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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Dec 30. 2022

라오스엔 대체 뭐가 있냐면요?

사이에 있는 존재들과 고마움에 대하여

올여름, 좋은 기회가 생겼다. 해외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멕시코에서 귀국한 지 정확히 2주 만이었다. 이번에는 어디로? 바로 라오스다. 하루키의 라오스엔 대체 뭐가 있는데요?로 큰 주목을 받은 나라다.

 그래서 나도 한번 패러디해 봤다. 라오스에는 사이에 있는 존재들과 고마움이 있다.


라오스 위치

 

20살, 첫 해외여행으로 영국 땅을 밟았을 때 모든 게 신기했었다. 지나가는 풀, 바닥에 떨어진 돌마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 우연히 얘기하게 된 영국 할아버지가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었다. 나는 당당하게 한국인이야! 한국에서 왔어!라고 대답했지만, 충격적 이게도 그는 한국이 어딘지 몰랐다. 북한과 남한으로 나뉜 분단국가라는 사실만 아시고, 어디 붙어있는 나란히 모르셨다. 경제 대국 10위권, 선진국의 대열에 당당히 올라간 국가임에도 한국이 어딘지를 모르시다니.

 역지사지라고 했던가? 정확히 라오스가 내게 그랬다. 라오스로 봉사활동을 간다고 했을 때 그때서야 라오스를 검색해 보았다. 아, 북쪽에는 미얀마가 있고, 옆에는 태국, 베트남 사이의 작은 국가구나.

  Between A and B. A와 B사이. 사이에 있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바다가 없는 나라는 괜히 신경이 쓰인다.

 사람은 조직 안에 흡수됨으로써 안정감을 느낀다. 나도 미국, 멕시코에서 늘 현지인과 외국인 사이에서 힘없는 이방인으로 살았다. 불안정한 삶 속에 관심받지 못하는 애매한 위치. 그렇다면 조직 안에 잘 스며들 안정감을 느낄까?

 회사라고 가정해 보자. 회사에서도 뛰어난 자와 낙오된 자가 있다면 그 사이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있다.

 가족 중 셋째가 있다면 첫째와 셋째 사이, 둘째는 말 못 할 사이의 감정이 있다. 학교에서도 1등과 꼴찌, 그 사이의 잊혀가는 수많은 학생들. 그렇게 모두에게 아무런 기억 없이 잊혀 간다.

 사실 조직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것이 가장 위험다. 변화를 대놓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변화 새로운 것을 늘 배우 발전하게 한다. 사이에 있는 존재들은 잊히는 것이 두렵다.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서 더 많은 시도를 하고, 도전을 하고, 그들만의 고유한 세계를 형성해 간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 모두 사이의 것들을 존경한다.  

 라오스도 내게 그렇다. 동남아시아의 대표적인 두 거대 시장 태국과 베트남 사이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한 곳.

 그래서 더 좋았다. 라오스만이 가진 고유의 색깔을 찾아보고 싶었다. 많은 기대 속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난 라오스에 왔다.



라오스에 온 정확한 목적은 회사에서 지은 초등학교 벽 페인트칠 봉사를 위한 거였다. 어쩌면 보여주기식의 행사 속에 색다른 의미를 찾고 싶었다.

   맡은 업무가 해외 쪽이다 보니, 늘 비엔티엔 공항 약자 VTE은 외우고 검색해보고 했었다. 실제로 공항에 내리니 예상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그래도 한 국가를 대표하는 공항인데 너무 휑했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환전소만 몇 개 있고. 내 고향 울산역이랑 크기가 비숫한 듯했다.

 날씨는 또 얼마나 습하고 더운지, 한국의 여름보다 정확히 딱 2배 더웠다. 공항을 나서니 대절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첫 식사는 라오스의 쌀국수였다. 나는 베트남에서 먹은 쌀국수가 인생 최고의 쌀국수인 줄만 알았다.

