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세계관이 인생을 바꾼다
누구나 가장 좋아하는 노래와 가수가 있다. 어떤 이는 발라드, 어떤 이는 랩, 트로트 등 종류도 다양하다. 나는 랩을 좋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주로 듣곤 하는데, 특히나 랩이 좋은 이유는 래퍼들이 각자 본인만의 짙은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많은 래퍼들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래퍼는 영비(양홍원)다. 특히 과거에는 없었으나 지금은 더 세계관이 분명해진 그를 보며 얼마나 내면이 단단하고 본인의 길을 주체적으로 묵묵히 걸어왔는지가 보인다.
그럼 세계관이란 뭘까. 어떤 지식이나 관점으로 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을 말한다.
가령, 나는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갖겠어‘ 라고 한다면 육체적으로 고된 일이라도 남의 시선이 어떻든 그냥 돈을 위해 계속한다. 공직사회에 기여하는 직업을 갖고 싶은 이가 있다면 요즘같이 공무원 열풍이 식든말든 어떻게 해서든 공무원이 된다.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면 성공할지 모르고 리스크가 존재해도 사업에 기꺼이 도전한다. 남들이 뭐라 하든 내 길을 걷는 것. 이것이 본인만의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 작고 작은 소국에서 획일화에 젖은 우리 인생을 돌아본다. 남들이 정해놓은 성공이라는 길은 암묵적으로 늘 존재해 왔고 때가 되면 (공식적으로) 해야 하는 과업이 정해져 있다. 군대에 가고, 대학을 가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가지고.
“넌 명문대학교 졸업을 했으니 대기업에 가야지. 그게 당연한 거지”, “아빠가 의사니 너도 의사가 되어야지!”
기호는 묵살되며 배경에 집착한다. 그 배경과 환경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가길 내 가족과, 모든 주변 사람들 그리고 이 사회가 원한다. 기대에 저버리는 사고와 행동 앞에선 늘 실패와 낙인이 따라다닌다는 걸 인지하고 그만큼 더 강한 결심이 요구된다.
가진 거라고는 사람 하나인 이 소국에서 한정된 자원에 적응한 탓인지 늘 경쟁에 익숙해져 타인을 짓밟아 위로 올라가야만 한다. 그러니 학생들은 그것이 정답인 줄 알고 그 길로만 가는 거다.
아이들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순응적인 아이, 뭐든 ’네네‘하는 아이는 훈육에 있어 본인이 매사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것이 본인만의 세계관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길이다.
이처럼 이 험난한 자본주의 세상에서 본인만의 세계관을 갖는다는 것이 쉽지 않고,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기에 더 영비 같은 사람을 볼 때면 존경스럽고 경이롭다.
나만의 세계관을 갖는다는 건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크고 단단한 방패, 방어막을 지니는 것이다. 그 어떤 외부 공격에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사실 영비는 과거에 학폭논란으로 대중들 사이에서 많은 비난을 받았다. 오로지 실력하나로 지금 여기까지 온 래퍼다. 가장 힘든 시기를 본업에 충실함으로써 자기 세계관을 그려간 거다. 본인만의 바라는 무언가, 살고 싶고 하고 싶은 이상향이 그는 누구보다 분명하다.
그는 먼저 그 누가 뭐라 해도 절대 휘둘리지 않는다.
20대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멘탈을 가지고 있다. 학폭 관련 입에 담기도 힘든 성난 힐난도 다 이겨냈으며 발음을 먹어 가사가 안 들린다느니, 목소리가 울린다느니, 스타일이 구리다느니 본인의 전문 분야에서의 모든 비난에서도 굳건했다. 남들이 아이돌이나 하라며 욕했던 싱잉랩도 과감히 도전했다. 지금은 그게 유행이 됐다. 잘못한 부분에서는 인정과 반성을 하고, 이 사회가 인정할 때까지 자신만의 스타일로 그냥 밀어붙인다.
영비가 겪은 많은 상처가 그의 랩에서 느껴져 그의 랩은 한 사람의 치유의 과정 즉, 하나의 예술작품을 감상한 기분이다. 마치 시집 한 편을 읽는 듯한 시적인 가사는 내 주변의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그를 보면서 세상을 살아가며 내 관념에 대한 적당한 고집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다음은 엄청난 노력이다. 영비는 한국 힙합계에서 연락이 안 되기로 유명하다. 가사에서도 드러나듯 그냥 무음으로 해놓거나 폰을 꺼놓는다. 3일은 기본이다. 내내 방안에서만 박혀서 최소한의 의식주 생활 이외 작업활동만 한다. 천재성과 노력이 합쳐지면 예술을 낳는다를 증명하는 산 증인.
