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이라는 단어는 슬프다. '만약 ~을 했더라면'이라는 수식어는 늘 후회를 낳는다. 만약 그때 널 데리러 갔더라면, 만약 그때 너와 함께 했었다면, 널 놓지 않았다면 , 이런 선택을 했었다면. 그것은 과거에 대한 반성일 수 있고, 현재에 대한 불만족을 드러내는 것일 수 있다. 나는 후회하기 싫어 만약이라는 단어를 주변 사람들에게 거의 쓰지 않는다.
만약이라고 말한다 해서 이루어질 리 없거니와 지금보다 더 나은 상황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가정으로 사용될 법도 하다. 하지만 난 현실의 타성에 젖어 예전만큼 현실성없는 꿈이나 부푼 희망은 크게 없다. 잠시나마 행복하기 위한 즐거운 상상은 될 수 있겠다.
2주일 전쯤이었을까? 친한 친구의 생일이었다. 카카오톡에 알림이 와 언제나 그렇듯 장난을 치며 생일을 축하했다. 나는 친구에게 생일선물로 무엇을 갖고 싶냐고 물었고 친구는 매년 오는 생일인데 선물이 대수냐며 괜찮다고 했다. 그러고는 조금 있다 '트렌드코리아 2023'이 갑자기 읽고 싶단다. 나는 많고 많은 책 중 매년 나오는 트렌드코리아가 대수냐며 똑같이 장난을 쳤다.그러고는 다시 만날 때 책을 같이 사러 가자고 했다. 카카오톡으로 책 선물을 하면 너무 성의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일주일정도 흘렀을까? '책 사러 언제 갈래'라고 물었더니, 친구가 갑자기 연락이 안 됐다. 이후 내가 들은 소식은 친구가 뇌출혈에 걸렸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지주막하 출혈. 교수님 말로는 거의 1/3만 살아남는다고 한다. 너무 충격이었다. 미국에 있을 때부터 늘 서로 안부를 주고받았고, 귀국해서 선물로 향수도 건네주었던 내 오랜 동네 친구다. 이렇게 갑자기 그 큰 병에 걸렸다고? 믿을 수 없었다.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하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웃으며 그렇게 내 앞에 다시 나타나줬으면 좋겠다. 그땐 커피가 아니고 그 친구가 좋아하는 홍차를 마시고, 새 거라고 만지지 말라고 했던 아이패드도 마음껏 보여줘야지. 가기 전 교보문고에 들러 트렌드코리아도 꼭 가져가야지.
친구는 한 달 내내 많이 바빴다. 나에게 팀장이 되었다고 했으며 나는 내 일처럼 축하했다. 그 친구에게 삶의 큰 부분은 커리어향상에 있었기 때문에 팀장 자리는 커리어 측면에서 본인에게 큰 첫발이었을테다.
퇴근 후에는 포토샵 관련 수업을 들으러 매일 학원에 갔다. 나에게 본인의 결과물도 카카오톡으로 보내주며 자랑을 했다. 실력도 참 대단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친구가 본인이 바라는 분야에 있어 늘 성장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참 멋있었다. 본인도 현재의 삶에 큰 만족을 하고 있었다. 끝없이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삶.
연애에도 큰 관심이 없다고 했다. 일이 우선이고 일적인 성장이 연애에서 오는 행복보다 더 크다는 듯 나에게 이야기했다.
어느 날은 지금 우리 32살 나이에 이정도 모으면 많이 모은 건지나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재테크에도 참 열심이고 늘 투잡 쓰리잡을 병행하는 참 성실한 친구였다.
돈? 많으면 좋다. 돈만 많으면 하고 싶은 거하고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먹으며 내가 바라는 대로 인생이 흘러간다. 하지만 아무리 사회적 성공, 부를 가진 자도 건강 앞에서는 모든 게 부질없다. 그 누구도 갑작스럽게 어떤 병에 걸릴지 미래는 아무도 모르기에 보험회사는 매년 영업이익만 1조씩 남긴다.
예측지 못한 갑작스러운 비보속에서 예측가능한 삶과 사람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나는 언젠가 친구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넌 예측가능한 사람이야, 어떤 행동을 할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보여'
그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참 묘했다. 큰 이벤트 없이 지루하고 재미없는 사람으로 비친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말은 참 좋은 칭찬이라는 것을.
사람은 모두 안정성을 추구한다. 선사시대 때부터 계속되어 온 인간의 생존 본능이다. 예측 가능한 삶, 예측 가능한 사람이라는 것은 그 삶과 사람에 맞게 미래를 준비하고 현명히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패하고 무너져도 그것이 실패가 아님을, 새로운 무언가를 위한 또 다른 시작임을 성공을 단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은 안다. 내가 실제로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다.
연인관계에서도 아무리 싸우고 헤어지고 서로에게 못 할 짓을 했다고 해도,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예측가능하다면 늘 다시 좋은 관계를 회복한다. 그 사람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영화가 아니다. 영화였으면 뭐 두 시간만 살건가? 모두가 영화 같은 삶을 살고 싶다고 하는데 현실 속에선 찾기 힘든 허상일 뿐이다.
인생은 한없이 초라한 고난의 연속이다. 세상에 걱정 없는 사람은 단언컨대 없다. 모두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각자의 고충을 안고 이 험한 세상을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그래, 버틴다는 표현이 맞겠다.
이 거친 삶 속에서 늘 건강하자. 첫 번째도 건강이고 두 번째도 건강이다. 몸의 건강, 정신적 건강 늘 평정을 이루고 하루하루 오늘의 작은 행복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자. 그것이 인생에 가장 큰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