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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Jul 12. 2024

사랑은 또 다른 언어였음을

영화 <코다> 리뷰

내일 갑자기 농인이 된다면 마지막으로 듣고 싶은 말이 있나요. 음소거된 삶에 언어란 어떤 의미일까요. 수화가 아니라 사랑이 곧 이들에겐 또 다른 진짜 언어였음을.




라라랜드 음악감독답게 비긴어게인과 라라랜드에 버금가는 가창력과 섬세한 시퀀스, 영상미 또한 기대이상으로 훌륭하다. 말 그대로 빈틈이 없는 음악영화다. 여기에 현시대를 살아가는 장애인 가족의 특수성이 더해져 관객에게 평범함을 넘어 풍성한 울림을 준다.

영화 후반부, 농인 아버지는 딸의 노래를 그저 두 손으로 간절히 듣고 있다. 수어와 노래가 합쳐지는 순간 그야말로 새로운 장르로 감동적인 엔딩을 선사한다.

세상 변두리에 웅크려있던 장애인 가족이 세상밖으로 나오는 따뜻한 감정의 파고가 몰아치는 영화다.이 파고는 수어처럼 내게 또 다른 언어가 됐다.


영화는 가족 간의 소통과 청춘의 반짝이는 열정과 꿈을 이야기한다. 영화 초반부, 딸은 노래를 하고 싶으나 딸을 생각하는 농인부모는 곁에서 통역을 하며 지내길원한다.

꿈을 포기한 채 희생만을 강요당한다고 단정 짓기엔 딸은 이미 한참 성숙하다. 부모에게 천진난만해 보이는 그녀는 오히려 정작 부모를 가여워한다. 부모 곁에서 본인의 꿈을 포기해야 하나 깊이 고뇌한다.

아, 이런 현실과 꿈의 괴리감은 그녀에게 가장 높은 영역의 상실의 고통을 안긴다. 먹고 자고, 싸고만을 반복하기 전에 우리 인간은 무언가를 하도록 뇌가 설계돼 있다. 단순히 생계를 위한 경제활동이 아니라 원하는 무언가를 할 성취목표가 내재돼 있다는거다. 근데 그 꿈이 본인 부모의 생계가 장애물이 될 때는 20대 여학생이 견디기 힘든 고통의 영역이다. 가족과 꿈 사이에서 스스로의 절박한 굴레를 벗어던지기엔 한없이 여리고 약한 존재라는 거다.

근데 부모는 이기적인 마음이 아니라, 온전히 딸을 험난한 세상 속에서 상처받고 다칠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딸은 버클리 음대 선배에게 혹독한 교육을 받으며 부모를 도우나, 부모는 딸의 공연을 보고 끝내 큰 결심을 내린다. 갑자기 공연 중 모든 음이 사라진 음소거 상태에서의 농인부모 관점의 시선전환은 가히 관객을 속수무책으로 압도한다. 이 시퀀스가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다.

이때, 부모는 듣지 못하지만 주변 관객을 반응을 본다. 열광하고 환호하고 있는 관객을 본다. 끝내 딸을 지지해 주며 대학에 합격하는 엔딩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농인 아버지는 들리지 않는 본인에게 노래를 불러보라고 하며 성대를 만진다. 이 성대의 울림은 마치 그에겐 듣지 못하는 침잠을 씻어내리는 파도와 같다.


우린 말을 하지 않으면 서로를 알지 못한다. 대화의 단절은 관계 간 오해와 분란을 낳는다. 그래서 ‘가족 간 대화를 하세요, 각자의 고민을 나누고 이 지독한 사회에 큰 버팀목이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라는 걸 이 영화는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말을 하지 않아도 한 개인이, 가족이 성장하고 나아갈 수 있는 건 사랑뿐이라는 걸 관객과 세상에 환기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아쉬운 맹점이라면 현실이 아닌 영화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저 ’아름답게‘ 비치는 약간의 억지가 가미된 행복한 결말은 우리에게 해결책의 부재라는 한 가지 숙제를 남기는 듯 한없이 열려있다. 장애인 소외문제를 수면 위로 떠올리는 덴 성공했다. 소수인줄 알았던 집단이 다수였구나의 깨달음은 줬다. 하지만 그래서 “장애인 어떻게 보살필 거야?”라는 노골적이고 단편적인 질문에는 침묵한다.

꿈과 가족,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리얼리티 현실적 결말을 피한 건 감독이 관객에게 문제 제기보다 사랑과 희망의 힘을 강조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낭만 속에 예측가능한 지루함이 혼재되어 있다.


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인식개선 목소리를 내기 전에,

그들이 단조로운 일상 속 더 큰 세상을 바라보라 권유하기 전에, 너와 나 우리는 지금 뭘 놓치고 살고 있나.

지금 내 옆 사람과의 익숙함에 가려져 사랑 표현 하나 못하고 살진 않았나. 결국 사랑이 그들의 꿈을 낳고, 성취를 낳고, 세상 밖에 나올 용기를 낳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꿈을 위한 실행력과 사랑의 표현을 내일로 미루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하루를 살아간다. 이런데 영화 같은 최상의 결말을 현실에서 기대한다면그건 판타지가 아닐까.


우리 가슴은 늘 꿈과 사랑으로 요동쳐야 한다.

루비처럼 좋아하는 걸 할 설렘과 그 꿈을 포기할 만큼 가족을 챙기는 사랑으로.


오늘도 사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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