재생에너지, 친환경 모든 산업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원료다. 아르헨티나는 전 세계에서 리튬을 55%나 독점생산한다. 곡물자급률은 100%가 넘고 우스갯소리로 소고기와 콩만 팔아도 국민 전체를 먹여 살릴 수 있는 나라다. 이처럼 유일하게 아르헨티나가 기댈 수 있는 것이 풍부한 자원이다. 직접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아르헨티나의 소고기는 레스토랑에서 먹어도 한화 1만원~2만 원 정도니 뭐. 20세기 1차, 2차 세계대전 때에도 중립노선을 취해 전쟁으로 인한 그 어떤 피해도 보지 않았다.
그렇다면 현재 아르헨티나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된 시작은 무엇일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수입대체산업이다. 수입대체산업이란, 수입에 의존하던 기존의 원자재들을 국내에서 조달함을 뜻한다. 보통 국내산업(제조업)을 육성할 때 주로 하는 정책이다. 단, 각 기업 간 공정한 경쟁을 통해 이루어져야한다는 특징이 있다. 즉, 자국의 내수시장에 집중해 경제적 호황을 이끄는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자원부국이니, 내수시장으로도 충분히 가능성 있는 정책이었다. 자국의 산업을 절대적으로 보호할 수 있으니 보호무역주의라고도 일컫는다. 구체적으로 외국인직접투자를 금지하고, 정부는 제조업의 생산원가를 낮추라고 유도할 뿐 아니라, 이외 철도, 에너지, 수송 여러 부분에서의 국영기업을 육성한다.
이렇게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유치산업보호론과 직결되는데, 아르헨티나 기업을 전 세계의 다른 타 기업과 비교했을 때 보다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에서 선제적으로 일시적 세금감면이나 수출지원을 통해 기업을 키우는 거다.
타 국가는 자유수출산업을 하며 활발한 무역으로 ‘보이지 않는 손’의 시장 경제를 이끌어갈 때, 중남미 혼자문을 닫아버리는 독자노선을 취한다. 대한민국 역사로비교하자면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라 하겠다. 조선은 이때 일본과 가장 큰 격차가 벌어졌다.
아르헨티나도 마찬가지로 이때 공기업과 국영기업을 집중 육성하며 대다수 사기업이 경쟁력을 잃어갔다. 현재 아르헨티나 국민 3명 중 1명이 공무원이다. 대한민국은 국민 10명 중 1명이 공무원임을 비교할 때, 과도한 정부의 개입으로 인한 시장경제가 균형을 잃고, 공공부문의 쏠림현상으로 기업의 대외적인 경쟁력을 악화시킨 사례라 할 수 있다. 사실 지금 아르헨티나의 기업을 생각해 볼 때 MELI(메르카도리브레) 제2의 아마존이라고 불리는 전자 상거래회사밖에 없다.
초기에는 성장성 있는 산업의 급속한 발전과 국민들의 일자리창출을 이뤘지만, 갈수록 심해지는 빈부격차와 사회불평등, 공기업증가(내수시장 활성화 위함)로 인한 막대한 재정지출, 국제시장의 경기불황은 수입대체산업을 성공적으로 시행하기에 명확한 한계가 있었다. 이는 정치적으로도 연관되는데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 중남미는 지속되는 인플레이션, 과한 재정지출에도 불구하고 늘 민주당의손을 들어줘 가난한 상태에 머무른다. 중남미 사람들은 ‘공짜’에 젖어 무분별한 양적완화가 국가의 재정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다는 사실을 모르고, 그냥 돈 준다니까 단순하게 민주당에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이다.전형적인 포퓰리즘이 만든 폐해다.
둘째, 포퓰리즘에 기반한 과도한 돈 풀기다. 양적완화는 주로 기준금리가 높아 시장에 돈이 없을 때에 융통할 수 있는 돈을 마련해 국민과 기업의 소비를 촉진시키고, 경제활성화를 꾀하는 목적으로 시행된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달랐다. 정치인들의 밥그릇싸움에 놀아나 국민들의 표몰이를 위해 막대한 재정지출을 해 돈을 풀었다. 돈을 풀어야 국민들이 뽑아주니까. 실제로 아르헨티나 국민 전기요금은 같은 사용량 대비 대한민국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한다. 정부는 빚을 지면서까지 과도한 복지정책으로 시장에 돈을 풀었고,이는 인플레이션, 아니 초초인플레이션을 유발했다. 이 과도한 돈 풀기는 이 정책을 시행한 사람 후안 페론과 에바 페론 부부의 이름을 따 ‘페론주의’라고 불린다.
자, 다음 사진을 보자.
