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년 2개월간의 긴 취업준비 시절 포함 인생에서 2년 6개월이 넘는 시간을 취업준비생 시기로 보냈다. 짧지 않았던 그 기간은 나 스스로에 대한 성장과 삶에 대한 고찰을 가장 치열하게 할 수 있었던 내겐 가장 고마운 시간이다.
스스로의 객관화와 사회가 원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지려는 처절한 노력 속에서도 이 길이 맞는 건가에 대한 끊임없는 의구심을 가졌다. 터널은 언제나 끝이 있고, 긴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봄이 오듯 그 당시를 회상하며 현실적인 하루 일과를 회상해보고자 한다.
마냥 행복하지도 않았던 그 때가 그리운 것은 그때만큼의 명확한 목표와 큰 도전이 내게 지금 없어서 일테다. 취업이라는 합격 메일 단 하나에도 많은 히스토리와 야심, 생각들이 오간다. 시간이 흐른 지금 내가 이 자리에서 해야 하는 것은 자리를 지키며 그저 묵묵히 앞으로 걸어가는 것이겠지.
일요일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푹 쉬었다. 월요일과 토요일까지의 하루는 복사+붙여넣기한 것처럼 소름 돋게 똑같다.
[오전 07:00] 기상
잠에서 깨어난다. 늘 푹 자지 못한 지 한 달은 지난듯하다. 심리적으로 편안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일이 크게 기대되지 않는 삶의 연속. 일단 씻으러 화장실로 발걸음을 향한다. 씻지라도 않으면 아무것도 하기 싫고 다시 침대에 눕게 된다. 뭐라도 하기 위한 최소한의 발걸음이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우리 마을을 기상과 동시에 한 바퀴 뛰는데 오늘은 너무 추워서 안 되겠다.원래 매일 뛰기로 했는데 매일은 개뿔. 2번도 너무 힘들다.
씻고 옷을 입는다. 잘 보일 사람이 없기 때문에 오늘도 편안한 운동복과 위에는 패딩을 입는다.
[오전 07:30] 아침식사
엄마가 그래도 아침은 꼭 먹어야 한다며 늘 아침을 차려주신다. 아침은 아주 조금만 먹는 편인데 늘 이렇게 차려주시는 엄마가 고마울 따름이다. 내가 커피를 좋아하는 걸 아시고 커피도 직접 원두를 갈아서 주실 때도 있다. 취업하며 뉴원두 가는 기계를 꼭 사드려야겠다고 다짐한다.
[오전 8:00] 신문 읽기
매일 아침 울산 이 시골마을 집으로 경제신문을 시켰다. 정확히는 서울에서의 주소를 울산 주소로 옮겼다. 이 시골에도 새벽마다 배달해 주시는 배달원 아저씨가 정말 존경스럽다. 나도 저렇게 부지런히 살아야지.
한국경제신문을 늘 보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지금은 일을 하고 있지 않지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아야 한다. 기업, 세계 경제 동향과 트렌드를 늘 파악해야 하고 특히 마지막 사설 부분을 읽고 필사를 하면 그것이 내 재산이 된다고 믿는다. 요즘은 아이패드, 핸드폰이 워낙 잘 되어 있기 때문에 모바일로 보는 것도 좋지만 나는 늘 종이로 된 것을 선호한다. 더 눈에 잘 들어오고 내가 공부를 하고 있다고 몸소 느낀다.
특히 대학생 같은 경우에는 반값 할인을 해주기 때문에 월 1만 원에 이용할 수 있다.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금액이니 대학생이라면 꼭 신청해서 매일 아침 신문 읽는 습관을 들이자.
안 그래도 어제 한국경제신문에서 전화가 왔다. 무슨 대학을 11년째 다니시냔다.(^^) 50% 할인은 이번 달이 마지막일 듯하다.
[오전 09:10] 일자리카페 도착
집에서는 엄마의 잔소리+공부할 환경이 안되기 때문에 쉬는 공간과 공부할 공간을 철저히 분리해야 한다. 일단 집에서 나온다. 어디 가야 할지 정해지지 않은 채.
우리 마을에 새로 생긴 투썸플레이스를 한번 가볼까? 잠시동안 고민을 한다.
그래, 오늘은 일자리카페에 가야겠다. 일자리카페한 울산 남구에서 청년들의 취업을 돕기 위해 만든 장소다.
