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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Dec 04. 2023

젠더갈등, 무엇이 문제인가

남녀 혐오에 대하여

남자와 여자는 어떻게 이렇게 다를까. 친구부부와 함께 한 숙소에서의 짧은 단상을 기록하고자 한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읽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를 보면 알 수 있듯, 남자와 여자는 연애나 결혼관 삶을 대하는 가치관 모든 것이 천지차이다. 하나의 관점을 바라볼 때도 첫 시작점부터가 다르다. 그래서 천생연분인 이 둘도 자녀까지 있는 데도 일상 속에 부딪히는 부분이 참 많다. 결혼한 모든 이가 아마 그럴 거다. 아주 작은 일상 속 가령, 나는 잔을 저기 원래 두는데 너는 왜 여기 두는지. 육아는 어떻게 하고, 돈의 씀씀이는 왜 그렇고 비단 이게 사실 보편적 사람들 간의 문젠데 남녀의 문제라고 일반화하고 언론 매스컴에서는 그렇게 포장한다. 왜냐? 그렇게 생각해야 모두가 편하거든. 사람들 특히 남녀는 이처럼 서로를 이해하는 노력이 수반될 때에만 비로소 정상적인 대화가 된다.

 대한민국 사회가 성별에 따라 기대하는 역할은 오랜 시스템 속에서 이렇게 곪으며 각자의 색깔을 굳혀왔고이를 정당화해 왔다. 마치 결혼식 신랑 혼주의 푸른 한복과 신부 혼주의 분홍한복처럼.

 이 환경 속에서 본인들의 왜곡된 시야 앞에 그것이 흑백논리로 전환될 때 이는 상대집단에 대한 혐오로 번진다. 우리 앞에 당면한 심각한 사회문제이기도 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일이 터지고 나서야 재발을 막으려 안간힘을 쓴다. 이렇게 불완전한 인간이 이 소국 안에서 편 가르기를 하고, 서로를 헐뜯는 것이 과연 이 사회가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 건지 심히 의심스럽다.

군대문제부터 시작해 출산 문제까지 서로를 물고 뜯을수 있는 이유는 만들자면 이 세상에 사실상 차고 넘친다. 이때까지 오랜 시스템에서 ‘남자는 이래야 돼’, ‘여자는 이래야 돼’ 라며 그렇게 서로의 기대역할을 가르쳤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이는 매사에 적용가능하다.

 이렇게 서로를 물고 뜯고 혐오하는 젠더갈등의 시작의 원초적인 원인은 본인이 속한 집단에서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일생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며 개개인의 속성을 일일이 파악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집단이라는 범주화로 그 집단과 그 사람의 속성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남잔데 여사친이 내게 남자욕을 한다고 가정하자. 이건 내 욕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내 집단의 피해가 곧 내 피해고, 집단의 이익이곧 내 이익이다.

 이는 원시시대 때부터 사실 이어오던 사람의 본능이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원시시대 때부터 남자는 사냥을 하고 여자는 이를 요리해 나누어 먹고. 남자와 여자의 사회적 역할이 철저히 나뉘어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 모집단은 사냥감을 ‘나누어’ 먹음으로써 사냥에 실패하더라도 어느 정도 배를 채울 수 있게 만드는 보험과도 같은 행동을 취한다. 이타적 행동은 개개인에게는 불리할지언정 집단이 성공할수록 구성원들 모두의 생존을 높인다.

 인간은 그 이후부터 개인이 아닌 집단 단위로 사냥감을 경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집단에 속한 무리와 속하지 않은 무리를 구분하기 시작했고, 집단에 속하지 않은 무리를 위협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이렇듯 현재 집단 간 혐오, 젠더갈등의 문제는 내가 속한 집단, 나한테 오는 손해를 사전에 제거하고, 상대보다 우위에 있으려는 이기심에서 비롯된다. 자기 차별화와 우월화의 작용이다.

00기업 논란의 영상

 이 영상은 우리 사회의 젠더갈등의 심각한 단면을 보여준다. 어쩌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그림이다. 이는 영상의 여성 손모양이 남성 성기의 크기를 조롱하는 인식을 주는 손이라 논란이 됐다. 일명 ‘집게손’이다.

