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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Mar 22. 2024

혼밥이 익숙한 그대에게

오사카의 생각들, 개인주의

지금 나는 오사카에 있다. 이자카야에서 간단히 맥주를 한잔 하며 왼쪽을 둘러본다. 옆에 어떤 여성분은 에어팟을 끼고 핸드폰으로 영화를 보고 있다. 1인분의 안주만 시키고 한 시간 내내 영상을 보다 자리를 뜬다.

오른쪽을 본다. 중년의 아저씨가 전화통화를 하며 오른손엔 담배를 쥐고 있다. 일본에서는 아직 카페나 식당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다.

일본에 와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현대인은 집단 속에서도 집단 자체의 성격에 물들지 않고 개인을 존중받고자 한다는 것이다. 혼자는 당연히 자연스러운 것이며 집단보다 개인이 더 우선시 되는 느낌이다.

10년 전부터 일본은 이랬으니이 변화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들은 언제부터 혼자가 편해졌을까. 하루를 정리하는 데 혼자 생각하고 혼자 즐기는 것만큼 사실 좋은 것도 없다. 음식점이나 술집, 카페는 1인석이 반 가까이 되고, 수많은 기업들은 1인 가구를 타깃으로 한 제품을 내고 매출을 올린다. 현대사회는 변화에 대응하지 않으면 한없이 도태되기에 누구나 이 빠른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려 한다.

나 또한 요즘 회사나 모임에서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가지며 유일하게 나에게 부여된 시간만이 결국은 남는다는 생각을 한다. 친구, 지인과 저녁을 먹거나 술자리를 가지고 집에 돌아가는 길, 현타가 온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는 그렇게 웃고 떠들다가도 어느새 지나고 나서 보면 남는 게 없다. 우리 모두는 결국 이렇게홀로서기를 배우고 있다. 혼밥, 나 홀로 여행, 홀로 읽는 책, 홀로 하는 산책 속에서 사유와 함께 내가 나아가는 방향을 찾는다.

혼밥에도 사실 레벨이 있는데 통상적으로 편의점이나 혹은 김밥천국과 같은 체인음식점에서 홀로 먹는 밥은저레벨이다. 시험준비를 하는 이나, 사람 만나는 일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는 그저 당연한 일상일 뿐이다.

진짜 혼밥을 즐길 줄 아는 자는 고깃집에서 혼자 먹거나 내 옆의 아저씨처럼 이자카야나 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사람이다. 이 사람들은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로지 본인의 시간을 즐기기 위해 이 자리에 와있다. 온전히 하루의 피로를 보상받는 유일한 시간이다. 그게 왜 가치 있다는 생각이 들었냐면 혼자 있는 이소중한 순간에도 나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이겨내고자 고깃집에서 혼자 고기를 구워 먹은 적이 있다. 근데 웬걸? 날 여행자라고 생각하는 이도 없었고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도없었고 관심자체가 없었다. 내가 혼자여도 그냥 그 자체로 괜찮았다. 타인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일본은 레벨 자체를 매기는 것이 사실상 의미 없어 보인다. 라멘이나 덮밥집에 가면 1인석에는 자리가 없다.심지어 아주 빨리 먹어 회전율도 빠르다. 주로 여성보다는 남성이 많이 보인다. 물론, 개인주의가 자리 잡은 일본에서도 혼자 밥 먹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존재한다. 혼자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좋은데 사정이 안 되는 사람들을 보고 하는 말이다. 근데 이 말도 틀린 말은 아닌 것이 혼자 밥을 먹거나, 혼술을 할 때에는 늘 단골집을 많이 가기 때문에 누군가와 진짜 ‘이야기’를 하기 위해 혼자 가는 사람도 많다는 의견도 있다. 혼자 ‘방문’을 하는 것이지, 결국엔 술을 먹든 밥을 먹든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

하지만 개인주의 문화가 만연한 일본에서는 꼭 식당이나 술집이 아니더라도 혼자 도시락을 싸 오고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거나, 잠을 자거나, 혼자 생각을 하는 등혼자 온전히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많은걸 보아 이젠하나의 트렌드로 굳건히 자리 잡힌듯하다. 평일인 지금 점심시간에 공원을 돌아다니면 양복을 입은 직장인이 유독 많이 보인다. 벤치에서 혼자 도시락을 먹는데 사람도 많다. 이를 보며 개인주의가 자리 잡은 일본이 집단주의로부터 벗어난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생각도 했다. 어쩌면 급격한 변화, 수많은 정보, 적자생존, 다원주의의 사회에서 타인과 조직에 대한 배려가 결여되어 성과창출의 저조함을 보여왔던 것은 아닐까. 잃어버린 10년의 원초적인 뿌리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런 생각자체는 사실 일차원적인 발상이다. 현대사회는 분업에 따른 경제성장만 있진 않다. 돈 벌 수 있는 법은 한없이 다양하다. 개인주의 사회가 불러온 개개인의 창의성, 예술가적인 면모도 일본의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니 말이다.

나는 지금의 일본이 좋다. 반면교사 삼아 배울 건 배워야 한다. 우리 모두는 현재의 삶에 지쳐있다. 늘 행복하고 활기찬 사람이 있다한들 설령 이들도 지칠 때가 있다. 누굴 만나도 위로를 받지 못할 때가 있다. 그때는 나 자신을 내가 돌봐야 한다. 회사나 조직에서 혼자 밥을 먹거나, 혼자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이유도 어쩌면 스트레스나 과중업무에 대한 피로를 풀기 위한‘나를 돌보는 일’이다.


무언가를 같이 해야만 직성이 풀리던 시절이 있었다. 늘 무리 속에서 어울리고, 나만 모르고 있거나 늦은 정보가 있으면 불안해하고. 학창 시절, 회사 생활이 딱 그렇다. 정보우위에 있는 학생, 직원에게 사람이 몰린다. 개인플레이는 겉돌고 조직에 융화되지 못한다는 이미지가 강해 구성원은 불특정 다수의 눈치를 본다. 그건 나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고 타인이 중점이 된 한없이 수동적인 삶이다. 정작 우리는 돈의 노예가 되어, 타인의 평가에 목매달며 시간을 허비하고 정작 나를 잃어가고 있던 것은 아닐까. 지갑은 더 두둑해지겠지만 그 사이 내 어깨와 등은 나날이 굽어가고, 시력은 안 좋아지고, 혼자 행복하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MZ세대들이 퇴사하는 이유가 연봉이나 복지, 처우가 안 좋아서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기업문화가 맞지 않아 퇴사하는 사람도많다. 내 적성에 맞는 조직에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고 그것이 곧 내 성장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이는 관계 형성에 국한된 말이며, 혼자 보내는 시간과 균형이 있을 때에만 이 사회적인 모습 자체를 더 잘 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근데 혼자가 좋고 익숙해졌다는 말 뒤에는 큰 책임이 숨겨져 있다. 혼자 와서 네 좌석이 있는 테이블을 혼자 몇 시간 동안 차지하고 있는 카공족이나, 혼자 있고 싶어 집단전체의 분위기를 흐리는 이들은 ‘혼자’라는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건강한 개인주의는 나 혼자만 생각하라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배려 속에 나를 더 돌보는 일임을 오사카 이자카야에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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