스터디카페나 카페를 갈 수 있지만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일자리카페에 문 염과 동시에 여기로 출근한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면접복이나 장소도 무료로 이용가능하고, 비싼 커피를 시키지 않아도 앉아서 공부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커피는 꼭 아침에 마신다. 카페 앞 compose커피에서 2000원짜리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시킨다. 샷추가를 하고 싶은데 500원이 추가다. 잠깐 고민한다. 이걸 고민하고 있는 내가 참 슬프다.
창밖으로 출근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본인들도 출근하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나는 저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게 참 부럽기만 하다. 그들은 아마 지금 자유로운 나를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또 일자리를 구하면 나는 지금 이 순간을 그리워할 것이다.
지방에서 취업준비를 하는 것은 참 쉽지 않다. 지방에 있는 대학생들은 면접도 무조건 KTX를 타야 하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온라인 면접을 선호한다. 근데 나 같은 경우는 내가 가진 에너지를 직접 보여준 것이 대체적으로 결과가 좋았기에 대면면접을 더 선호한다. 온라인면접은 단 한 번도 합격해 본 적이 없다.
[오전 09:30] 공부 시작
내가 하는 공부는 공기업 전공 공부다. 경제학을 선택했다. 대학교 때 경제학 수업을 하나 들은 적이 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선택했다. 경영은 행시나 cpa준비생들이 너무 많아 경쟁력이 크게 없다고 판단했다. 내 착각이었다. 경제학은 고인 물도 너무 많았고 미시, 거시, 국제경제에서의 각종 계산문제, 그래프문제 등 더 공부해야 할 것이 많았다. 그래도 할 때까지 꾸준히 해야 한다. 이미 정해놓은 것이기에 지금 와서 바꿀 수 없다. 문제를 풀어보고, 오답노트를 만들고, 다시 한번 개념을 정리한다.
[오전 11:30] 취업플랫폼 어플 열람 및 자기소개서 작성
두 시간 공부를 하고 11시~11시 반부터는 취업사이트에 들어간다. 11시부터는 그 전날 회사들의 새로운 공고가 업데이트되는 시각이다. 1시간 동안 어떤 회사의 내가 원하는 직무의 공고가 새롭게 떴는지 유심히 지켜본다. 오늘은 하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많은 회사의 공고가 새롭게 업데이트됐다. 세네 개 정도 별표모양 체크를 해놓는다.
나는 공기업을 현재 준비 중이지만 사기업도 계속 쓴다. 경력도 조금 있고 외국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남들보다 그래도 강점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어려운 시험에 평생 매달릴 수는 없다. 늘 플랜 B, C가 있어야 한다.
이제 오늘 자기소개서를 쓸 회사를 정했으니 자기소개서를 작성해 보자. 이미 자기소개서를 써놓은 수많은 회사들의 DB가 있기 때문에 문항이 비슷한 것들은 회사 이름만 바꾸고 복사+붙여 넣기 하면 된다.어느 정도 요령이 생겼다. 꾸준히 하면 처음엔 어렵더라도 쉬워지는 단계가 온다. 내가 봐도 참 신기하다. 처음에는 자기소개서를 처음 쓸 때 회사 하나당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지금은 많으면 하루에 최대 4개까지 가능하다. 단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복사+붙여 넣기 하다가 회사 이름을 안 고치면 큰 낭패다. 무조건 서류탈락이다. 나는 신한은행을 국민은행으로 바꾸는 것을 까먹어 그냥 낸 적이 있다. 그 다음 실수를 줄이기 위해 ctrl+F로 다 찾아본다. 2시간 동안 세 개를 극적으로 써냈다.
[오전 13:30] 점심식사
점심을 먹는다. 인턴이라고 할 때에는 인턴급여가 나오기에 여유롭게 회사 분과 같이 먹었다. 인턴까지 끝나고 나니 곁에 사람도 없고 돈도 없다. 혼자 먹는 건 일상이 된다. 식비를 아끼기 위해 한솥에서 5000원짜리 보울 도시락을 먹거나 추후 일정이 없는 경우는 다시 집으로 가 점심을 해결한다. 나는 마을에 살기 때문에 다시 시내로 오면 조금 힘드니까 오후일정은 집에서 해결하기로 한다. 집에서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엄마는 내가 취업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기 때문에 취업관련 얘기는 잘하지 않으신다. 내가 불편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14:30] 자소서& 다시 공부
일주일에 두 번 월요일과 수요일은 학교 앞에서 NCS스터디가 있다. 같이 시간을 재고 풀면 서로 모르는 문제 관련 질문도 하고 효율성이 올라가기에 스터디모임을 갖는다. 보통 한시간 반정도 한다. ncs뿐만 아니라 서로 취업 관련 정보도 얻고 상담도 하며 서로를 위로한다. 오랜만에 사람들이랑 이야기도 해서 엔돌핀이 솟는다. 화, 목, 금 주로 혼자 시간을 보낼 때에는 하루에 한 말이라고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요' 뿐이다. 이마저도 요즘은 키오스크로 대체되어 이 말조차 안 하는 경우도 많다.