 라오스의 쌀국수는 베트남의 쌀국수와 복사+붙여 넣기 한  똑같은 맛이었다. 심지어 단돈 이천 원에 가성비 최강의 푸짐함이었다. 지금도 라오스에선 첫 번째로 쌀국수가 떠오를 정도다.

 

라오스 쌀국수

라오스는 국민 1인당 GDP가 약 2,500달러로 유엔이 지정한 최빈국이다. 코로나 장기화, 환율급등, 물가상승 등으로 심지어 최근에는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라오스 오기 전까지만 해도 꽃보다 청춘, 미디어로 접했던 곳이기에 태국정도의 경제규모인 줄 알았다. 쌀국수며 마사지며 태국의 문화랑 매우 비슷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라오스에서 느낀 것은 바다가 없어 육로로만 무역이 진행되며 (실제로 코로나 때문에 교역도 많이 줄었다고 한다) 공산품 90% 이상이 태국에서 수입하는 것이라고 한다.

 저녁식사로 닭고기를 시켰는데 닭에 살집이 거의 없었으면 말 다한 것이 아닌가. 닭도 배가 고픈 나라다.

 우리는 식사를 마친 뒤 숙소에서 짐을 풀고 바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무더운 여름, 습기가 하늘을 찌르던 날 끝도 없는 페인트칠에 하나 둘 지쳐갔다. 점심을 먹고 오면 또 자국이 생겨 다시 덧칠하고, 그다음 날이 되면 또 자국이 남았다. 날씨 탓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동심의 어린아이들이 우리에게 옆에서 귀여운 얼굴로 감사합니다 를 연달아 말하는 것을 보며 큰 힘을 얻었다.

귀여운 라오스 아기들과

이틀에 걸친 페인트칠도 다 끝났다. 다 끝나고 기념촬영을 위해 사진을 찍자고 하니 (영어가 아닌 바디랭귀지로 소통한다) 모두가 카메라 앞에 달려들어 찍는다. 참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아이들에 지금도 웃음이 난다.




 나는 지금까지 28개국을 다녔다. 다른 국가에서 보지 못했던 라오스만이 가진 색깔은 다름 아닌 '고마움'이다.

 우리는 '고마움'이라는 감정을 언제 느끼는가? 생일선물을 받았을 때? 상사로부터 칭찬을 들었을 때? 맛있는 식사를 대접받았을 때?  현대인은 어떤 특정 이벤트에만 주로 고마움이라는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라오스 사람들은 다르다. 모든 말의 끝에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현지어: 컵자이더) 수식어가 붙는다. 단지 우리가 페인트칠을 해줘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들은 사진을 찍을 때도 고맙고, 함께 밥을 먹을 때도 고맙고, 어쩌면 우리가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모든 것에 손을 합장하며 고마워한다.

  라오스에는 회사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부채가 높기에 기업들은 라오스 투자를 꺼린다. 국가 경쟁력이 낮고, 인프라는 한참 부족하며, 최빈국 4위라는 국가 전체적인 면을 고려하면 감사하다는 것이 어쩌면 당연시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1960년대 전 세계의 원조를 받을 때를 생각해보면 비슷하다. 가진 게 하나도 없으니, 누군가 우리를 도와준다는 것이 그저 고마운 것이다.

 나는 라오스 사람들이 이 고마움을 당연시 여기는 것을 우려한다. 받는 걸 당연시 여기는 순간 그것이 마땅히 (우리는 가난하기에) 누려야 할 권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스스로 일어나지 않고 자국의 발전 없이 남의 도움으로 기생하는 것이다. 나는 라오스 국민이 이 도움들을 고맙다는 말로 대신하기보다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자력으로 여겼으면 한다.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냈듯, 더 이상 현재 상황을 주변 탓으로 돌리지 않길 바란다. 습관처럼 말하는 고마움이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자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인재양성이다. 우리나라가 라오스에 보건 의료 쪽에 도움을 준다고 가정하자. 단순히 병원만 지어주면 그것은 올바른 원조가 아니다. 병원을 지을 훌륭한 건축가를 배출하게 도와야 한다. 코로나 확진자만 치료해 주어서는 안 되고 확진자를 치료할 의사를 양성해야 한다. 인재 양성이 가장 우선순위가 되어야 스스로 자립할 수 있다.