그의 가사는 멜로디에 꾸역꾸역 집어넣은 듯한 다른 랩과는 다르게 도대체 한국어로 어떻게 이런 가사가 나올 수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마치 로맨스영화 같다. 한 편의 노래 안에 시가 담겨있다. 무엇보다 하나하나 정성 들여 오랫동안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또 가장 중요한 것. 그는 겉멋이 아닌 본질에 집중한다.
한창 취업준비하던 시절이 생각난다. 대기업에 붙은 친구가 한턱쏘는 술자리였다. 친구는 술도 취했고 한 껏 회사뽕에도 취해있었다.
“나는 연봉이 얼마고~회사복지가 어떻고~”
그는 맛있는 걸 사주는 대가로 중소기업에 다니는 다른 친구를 한껏 깔봤다. 지금은 연락이 닿질 않지만 그때는 그도 몰랐을 것이다. 그게 아무 부질없는 겉멋이었다는 걸.
신입사원은 종종 회사와 본인의 정체성을 동일시하는 과오를 범하는데 이는 삶을 역행하는 지름길이다. 나는 회사 네임벨류는 절대 본인의 퍼스널 브랜딩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진짜 본질을 흐리게 한다. 진짜 본질은 그 대기업이 아니고 퇴근 후 어떻게 본인만의 시간을 만들어가는 지다. 그게 앞으로 60년 인생을 결정하는 진짜 본질임을 그 술자리에선 나도 알지 못했다. 영비처럼 내 것을 꾸준히 만들어가는 게 그게 본질이며 진짜 코어(core)다.
그는 그 많은 래퍼들의 부의 상징, 허세의 상징 체인이나 반지 하나 없다. 랩에서 그 흔하디 흔한 돈자랑도 일절 없다. 온갖 보석으로 둘러싸인 액세서리나 겉멋에 휘둘리지 않고 랩 할 때도 그냥 후줄근한 후드티 하나 입고 나온다. 래퍼라면 진짜 누구도 넘지 못할 랩, 실력으로 검증하는 것. 본인의 것으로 증명하는 것. 그게 진짜들이 하는 행동이다.
이 세상에 이센스나 빈지노, 미국 Asap rocky, Nas, 투팍, 텐타시온, 비기 같은 천재성을 가진 래퍼는 수도 없이 많다. 근데 왜 나는 그 급에 끼지도 못하는 영비를 이렇게 치켜세우냐고 이해 못 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빈지노 이센스는 원래 천재다. 근데 고등래퍼 때의 19살 영비를 보아라. 그때보다 지금 성장한 속도를 보아라. 그만의 독특한 세계관은 타고난 천재성을 이겼다.
그렇다면 나만의 세계관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무엇을 경험하든 보든 매사를 기록하고 의미를 부여해 내 삶과 연관시켜 보자.
가령 길거리에 꽃이 있다고 하자. “아, 꽃 너무 이쁘다”가 아니라 “이 화려한 꽃도 언젠가는 지겠지, 나도 좋은 순간이 있으면 안 좋은 순간이 분명 올 텐데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혹은 내가 힘든 상황이라면,
“지금 이 순간들이 모두 거름이 되어 나중에 꽃이 폈을 때 내가 바라보는 눈처럼 타인의 축하와 부러움에 꼭 즐기고 보답해야지”
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아니면 정 반대로 남들은 꽃이 핀 걸 시들고 있는 중이라고 보며 간헐적 행복에 대한 고찰을 할 수도 있겠네.
매사를 나만의 시각으로 한번 보자. 세상이 달리 보이고 내면의 세계가 확장되어 감정의 폭이 넓어진다. 저건 그냥 방금 생각해 낸 예시일 뿐 매사의 경험과 순간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쌓이는 의미들에 나만의 색깔과 통찰로 새로운 인생을 온전히 바라보게 된다.
나만의 고유한 세계관, 서로 물어뜯는 데 안달 난 이 자본주의에서 살아남는 가장 강력한 방어막.
끝까지 내 목숨처럼 지켜내야 한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인 영비의 킬링벌스 영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