오늘은 스터디가 없는 날이기에 마지막 자소서를 얼른 하나 불태운다. 마감시간까지 한 시간 남기고 제출완료. 오늘도 네 군데에 지원했다. 이 정도면 회사 이름도 까먹을 정도다.고1,고2때를 떠올려보자. 인서울대학교밖에 모른다. 왜냐하면 그 곳이 내가 아무리 못해도 갈 수 있는 학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3이 되규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 지방의 대학교 이름을 하나 둘 기억하고 살펴보게 된다.
회사도 똑같다. 대학교 때는 우리나라 회사는 대기업 몇개밖에 아는 곳이 없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 회사가 이렇게나 많았다니, 스스로 감탄한다. 나중에는 내가 여기를 지원했었었나? 스스로 기억이 안나는 경우도 있다.
잠시 휴식 후, 다시 공기업 경제학 공부를 한다.
[18:00] 산책
노을이 지는 이 순간은 항상 산책을 한다. 나는 마을에 살기 때문에 산책을 하면 공기가 정말 좋다. 마음이 개운해지고 엔돌핀이 솟는다. 천천히 걸으며 앞으로의 희망찬 계획들, 해야 할 것들을 생각한다. 이 길이 의심이 들 땐 내가 지나온 날들을 돌아본다. 참 열심히 살았다. 늘 이 순간만큼은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 속 감정의 파고에 휩쓸린다. 하지만 늘 모든 일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한다. 다 잘 될 것이다.
산책을 다 하고 벤치에 잠시 앉아 폰을 확인한다. 취업을 준비하며 시간을 뺏긴다는 이유로 폰을 잘 보지 않는다. 이 때는 밀린 카카오톡을 보며 답장을 한다. 서울에 있다가 내려왔는데 날 잊지 않고 기억해 주는 내 사람들이 참 고맙고 더 잘 살아야겠다는 의욕이 샘솟는다.
[19:00] 저녁식사 & 면접준비
엄마가 차려주는 맛있는 저녁을 먹고 난 후, 면접을 준비한다. 면접이 잡히고 나서 바로 면접을 급하게 준비하면 감을 잃기 때문에 늘 조금씩 스스로 읊어보고 대본을 고친다.
예상질문은 유튜브 면접왕이형/인싸담당자를 참고해 보고 스스로도 만들어본다. 나는 가고 싶은 직무가있기 때문에 거기서 나오는 면접 질문들은 다 거기서 거기다. 100개 정도 만들면 얼추 대비가 된다. 가서 내가 얼마나 떨지 않고 잘 대답하냐가 관건이다. 직무와 회사랑전혀 연관없는 시사나 경제 질문을 하는 경우도 있으니 꼭 신문을 꼭 읽어야 한다.
[20:40] 인터넷 강의 듣기
모르는 분야가 있을 때에는 인강을 활용한다. 아이패드로 인강을 듣는 데 당근마켓에서 80만 원을 주고 샀다. 빨리 취업해 다시 이 아이패드를 당근마켓에 파는 것이 내 목표다. 친구와 같이 결제를 했다. 한 아이디로 반반 나눠서 냈기 때문에 나는 이 시간에만 들을 수 있다. 친구는 아침반이고 나는 저녁반으로 나누었기에 이 시간에만 들을 수 있다. 인터넷강의는 1.5배속으로 듣는 것이 국룰이다. 시간을 아낄 수 있고 집중도 더 잘된다.
[23:00] 샤워 후 개인정비& 취침
샤워를 하고 오늘 있었던 일 짧게 일기를 쓴다. 이 시간도 언젠가는 끝나니 그리워할 순간이 올 것이다. 이렇게 치열하게 살았음을 회상하고자 짧게나마 일기를 쓴다. 늦어도 11시 반에는 꼭 자려고 노력한다. 너무 늦게 자면 내일 늦잠을 잘 수 있기 때문에 절대 밤을 세거나 무리하지 않는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바라며 잠에 얕게 든다.잠을 잘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이 삶도 언젠가 끝이 있음을 나도, 엄마도,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내게 지금 필요한 것은 최종합격이라는 결론이 아니다. 나에 대한 강한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