사실 저 손모양은 2015년 ’메갈리아‘라는 남성혐오 커뮤니티의 대표 상징 그림으로, 극히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만 사용되던 은어였다. 이것이 공론화되며 뉴스1면에 나오고 정부까지 개입하며 갑론을박이 이어지고있다.  또 다른 게임회사도 비슷한 그림으로 네티즌들의 불매운동에 들어간 상황이다.

00기업 캠핑 포스트
00기업 홍보영상

앞의 포스트와 밑에 디스코 영상도 그렇다. 현재는 이 두 회사 모두 해당 포스트 및 영상에 대해 사죄하고 변경 및 삭제했다. 이 집게손은 각자 회사 사정이 어찌 됐든 메갈리아 집게손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 한국 남성을 비하목적으로 사용됐다는 합리적 의심을 할만하다. 보통 사람들은 사실 저 자체를 파악하기가 힘든데, 이런 그림들 속 의미를 분석하고 뜻을  찾아내 해명을 요구하는 한국네티즌들이 사실 신기하기도 하다.

 그렇다면 남자는 어떨까. 얼마 전 한 취업사이트에 익명의 개인이 본인 회사의 채용현실을 알리는 글이 올라왔는데 논란의 소지가 있어 올려보자면,

논란이 된 채용 글

채용할 때 여대 졸업생은 다 탈락시킨다는 말이었다. 심지어 댓글들도 지우지 마라고 어떻게 되는지 보자며 갈등을 조장하고 부추긴다. 어긋난 버린 이런 한 사회의 단면들이 부끄럽고 무섭기만 하다.

 이처럼 남성과 여성을 적대적 관계로 규정하고, 일부 남성 혹은 여성 행위를 전체 모집단으로 일반화하는 왜곡된 가치관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남성혐오, 여성혐오 커뮤니티도 각자 만들어서 서로를 헐뜯는 이 문화가 과연 건강한 에티켓일까. 익명을 무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뺏어버린 수많은 사건들을 겪으면서도 단지 ‘내 일’ 이 아니라는 이유로 우리는 이를 당당히 방관한다.

 페미니즘이라는 건 사실 여성의 권리를 지키는 일이다. 예로부터 여성은 편견과 차별 속에서 살아온 게 사실이고, 이런 부조리함을 없애고자 아주 바람직하고 선순환적인 이유를 근거로 만들어진 집단이다.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을 배제함으로써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일. 이런 페미니즘이 일부 왜곡된 이들에게 남성에 대한 우월화, 자기 차별화로 번진 사례를 들어 우리는 이를 젠더갈등으로 연결시켜서는 안 된다. 그보다 우선 언론에서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부추기는 자극성 기사, 정부의 무수한 탁상공론화 정책들이 먼저 사라져야 하며, 혐오에 대한 제재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2024년이 한 달 남았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세상은 훨씬 복잡해지고 다원화되었다. 지금 트랜스젠더도 본인을 마케팅하고, tv에 나오고, 개인방송도 하는 세상이다. 미국에서는 젠더를 표기할 때 남성여성만으로 구분 짓지 않는다. 젠더갈등으로 순화된 성별에 따른 혐오는 명백한 시대 역행적 발상 및 이분법적 세계관이며, 이는 더 이상 현시대에 맞지 않는 발상이다.


 우리 스스로 현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은 하나다. 바로 한 발짝 물러나, 관망과 관조하는 거다. 그리고 최대한 많이 상대 집단에 대한 내 경험과 지식을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 서로의 집단 간 이해만이 곧 존경을 만들고 포용할 수 있는 건강한 대한민국 사회를 만든다.


이경규 명언

 경규 옹의 명언이 떠오른다.

‘잘 모르고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

이 말은 진리다. 그것이 긍정적인 의미라면 무식하게 도전해서 목표를 이룬다는 것일 테지만, 부정적인 의미라면 편협하고 왜곡된 세계관에 빠져 본인 나아가 타인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게 없다. 공부를 덜하고 덜 배운 사람일수록 비인간화, 대상화가 심해진다. 서로에 대한 이해의 노력에 앞서 배척과 혐오만이 가득하다면 이 사회가 바뀌는 건 앞으로도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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