 갓난아이를 생각해 보자. 배고프면 울고, 잠에서 깨면 울고, 추우면 울고, 더우면 울고, 화장실이 가고 싶어도 운다. 왜 우는 것일까? 울면 다 해결되기 때문이다. 울면 누군가 분명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스스로 걷는 법, 기어가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기, 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방법이고, 나아가 국가도 쌍방향적인 질적성장을 이끌어갈 수 있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것에 고마워할까? 하루에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몇 번 정도 할까? 단언컨데 10번도 안될 것이다.

나는 어릴 때 버스를 타면 버스 기사님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씩씩하게 줄곧 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줄어들더니 최근에는 거의 하지 않는다. 내가 라오스 사람들처럼 고마움을 당연시 여겨서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입밖에 나오지 않는 것일까?

 아니다. 고마울 일의 빈도가 현저히 줄었기 때문이다. TV프로그램 <응답하라 1988>만 봐도 옛날에는 사람들 간, 이웃 간의 정이 있었다. 이웃끼리 음식도 나누어 먹고 서로의 안부를 늘 물으며 함께 살았다.

지금은 출퇴근길 지하철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이 다 무표정이다. 조금만 부딪혀도 얼굴에 짜증이 가득 묻어난다. 예민하고, 또 예민하다. 다들 다 자기 살길이 바빠 다른 사람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당연 고마울 일이 없어진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기에.

 얻는 게 있으면 포기해야 하는 게 생긴다. 다 가질 수 없다. 주식도 그렇다. 버는 사람이 있으면 그 돈을 잃는 사람이 있다. 제로섬 게임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 공리주의는 더 이상 현대판에서 성립되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조금 더 예전의 정을 찾고, 서로를 위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무뎌지는 것

. 어떤 현상이나 일이 발생했을 때 그냥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떤 도전을 할 때에도 실패하면? 아님 말고. 다른 거 하면 된다.라고 아무렇지 않게 무디게 생각해 보자.

 안되면? 되는 거 하면 된다. 이 세상 모든 일을 대수롭지 않게 훌훌 털어버리는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예민함이 줄어들고 고마움이 늘어난다.

 예민한 것이 안 좋은 것이 아니다. 섬세하고, 일처리가 굉장히 꼼꼼하며, 깔끔하고 완벽하다. 하지만 예민한 성격은 느끼는 감정의 폭이 넓어 나와 주변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많은 예술가, 가수, 아티스트들이 왜 자살할까. 감정의 폭이 지나치게 넓어 그 세계에서 벗어 나오지 못해서 자살하는 것이다. 작은 것도 크게 확대해석하며  본인의 미래를 갉아먹는다. 보통 사람들이 살다가 그냥 넘길 수 있는 문제에도 지나치게 많은 생각과 감정을 느끼기에.

 지하철에서 쿨쿨 잘 자는 사람이 참 좋다. 무디고 그 어떤 일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런 '고마움'의 양면적인 해석에서 바라본 라오스에서 나는 당연시 여기지 않는 것, 그리고 무뎌지는 것 이 두 가지를 배웠다.






비오는 라오스

8월의 날씨라고는 믿기지 않는 라오스였다. 늘 안개와 낮은 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고 비가 자주 왔다.

습도가 너무 높아 늘 땀에 젖어있기 일쑤였고, 밤에는 한국의 가을처럼 서늘했다.

라오스는, 정과 순수함으로 가득한 곳이었음을 뒤늦게 기억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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