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다시 서울행 KTX에 올라탑니다

남겨진 이와 떠나는 이의 감정적 파고

by 홍그리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시티라고 말하는 장소가 있다. 행복시티? 그게 어디지? 당연 내 고향 울산이다. 나에게 울산은 늘 근심과 걱정을 덜어주고 행복만을 가져다주는 도시다. 초, 중, 고, 대학교까지 모두 울산에서 나왔고 27년이 넘는 물리적 시간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도 있겠다. 마을의 고요, 자연의 아늑함 또한 늘 내 마음을 정화시킨다.

일과 삶이 철저히 분리된 삶도 한 한다. 만약 내가 울산에서 근무를 했더라면 지금처럼 울산을 좋아하지 못했을 테다.

카페에서 본 우리 마을

이번 설을 맞아 울산에 5일 정도 있으면서 마을 전체를 한번 산책하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자주 공부했었던 카페에 오랜만에 들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데 아주머니가 나를 기억해 주셨다.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냐면서 케잌도 공짜로 주셨다. 누군가 나를 기억해 준다는 게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 일이었는지 뒤늦게 생각해 냈다.

서울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회전율이 높다. 모든 게 빠르다.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게 쉽지 않다.

강남의 빌딩숲에서 직장동료들과 빈 공간, 적막을 두려워하는 점심식사보다 혼자 가도 늘 정겹고 편안한 이 분위기가 좋다.


산책을 하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우리 마을엔 청둥오리도 있다.



울산발 KTX와 다시 서울발 KTX에 몸을 싣는 생각들과 감정의 파고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울산역으로 가는 기차는 설렘과 위로로 정의할 수 있겠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 혼자 있는 엄마와 이런저런 많은 얘기를 나누며 힘든 서울살이의 로를 받는다. 나이가 서른이 한참 넘었지만 늘 투정 섞인 내 말에도 한없이 나를 무조건적으로 받아주는 엄마를 보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세월이 흘러도 늘 변하지 않는 것들에 감사하다. 집 안의 풍경, 엄마의 낡은 가방, 차, 마을의 카페 아주머니, 어릴 적 자주 가던 맛집, 미용실, 내가 매일 타던 버스까지도. 늘 변함이 없기에 묵묵히 쌓인 소중한 추억을 수 있다.

고향의 친구들과는 어릴 적 함께했던 사진을 똑같이 다시 보고 박장대소를 한다. 행복한 기억만을 안고 우린 서로 그렇게 살아간다. 그땐 아무것도 없었던 우린데 뭐가 그렇게 행복했고 즐거웠을까?


서울은 좋은 만남들 속에서도 이해관계가 늘 섞여 있어 마냥 무조건적으로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쩌면 우리 모두 늘 본인 이익을 우선 시로 두고 눈치보기 바쁘며 나에게 도움이 될 사람에게 각자 치열하게 아부를 떤다. 몸보다는 마음이 더 지치고 버거운 상황들을 쉽게 마주한다.


서울역으로 올라가는 기차를 탈 때는 생각들을 한 단어로 함축하기가 참 힘들다. 기차는 5만원으로 단지 서울이 아니라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준 발이 되어주었다. 기억 속 많은 순간들이 서서히 옅어지며 오버랩된다. 수많은 감정의 파고에 휩쓸린다.

면접을 보러 서울로 올라가는 이 자리에서 손을 벌벌 떨며 외웠던 손 때가 묻은 꾸깃꾸깃한 대본들, 옆에서 아저씨가 잘 보라며 넥타이도 매 줬었지. 그땐 그 결과가 세상의 전부인 것만 같았다.

미국행 비행기를 타려고 인천공항으로 가는 이 기차 자리에서는 1 남기고 겨우 가까스로 탔었지. 내가 예약해 둔 버스 시간을 잘못 착각해 비행기를 놓칠까 봐 급하게 탔던 KTX였다. 마지막 떠나는 순간까지 엄마는 주머니에 있는 모든 돈 만 원짜리 몇 장을 내 주머니에 넣으며 건강히 잘 다녀오라고 나를 안아줬다. 난 KTX에서 몇만원을 손에 들고 오열을 했다.

지금 이 순간 KTX 창가 속에서도 많은 생각들과 추억들이 더해진다. 며칠 지냈던 이 울산에서 내가 엄마한테 말실수 한 건 없는지, 더 챙겨주어야 할 것은 없었는지, 엄마의 건강은 어떤지. 늘 하늘 같고 커 보였던 어릴 적의 엄마는 지금 참 작다. 작은 것에도 행복해하고 늘 자식의 기쁨이 본인의 가장 큰 행복이라고 이야기하는 엄마의 마음은 아직은 내가 이해를 못 하겠다. 아직 자식이 없어서 그럴 테다. 본인의 인생보다 더 가치 있는 자식의 삶을 바라는 우리 엄마들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오신 걸까.


우리 세 가족과 매형이랑 함께 대왕암공원에 갔다. 가족이 하나 더 늘었다는 건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가장 큰 자산이다. 마음이 뻥 뚫리는 바다를 보며 다시 나도 재정비에 나선다. 더 잘해야 할 일들, 더 잘해야 할 사람들, 더 잘할 수 있는 용기와 다짐들 다시 가슴에 새겨본다.

울산 대왕암공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