상점 앞 안내판에는 ‘COMPRA HOY MÁS BARATOQUE MAÑANA’라고 스페인어로 표기되어 있다. 직역하면 ‘오늘 무조건 사세요. 내일보다 훨씬 쌉니다’라는 뜻이다. 하루 지나면 인플레이션으로 화폐가치가 하락해 더 높은 금액을 받는다. 이는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현재 몸소 피부로 느끼고 있다. 오죽하면 자영업자들은 그날 아르헨티나페소로 돈을 벌면 그날 즉시 은행에 가 달러로 바꾼다. 이게 정상적인 금융시장인가?
문제는 아르헨티나뿐 아니라, 중남미의 대부분의 국가가 같은 문제를 앓고 있다는 것이다. 베네수엘라도 석유매장량 세계 1,2위를 다투는 자원강국이었다. 하지만 정부의 과도한 포퓰리즘과 세계화를 역행한 고립정책으로 화폐가치가 휴지조각이 됐다.
얼마 전 선거에서 승리한 아르헨티나 대통령 당선인 말레이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는 인물이다. 모두가 또 좌파가 당선될 것이라 짐작했으나, 극우파가 당선이 됐다. 말레이의 공약은 사람들에게 미치광이 소리를 들을 정도였는데, 달러 공식화폐화, 중앙은행폐쇄, 낙태불법화, 장기거래와 신생아 거래 합법화, 무상의료, 무상교육 폐지 등이다.
이 말도 안 되는 공약을 들고 나온 밀레이 당선인이 국민들이 환호한 이유도 어쩌면 국민 40% 빈곤층, 물가상승률 150%가 넘는 초 인플레이션으로 쇠퇴된 경제를 회복하기를 고대하는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작은 희망이 담긴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수십 년간의 경제난에 지친 민심이 결국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다. 과도한 포퓰리즘의 결과는 패망뿐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화폐사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실제로 우루과이 한 가게에 강도가 침입했는데, 아르헨티나 페소가 있었다고 한다.
“아르헨티나 페소를 누가 써”
라는 말이 CCTV에 여지없이 녹화됐다. 그는 그러고는 아르헨티나 페소를 제외한 모든 걸 털어갔다. 전 세계 네티즌들에게 ‘강도도 거절하는 아르헨티나 돈’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23년 11월 며칠 전 기준금리를 기존 97%에서 118%로 또 인상했다. 페소화 대비 달러화는 1달러당 350페소, 또다시 18% 평가절하 됐다. 한 국가의 기준금리가 118%로 된다는 것은 폐소화가 더 이상 화폐의 기능을 상실하고 휴지조각보다 못한 존재로 전락했다는 반증이다. 대통령당선인 말레이가 중앙은행을 폐쇄하겠다는 공약도 과도한 인플레로 시민들을 착취하는 중앙은행의 무능함을 인지하고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잠깐, 그렇다면 중앙은행을 폐지하고 공식화폐로 미국달러를 한다고 했을 때 아르헨티나 경제가 살아날 수 있을까? 지금은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가 긴축정책을 하고 있으니, 달러화를 도입한다면 사실상 아르헨티나의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는 단기적으로 도움이 될수 있다. 하지만 시장경제는 회전한다. 미국이 양적완화로 돈을 푼다면 아르헨티나는 미국처럼 이를 견딜 수 있는 견조한 경제적 펀더멘탈이 갖춰져 있지 않다. 이미 중남미 국가 중 미국달러를 공식화폐로 쓰는 파나마, 에콰도르, 엘살바도르, 코스타리카의 사정이 이를 정확히 대변해 준다. 이 국가들은 인플레이션과 외환시장은 어느 정도 안정됐으나, 만성적인 저성장에 빠져있는 국가들이다. 달러화를 채택함과 동시에 미연방준비제도의 통화정책을 따른다는 뜻이기 때문에, 미국경제의 과한 의존과 아르헨티나의 자주적 경제체제를 잃어갈 것이다. 절대 이는 건전한 거시경제 정책을 대체할 수 없다. 단편적인 ‘긴급 처방 주사’라는 표현이맞겠다. 만약 인플레이션을 잡고, 거시경제의 안정 모두를 취할 수 있는 것이 달러화였다면 이미 모든 국가가 달러를 공식화폐로 지정했을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다. 전기차시장의 거대화와 에너지자원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현재, 남미의 최대 자원강국 아르헨티나가 이 장점을 발판으로 경제를 다시 일으킬지의 여부는 미지수다. 신 극우세력의 중심, 말레이가 포퓰리즘에 무너진 아르헨티나를 어떻게 부흥시킬지 현재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